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뮤지션들에게 클럽 ‘네버마인드’는 요람 같은 곳이다.
지금처럼 무대가 흔하지 않았던 때 그들에게 네버마인드는 넘어야 할 데뷔 문턱이자, 꿈의 무대였다. 요즘에야 거리에서 노래하는 버스킹도 있고, 주말마다 줄을 잇는 공연행사도 많았지만 당시에는 뮤지션들이 설 곳이 지극히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네버마인드에 올라야만 광주에서 활동하는 밴드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고, 관객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때다.
2002년 전남대 후문에 처음 문을 연 네버마인드는 그 이름처럼 ‘Never Mind’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다. 함께했던 클럽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지역의 뮤지션들이 살길을 찾아 모두 홍대로 떠났어도 여전히 ‘영업 중’이다. 그 세월이 벌써 15년이다.
긴 시간 동안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이 네버마인드를 둥지 삼아 실력을 키웠다. 개중 ‘잘 된 팀’들은 전국을 무대로 반경을 넓혀 나가기도 했고, 광주를 기반으로 ‘롱 런’하며 활동하는 뮤지션들도 여럿이다.
클럽 무대에 섰던 뮤지션들이 힘을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을 세상에 내놓았고, 전국 인디뮤지션들의 축제인 ‘광주인디뮤직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광주 인디뮤직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광주간판예술단체를 찾아가는 이번 예술기획의 주인공은 클럽 네버마인드다. 이곳의 역사를 조명하는 길은 곧 광주 음악이 걸어온 발자취를 좇는 일과 같다.

△문화운동 바람…자생적 ‘판’ 마련
네버마인드는 클럽이라 명명했지만, 사실 대안문화공간이었다. 음악 공연 뿐 아니라 연극·독립영화 상영회 등 다양한 문화 활동들이 펼쳐지는 문화의 장으로 꾸미고자 했다.
1990년대 말, 주류문화에 반기를 든 독립문화가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퍼질 때였다. 남유진 전 네버마인드 대표(광주음악창작소 감독)는 ‘문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픈 꿈을 꿨다. 주류 문화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고 자생하고 있음을 내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대안문화공간을 표방했지만, 현실은 녹록지가 않았다. 공연 기획부터 시설 관리·운영까지 자체적으로 감당해야 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판이 깔린 셈이었다. 네버마인드 초기에는 ‘별 것을 다 해 본 시기’였다.
100원 짜리 공연을 열었고, 장비를 끌고 나가 거리에서 판을 벌이기도 했다. 영화를 테마로 한 기획공연부터 김광석·너바나 등 뮤지션 트리뷰트 공연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당시 일을 도와줬던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일같이 클럽을 드나들었던 손님들 일명 ‘네버수니’들이 자원해 일을 도와줬다. 공연 홍보물 배포는 물론이고, 티켓 관리, 뒷정리까지, 자원해 일을 도와줬다. 음악을 좋아했던 이들이 말 그대로 ‘의기투합’ 했던 시절이었다.
사실 클럽 하나를 운영하는 것도 벅찼지만 "광주에도 음악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말하자면 광주의 자생적인 음악 판을 깔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 같은 사명감이 클럽 네버마인드를 존속하게 했을 터다.

△광주 씬 ‘활기’…음반발매·페스티벌 개최
당시 활동하던 뮤지션들에게 클럽 네버마인드의 존재는 참 고마운 일이었다.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우물안 개구리’, ‘김과리’, ‘더티라콘’, ‘윈디캣’ 등은 모두 네버마인드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다.
당시 네버마인드에서 데뷔무대를 갖는 다는 것은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일’로 통했다. 자작곡을 다섯 곡 이상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다, 합주에서 합격점을 받아야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몇 천원이라도 티켓 값을 받는 공연이기 때문에 콘텐츠의 질을 신경써야 했기 때문이다. 역량부족으로 탈락한다면, 대관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판’은 좁았지만 오늘날 광주 씬 보다 더 치열했고, 활기찼던 시절이다.
네버마인드의 큰 업적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광주 밴드 음악을 망라해 선보인 ‘컴필레이션’ 음반 발매이고, 또 하나는 ‘광주인디뮤직페스티벌’ 개최가 그것이다.
컴필레이션 음반은 지역 클럽에서 최초로 발매된 앨범으로 기록됐다. 남 전 대표는 서울 쪽 인디레이블 워크숍을 열어, 지역 뮤지션들과 매칭을 시켰다. 각 뮤지션들이 ‘골방’에 앉아서 작업하던 것을 네버마인드가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온 셈이다.
2006년 첫 앨범 발매를 시작으로 2011년에는 광주 15개 팀이 참여한 스페셜 앨범을 냈다. 뮤지션에게 음반은 일종의 명함 같은 것인데, 광주 뮤지션들이 빛나는 명함을 하나 쥐게 된 것이다.
2004년 시작해 2015년까지 펼쳐진 ‘광주인디뮤직페스티벌’ 또한 네버마인드가 남긴 굵직한 흔적이다. 광주 뮤지션들이 자발적으로 펼친 축제 무대에 전국 뮤지션들이 몰려들었다. 페스티벌은 2015년을 끝으로 잠시 중단됐지만, 여전히 인디 뮤지션계에서 ‘광인뮤페(약칭)’의 영향력은 남아있다. 반가운 소식도 전해진다. 빠르면 올해 겨울 광주인디뮤직페스티벌이 재개될 예정이다.

△그래도, 다시 ‘네버마인드’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클럽 운영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이전보다 더 안 좋아진 게 사실이다.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사업’의 닻을 올리자, 광주 음악 산업은 더욱 침체기에 들어섰다. 이유는 자생적인 문화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뮤지션들이 설 무대는 많아지고, 기회의 문도 넓어졌지만 광주 음악 콘텐츠의 질은 예전만 못하다.
‘투자’를 하면 할수록 음악 산업 수준이 상향평준화 될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먼저 무료공연이 많아지니, ‘티켓’ 값을 지불하는 클럽 공연의 관객들은 줄었다. 공연에 관객들이 들지 않으니, 뮤지션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15년간이나 클럽을 운영하면서도, 남 전 대표는 "의지 하나로 버틴 것이지, 클럽은 원래 경영상 수익이 나기 어렵다"는 말을 한다. 네버마인드 또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여러 번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전남대 주변을 전전하다, 2008년 대인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 해 연 수익이 18만원이었다 하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현재 상주 직원도 0명이다. 공연이 있을 때는 자발적 봉사 인력이 대신한다.
정말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럽의 문을 열어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문화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픈 마음 때문이다. ‘보조금’ 또는 ‘지원금’으로 돌아가는 공연 판이 아닌, 자생력을 갖춘 공간이 버티고 있어야만 한다는 게 남유진 전 대표의 생각이다.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그리고 여전히 네버마인드에는 공연이 오른다. 15년 세월을 버텨온 것처럼,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많은 뮤지션들이 네버마인드를 거쳐 갔고, 언젠가 또 새로운 뮤지션들이 부푼 꿈을 안고 무대에 오를 것이다.
더디고 느리지만 그래서 ‘티’가 안 날지 몰라도 음악 생태계는 네버마인드에서 조금씩 변화할 것이므로.

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