문재인 정부는 지난 5월 이례적으로 교황청 특사단을 파견했다. 한반도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무력 충돌이 있어선 안 되고 대화와 협상으로 남북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하기 위해서다. 중요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적임자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자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선정됐다. 특사 임무를 성공리에 마치고 국내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김희중 대주교를 만나 우리 사회의 미래와 과제를 들어봤다.

"한 나라가 선진국이냐는 그 나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적 대우를 받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일까요?"
6월23일 만난 김희중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은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김희중 대교주의 생각은 ‘아직 멀었다’였다.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 부모님의 삶을 보셨나요. 참담합니다. 물질만능주의, 경제 제일주의가 사람의 정신문화를 피폐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경제적 동물로 전락하고 밀림 속 정글의 법칙처럼, 시장법칙만 난무한다면 약한 사람은 도태되고 말죠. 물질이 아닌 사람이 삶의 중심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적 약자를 공동으로 품을 수 있고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퍼져나갈 수 있어요"
김희중 대주교는 아픈 이들을 돌보는 일에 종교는 물론 정부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인 ‘치매 국가책임제’에 깊이 공감했다. 치매 국가책임제란 치매에 걸리면 사회가 책임진다는 취지로 요양등급 기준 완화, 치료비 본인 부담률 10%로 인하, 전국 치매지원센터 250개로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어머니도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습니다. 병을 앓던 어머니도 고생했지만 가족들도 그 고통을 분담했지요. 사랑하는 이의 기억이 휘발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많은 고통을 줍니다. 한 가족이 폭탄을 맞은 것처럼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마을 공동체 복지사를 양성하고 사회와 분담하는 제도가 필요한 것이죠. 독일처럼 가까이서 부모님을 모시는 세대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외에도 김희중 대주교는 새 정부에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 발굴에 힘써달라는 요청을 쏟아냈다. 특히 소비성, 선심성 복지보다 스스로 자립을 돕는 복지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호 물자로 그 날 그 날 끼니를 때우는 식의 사회복지나, 외적인 증상치료의 사회복지도 물론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론 자립형 사회복지가 정착해야 합니다. 그냥 배급을 해주거나 간호사를 파견해서 도와주는 것만이 아니라 가족적인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복지가 필요한 것이죠. 따뜻함은 사람을 움직이게 합니다. 본인이 스스로 움직이고 성취할 수 있도록 정부는 기회를 줘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김희중 대주교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우리 사회 변화를 ‘희망’이라 읽었다. 새 정부 들어 세월호에서 학생을 구하다 숨진 비정규직 교사의 순직 인정,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등 국민적 요구가 담긴 문제들이 해결된 바 있다.
"민심이 천심입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고 상식선에서 행동이 이뤄지기만 해도 국민은 감동받습니다. 제가 삶의 모토로 받들고 있는 구문 역시 ‘주님 뜻대로’입니다. 천명을 따른 다는 의미이지요. 정치지도자들도 그래야 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살맛나는 나라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희망을 갖고 뉴스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대통령이 원칙을 갖고 대화를 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무조건 국민들의 뜻만을 따르기보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여러 목소리들을 조화롭게 조율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원칙과 기본 상식이 통하는 자세에서 잘 조율해나가리란 희망이 봤습니다."
동시에 날카로운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외교부,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에 대해선 국익이 아닌 당리당략에 얽매인 근시안적 시각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번 외교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국제적으로 민감한 질문들이 오갔습니다. 이것은 곧 화투칠 때 패를 보여주는 것과 같죠. 외교위원회에서 비공개적으로 다뤄야 할 사안까지 공개하라는 것은 보고 있자니 청문의원들의 자질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국방문제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멀리 봐야 합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민통합이 필요할 때입니다."
김희중 대주교는 대표적인 ‘대화주의자’다. 대화를 통해 평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믿는다. 2015년 12월 나흘동안 북한을 방문했던 것도 대화의 중요성을 믿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김희중 대주교는 분단 70년만에 한국 천주교 수장으로서 사제단을 이끌고 방북한 첫 번째 사례를 만든 주역이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북측과 대화하려면 북측의 자세변화 또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그 전에 대화는 할 수 없다.’ 저는 이런 태도는 대화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북측의 자세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화를 해야 하고 발전시켜야 하죠. 조건이 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은 대화의 속성과 문화를 외면한 처사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문화, 예술, 학술,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하고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양측의 신뢰가 없다면 대화도 연극하는 것처럼 끝날 뿐이죠."

남북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온 대주교는 최근 평화협정 체결을 해결방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국면을 해소하고 항구적인 평화공존을 위해 북한과 정전협정 대신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평화를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오늘날 정접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 정착시키는 것이 안정과 평온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화와 교류협력 강화는 평화협정을 맺기 위한 준비단계죠. 진보든 보수든 평화가 싫다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만 각각의 위치에서 정말 진영의 철학을 가지고 서로를 견제하는지는 자문해 볼 문제입니다. 평화협정을 북한이 주장한다거나 좌익이라고 모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봅니다. 국민들이 평화협정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우리가 더 힘 있게 나아갈 수 있겠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희중 대주교의 이 같은 입장은 교황청과도 맥을 함께 한다. 김희중 대주교는 새 정부의 교황청 특사를 다녀 온 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갈등과 분란이 심할수록 무력과 제재보다 대화와 협상이 유일한 일이다"며 남북 대화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방한했을 당시에도 유사한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명동성당 강론에서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언어,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민족이 갈라져 서로 만날 수 없게 된 것은 참으로 슬프고 고통스럽다"며 남북이 서로 대화하는 평화를 강조한 바 있다.
김희중 대주교는 최근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종교 간 화합과 교류를 증진하고자 1997년 설립된 종교 협의체다.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등 7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소감과 포부를 밝히는 자리에서도 김희중 대주교 특유의 ‘대화본색’은 드러났다.
"7대 종단의 공식 대화채널을 대표하는 자리를 맡게 돼 영광입니다. 종교계가 공생할 수 있도록 협의하고 필요한 것은 요구하기도 해야겠죠. 당장 10월에는 종교 문화축제가 있습니다. 올해도 고유한 종교문화를 대중에게 소개하며 이해관계의 폭을 넓히고 싶습니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매년 각 종교의 국내?외 2차례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약 일주일동안 함께 먹고 자고 움직이기 때문에 책상 위에서 보다 훨씬 인간적 소통이 깊어질 수 있죠. 무엇이 다른지 차이점에 주목하기보다 무엇이 공통점인지를 먼저 보고 싶습니다. 집단 소속감에 함몰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가 도움을 주고 격려해주며 이웃종교를 존중하겠습니다."

김희중 대주교는
1983년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2003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보좌주교
2004년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 위원장
2007년 남북정상회담 자문위원단
2009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부교구장
2010년 제9대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2011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2014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2017년 5월 교황청 특사
2017년 6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고귀한 기자 pressgh@gwangnam.co.kr

고귀한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