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은 늘 공연예술이 펼쳐지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문화예술회관, 빛고을시민문화관 등 문화기관에서는 정기 공연 무대가 열리고, 도심 속 크고 작은 문화 공간에서 또한 다채로운 장르의 공연이 시민들을 맞는다.
문화시설을 벗어나서도 마찬가지다. 5·18민주광장이나 금남로 등 도심 거리에서도 ‘일상 속 예술’을 표방한 공연콘텐츠가 펼쳐지고 있다.
‘매일이 축제’라 해도 무방할 만큼 많은 볼거리가 광주를 채운다.
이 같은 현상에 공연계에는 긍정·부정의 시각이 교차한다. 전자의 시각에서는 공연예술의 외연을 넓히고, 시민들에게 더 많은 문화혜택을 누리게 한다는 점을 높게 산다. 반면 후자는 ‘공연의 홍수’가 질 높은 공연예술을 선보이는 데 한계점을 드러낸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예향 광주의 자존심을 세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다채로운 공연예술을 선보이는 것이 공연계의 주요 역할임과 동시에 킬러콘텐츠를 발굴·육성해 나가는 것 또한 과제이기 때문.
중요한 것은 ‘광주 공연예술의 미래’를 유념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편적인, 그래서 소모적일 수 에 없는 공연판이 아니라, 광주 공연예술의 내공을 채우고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때다.

△광주 ‘킬러 콘텐츠’ 육성…상설화해야
광주 공연예술계에 제1의 과제는 역시 브랜드작품을 내놓는 일이다. 잘 만들어진 문화콘텐츠는 지역 이미지 제고는 물론 또 하나의 관광상품으로서 제 기능을 다 한다. 각 지자체들이 브랜드 공연 키우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역을 대표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단서가 뒤따른다.
먼저 ‘지역성’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만한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자원이 콘텐츠의 주가 될 수 있다.
다음이 ‘지속가능성’이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일회 공연을 끝으로 보지 못한다면 ‘브랜드 공연’이 될 수 없다. 공연예술콘텐츠 자체가 현장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공연이 열리는 때 현장에 없다면 향유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때문에 더 많은 지역민과 콘텐츠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각 지자체들이 지역의 문화콘텐츠 제작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2000년대 말부터다. 지역의 역사적 사건·인물·문화자원 등을 하나의 콘텐츠로 인식, 이를 토대로 한 작품 제작에 공을 들인 것이다.
다만 지역축제의 개막 공연이나 주제 공연 등 주목을 끌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제작, 일회성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은 것이 일상적 콘텐츠다. 특정 시기에 한 번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지역민 또는 방문객들이 찾았을 때 볼 수 있는 정기적이고 일상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는 전략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문화콘텐츠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지역 브랜드 상설 공연이다. "언제, 그곳에 가면 그 공연을 볼 수 있어"라는 명제가 통해야 하는 것. 말하자면 ‘브랜드 공연’의 상설화라 할 수 있다.
광주는 광주문화재단 주관으로 아리랑 브랜드 상설공연과 5.18민주화운동 기념공연 상설화 사업 등을 추진 해 왔다. 광주라는 도시가 갖는 이미지, 즉 민주·인권·평화로 대변되는 ‘광주 정신’을 담은 공연 콘텐츠 발굴, 육성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 공연계에서는 예향·의향으로서 광주를 대표할 만한 ‘킬러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콘텐츠 제작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활용 방안을 짜 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 ‘빛골 아리랑’이나 ‘애꾸눈광대’ 등 좋은 콘텐츠는 있지만 이를 지역 대표 공연으로 키워나가기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키울만한 공연예술을 장기적으로 끌고 갈 인프라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단절’되고 만다는 지적도 있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여돼 만들어졌다 해도 이를 정기적으로 시민들과 만나게 할 장기적 활용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또 작품 제작 시, 지역민의 참여가 낮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제작·출연진들이 전체적인 기획을 도맡고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재공연 될 기회가 있다하더라도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지역의 열악한 제작 인프라를 고려할 때 초연 시, 외부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다면 이후에는 지역 제작자들과 예술인들의 참여율을 지속적으로 높여 가면서 자립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 대표 공연의 전제 조건으로는 예향·의향 등 광주만의 정체성을 담는 일이 꼽힌다.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예술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지난 과거 역사로서가 아니라 이 시대와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문공연장’ 마련…창·제작시스템 가동 과제
브랜드작품 육성과 함께 ‘동반성장’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공연시설이다. 아무리 양질의 콘텐츠가 개발됐다 하더라도, 이를 무리 없이 소화해 낼 공연장이 없다면 무용지물과 다름 아니다.
때문에 최근에는 전문공연장에 대한 니즈가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공연장이란, 말 그대로 뮤지컬·클래식·오페라 등 각 장르별로 최적화된 시스템을 갖춘 공연장을 말한다.
하지만 광주에는 공연예술 한 장르에 최적화된 ‘전문공연장’은 단 한 곳도 없다.
광주시 공연시설의 현황을 살펴보면 시에는 총 48개의 공연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부적으로는 △종합공연장 2개 (1000석 이상) △일반공연장 12개 (300석 이상 1000석 미만) △소공연장 25개 (300석 미만) △야외공연장 9개 등으로 나뉜다.
종합공연장으로는 광주문예회관 대극장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극장1 두 곳이다. 광주·전남권 내 최대 규모로 꼽히는 광주문예회관 대극장은 1732석을 갖추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1은 1120석, 빅도어(big door)를 열어 야외무대로 확장할 시엔 1800여 관객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예회관이나 문화전당 예술극장의 경우 ‘다목적 공연장’일 뿐 한 장르에 특화된 전문공연장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
장준호 문예회관 무대1팀장은 "다목적 행사장은 공연장으로 분류되지만 엄밀히 따지면 ‘문화시설’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공연예술 뿐 아니라 행사, 영화제, 주민공청회까지 말 그대로 다양한 목적의 시설"이라며 "실질적으로 무대설치·조명·음향 등 공연 기본 인프라와 전문 인력 배치 등 예술가들의 창작 욕구를 돋우는 전문성을 갖춘 공연장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 대표 다목적 종합공연장인 광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는 지난해만 해도 총 180여회의 공연이 열렸다. 예술단의 정기·상설 공연부터 지역의 굵직한 문화행사, 대형 기획 공연 등은 대부분 문예회관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1991년 개관한 문예회관은 시설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이라, 리모델링이나 대안 공간 마련 등이 절실하다.
무대 마루 바닥, 관객석, 출입문 등 외관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공연 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조명·음향 시스템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가장 문제는 ‘음향’ 이다. 음향에 민감한 클래식 분야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보는 극장의 잔향은 2.2초다. 잔향이란, 실내 연주에서 나는 소리가 울리다가 그친 후에도 남아서 들리는 소리로, 실내 음향 효과를 내는데 중요한 요소다. 문예회관 대극장의 경우 비교적 최근 교체한 음향반사판 덕에 잔향이 1.4초 정도 나온다. 소극장은 그나마도 없어 0.9초 수준이다. 다른 나라 연주자들이라면, "공연 못 한다"고 할 정도다.
이에 광주문예회관은 2013년 회관 리모델링을 위한 종합 컨설팅을 받고, 예산 규모 파악에 들어간 바 있다. 그 결과 노후화된 시설을 교체하는 비용을 포함, 총 265억원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예산 확보라는 큰 산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설 교체비용 뿐 아니라, 회관의 전체적인 문화시설을 새 단장하는 데는 추가적인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시는 지역발전특별회계를 통해 국비·시비 매칭 사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사실 장르별로 최적화된 공연장을 마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대구의 선례를 꼽을 수 있다. 오페라전문극장과 클래식 전문공연장을 가지고 있는 대구는 사실 전 장르에 최적 시스템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건립 당시 2000억원이 투입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대부분의 공연예술 무대를 커버하고 있다. 오페라 장르 자체가 종합예술이다보니, 뮤지컬·발레·오케스트라 음악회 등 다채로운 공연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적의 시스템을 갖춘 공연장의 종합적인 대안으로 오페라 하우스 건립이 거론되는 이유다.
또 놓쳐선 안 될 부분은 최고 시설의 극장 하나를 ‘늘린다’는 것에 초점을 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할 방안을 짜 놓아야만 예술가·시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설립 계획 단계부터 공연예술가들과의 긴밀한 소통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의 한 예술인은 "‘전문공연장’을 정말로 ‘전문적’으로 운영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프로그램 기획력에서 갈릴 수 있다"며 "공간 마련과 함께 공연예술 인력·창 제작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선 건립 초기부터 창작과 연계한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전문 스태프 확보 등을 예술인들과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는 예술인들의 숙원이던 클래식 전문공연장 건립을 검토 중에 있다. 기존 공연장을 리모델링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부지에 클래식 콘서트홀을 마련하는 방안을 타진중이다. 10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을 짓는 데는 부지 확보 문제를 제외하고 약 500억~6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 인력풀 육성…선순환 시스템 마련
‘문화가 밥’이 되는 도시로의 가능성을 키우고 지역 문화의 자생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사람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인프라를 활용하고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지만 문화 전문 인력을 발굴·양성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구축이 진행 중이고, 광주비엔날레·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비롯한 문화예술 페스티벌은 점차 늘고 있어 전문화된 인력의 수요는 늘고 있지만 해당 인력의 전문성과 안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양성 체계는 미흡한 것이다.
실제 문화예술 현장에서 ‘전문 인력’은 그 개념조차 모호하다. 사실 문화 전문 인력이라 하면 문화 창작 분야로 국한돼 생각하기 십상이다. 무용인·연주자·화가 등 실질적으로 공연예술 행위를 하는 이들이다. 이 같은 문화 전문 인력의 협소한 개념 적용은 현장의 전문 인력 배치에 인색함으로 이어진다. 이는 곧 문화예술 콘텐츠 질 저하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예술대학을 통해 배출되는 인재 또한 창작 분야에만 치중돼 있어 ‘문화 매개자’로서 전문 인력 양성은 걸음마 단계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문화행정가·콘텐츠 개발 인력·유통·마케팅·문화 기획자는 물론 문화예술 활동을 촉진하고 창작된 작품을 향유자에게 전달하는 ‘매개자’까지를 ‘문화 전문 인력’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 광주문예회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빛고을시민문화관 등을 제외한 공연 시설에는 무대기계·조명·음향 부문 전문 인력은 전무한 상황이다. ‘공연법’에는 각 공연장 규모에 따라 의무 채용해야 할 인력이 규정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광주 공연장에는 장비 컨트롤이 가능한 전문가가 부재한 상황이다. 전문 인력이 상주해 있지 않은 탓에 작품을 올리는 예술단체들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공연할 때 마다 외부 인력에 의존해야하는데다, 상황에 따라 늘 유동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은 물론 공연의 질 하락을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 문화 전문 인력 양성과 관련한 컨트롤 타워가 부재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문화재단이 일종의 지역문화인적자원센터로 기능, 장기적인 방안에서의 광주 문화 전문 인력풀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는 지역 전문 인력의 ‘선순환’ 구조를 갖추는 데 선결 조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다만 지역 문화 전문 인력을 발굴·육성하는 일을 문화재단이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유관기관들의 협업이 필수 과제로 제기된다.
전문 인력들의 현장 활동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유관기관들이 교육단계부터 협치를 통해 보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고등교육기관은 교육 콘텐츠의 내용적인 연구를, 문화재단은 사업의 전문적인 시스템을 각각 수행하는 식이다.
또 각 분야의 전문성을 인증하는 제도를 도입, 실질적으로 창업·취업에 가산점이 주어지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