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세련된 시위의 모습이랄까. 우아하게 풀어낸 한편 삶의 이야기랄까.
거리극은 현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바로 거리에서. 재미있고 유쾌하게, 그러면서도 메시지의 진중함은 꼭 붙든 채 말이다.
지난달 2~4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금남로 곳곳에서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광주의 밤을 수 놓았다.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펼쳐진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에서다. 이번 축제에는 10만 명의 시민들이 현장을 찾아 거리예술을 즐겼다. 야외 무대에서 공연예술을 즐긴 적은 있지만 한 장르로서 ‘거리극’이 광주 시내에서 펼쳐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임수택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 총감독은 이번 축제를 "광주와 거리극과의 어울림, 그리고 그 가능성을 목격한 시간이었다"고 밝힌다.
그가 말하는 가능성이라 함은, 광주라는 도시의 상징성과 무관치 않다. 예컨대 국가 권력의 폭력성을 다룬 태국 비-플로어의 작품 ‘붉은 탱크’는 광주 시민들에게 무리 없이 읽혔다.
거리 위에는 ‘탱크’를 뜻하는 빨간 드럼통이 겹겹이 쌓여있고, 이를 가로지르는 한 남자의 처절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태국의 반정부 시위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된 작품으로, 다소 거칠고 직설적으로 ‘국가 폭력’에 반문한다.
1980년 5월이란 집단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시민들은 ‘붉은 탱크’에 담긴 상징·아픔·역사적 의미 따위를 또렷하게 직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거리극은 현 시대 어젠다를 다룬다. 그 탄생 배경을 알면 이해가 더 쉽다. 거리극의 뿌리는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68혁명’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권위에 저항하는’ 학생들은 문화예술을 이용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다. 록음악으로 기성세대를 꾸짖고, 유인물을 뿌림으로써 저마다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정치·사회적 이슈를 문화예술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토론·논의의 장으로 유도하던 움직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시절의 문화운동을 거리극의 원형이라고 봅니다. 마당극이나 연극 등이 그것들이죠. 특히 한국에서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던 ‘탈춤’이란 연희가 있었기에 더 감화력 있게 대중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죠."
대중들 속에서 함께 한다는 것, 이는 거리극으로서의 ‘생명력’과 직결되는 지점이다. 한 공연예술이 거리로 나오게 된 데 결정적 힘은 일반 대중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예술인들의 동참 덕이었다.
그래서 그는 거리극을 ‘문화민주주의의 산물’이라 규정한다.
"서양에서도 예술을 향유하고 사는 사람들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5%밖에 안 된다고 해요. 바꿔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술과는 동 떨어져 살고 있다는 이야기죠. ‘소수만을 위한 예술인가?’ 이것에 대한 반성이 일었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선 공연장 밖으로 나와야겠다는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이죠."
공연예술이 밖으로 나오면서 형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먼저 활용할 수 있는 소재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물이나 불을 적극 사용할 수 있게 됐고, 무대 세트를 바꾸는 대신 공연자들이 도심 곳곳을 이동하면서 공연할 수 있었다. 실내 공간에서 나오자, 더 넓은 무대가 펼쳐진 셈이다.
가장 큰 변화는 관객들의 위치다. 실내에서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없는 듯’ 있어야 했던 관객들이 거리에선 살아있도록 그 역할을 부여받았다.
"실내극은 관객들이 없다는 전제 하에 극을 펼치죠. 극의 몰입을 높이기 위해 객석은 불을 끄고, 무대에만 조명을 비춥니다. 하지만 거리극은 관객들의 눈길, 박수, 함성 소리 같은 것들이 모두 공연의 한 부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 어젠다를 꺼내놓기에 적합한 장르이기도 하죠."
애초에 거리극은 ‘거리에서 공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어야만 한다. 또 ‘메시지’가 없으면 거리극이라 할 수 없다. 단지 찰나의 즐거움만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건드릴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거리극이 야외극이나 버스킹과 다른 지점이다.
"옛날 장터에서 펼쳐졌던 차력쇼·마술쇼 그리고 품바 공연 등도 형식으로 보면 전통거리극이라 할 수 있죠. 지금의 거리극이 그들의 후손이란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하지만 오늘날 거리극은 인간과 삶을 다루고, 또 새로운 예술양식을 실험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있습니다."

이 같은 특징은 그가 이번 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의 모토를 ‘생산적인 축제’로 정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축제(祝祭)의 본 뜻에 가깝게 다가가고자 함이다.
"축제는 원래 빌 축(祝)의 제사 제(祭)를 쓰죠.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자리가 아니에요. 적어도 이번 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에서는 우리 삶의 이야길 꺼내어 보고자 했어요. 거리극 작품들도 하나같이 사회 문제를 제시하고 있고요. 보통 축제를 즐기는 것을, 일상에서 떠나오는 것, ‘일탈’로 여기는데 이번 축제는 일상을 떠나서 일상을 바라봄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축제에 대한 철학은 거리극이 펼쳐진 5·18민주광장, 문화전당 앞 광장에서 빛을 발했다. 두 광장이 예술공간으로 변모하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축제를 즐긴 많은 시민들이 그곳을 지날 때 과거 거리극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고, 계속해서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겐 있다. 일상의 ‘예술 공간화’다.
실제 이번 ACC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 주최 측 관계자들은 "참 거리극 하기 좋은 곳"이라 입을 모았다.
"서울 광화문 광장은 너무 크고 소란스러워서 공연의 집중도가 떨어져요. 안산 또한 광장 주변으로 상업지구가 발달 돼 있어서 네온사인 간판이 많아요. 야외 빛을 활용하는 거리극의 특성상 방해요소가 되죠. 반면 광주는 크기도 적당하고, 원래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이 되던 곳이라서, 집중도도 좋고 공연하기가 참 좋았어요."
무엇보다 이번 축제에서 임 총감독이 놀란 것은 광주 시민들의 문화 수준이었다 한다. 공연 장소와 시간 등이 안내돼 있는 ‘리플렛’을 들고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거리예술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리플렛을 보고 적극적으로 관람하는 것은 다른 도시에서는 사실 보기 힘든 광경이에요. 과천에서 거리극 축제를 12년 간 했는데, 그런 ‘질서’가 이뤄지는 데 한 3년은 족히 걸렸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도 아직 그런 모습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거리극을 처음 접하는 시민들이 무엇을 볼지 고민하고, 현장을 찾아가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광주 문화예술 발전의 원동력을 이 같은 시민에게서 본다.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선 시민들과 협력, 발맞춰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민들이 사랑하는 예술 판을 벌여야 한다는 것, ‘관객’을 확보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어떤 문화나 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하거든요.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노선을 정했다면, 아시아 문화를 사랑하는 팬들을 만들어야 해요. 현재 문화전당이 시민들과 조금 거리가 있어 보여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문턱을 낮추고, 시민들이 사랑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선보여야 해요. 예술가만 데리고 예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광주란 도심 곳곳의 문화예술 판이 깔리고, 이를 즐기는 시민들이 함께 할 때 진정한 문화도시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