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려 있던 회화 그림이 찻잔에 새겨지고,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은 우산과 에코백에 그려진다. 벌집 성분인 밀랍으로 매화를 제작해 주목받아온 다음 김창덕 작가의 ‘윤회매’(輪回梅)는 한 주류업체 매실주 라벨지를 장식한다. 이는 전시예술로부터 잉태된 ‘문화상품’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야말로 문화와 산업이 만나 문화산업이 돼 가는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유명 작가의 작품은 한두 명이 소유하고 있다는 예술품의 지위를 뛰어넘어 경쟁력있는 문화상품으로까지 거듭나고 있다. 회화에서부터 공예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술 분야가 첨단기술 등 산업과 결합, 문화산업으로서 경제적 가치 창출에 온힘을 모으고 있다. 광주의 문화산업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고, 발전 방안은 무엇이 있는지 공예를 망라한 문화상품을 중심으로 짚어본다.

#문화상품, 지역경쟁력의 키 반증
굴뚝없는 산업의 대표명사이자 미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문화의 상품화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있다. 문화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손에 꼽을 수 있는 문화상품이 있어야 한다. 결국 문화상품 하나가 지역경쟁력의 키가 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현시대 세계 각국과 각처에서 ‘문화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특히 문화상품 중 두드러지게 상품화라고 성과를 내고 있는 공예품의 경우 우리의 일상 생활용품과 긴밀하게 연계돼 지속적인 수요 창출이 가능해지면서 관련산업까지 잠재적인 성장요소를 갖춰가는 형국이다. 광주도 2005년부터 공예·디자인산업 분야를 ‘5대 콘텐츠사업’으로 지정해왔다. 이후 우수 민속공예품 개발 보조, 공예품 마케팅 판매지원, 수제공방 산업, 디자인비엔날레 등을 추진중이다.
광주시의 공예·디자인산업은 공예협동조합과 광주디자인센터 두 축으로 운영된다. 올해 두 기관에 총 11억 4500만원(국비 550.5, 시비 595.5)의 예산을 들여 사업을 펼치고 있다. 광주공예협동조합(원장 안철환)은 △우수공예품개발보조 (3000만원 예산)△광주공예품마케팅 판매지원 (1억2600만원 예산) △대한민국공예품 대전공모전 개최 △대한민국관광기념품공모전 개최 등을 진행해 ‘명장’이라 불리는 공예전문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2016 광주광역시 관광기념품 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손노리개’ 작품이 ‘제19회 대한민국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한 일은 지역 공예가들을 지원한 성과다.
(재)광주디자인센터는 연간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창조공방 육성, 공예디자인 전문 인력양성, 우수상품 판로지원, 동아시아 공예문화교류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이중 각종 디자인상품의 전시장이자 세계 디자인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와 시민들에게 문화상품을 홍보하고 판매할 수 있는 ‘빛고을 핸드메이드 페어’는 문화상품 개발과 촉진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스타상품을 개발하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수혜공방과 디자인 기업을 선정하고 상품 기획·시제품제작·사후관리까지 맡고 있다.

#전략적 마케팅 통한 ‘판로 개척’
문화산업에 있어 전략적인 마케팅을 통한 ‘판로 개척’이 가장 중요하다. 광주지역에는 예술의 거리, 김대중컨벤션센터 전시장, 동구 공예품전시판매장, 핸드 메이드 페어, 유·스퀘어 플리마켓, 디자인 비엔날레 ‘오핸즈 홈’ 매장 등에서 문화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의 거리와 동구 공예품전시판매장은 관광객 위주의 판매장으로 관광객 수요가 적다 보니 경제적 효과가 미비하다. 개선책을 마련해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반면에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디자인비엔날레의 전시판매장인 ‘오핸즈 홈’의 경우 매년 열리는 행사 덕분에 그 기간에는 하루에 수백 개 이상의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오핸즈 홈’은 광주시의 공예 브랜드다. 지역 공예작가와 소비자와의 소통을 통한 공예문화 확산, 우수 제품 홍보 및 판로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광주비엔날레관 5전시관에 175.47㎡ 규모인 매장에는 지역 공예명장, 수제공방 등에서 만든 핸드메이드 기반의 공예품이 한데 선보이며 유통·판매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판매장만으로는 문화상품을 바림직한 산업으로 활성화할 수 없다. 지역을 넘어, 해외로 수출하는 판로 개척이 있어야 문화상품의 고부가 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문화산업의 척박한 환경에 다소 활로를 열어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10월23일 폐막한 ‘2017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 열린 해외 바이어 초청 수출상담회에서 지역 13개 기업이 3000만 불 규모의 수출 계약 및 MOU를 체결한 것이다.
이밖에 참가기업들도 2030여만불 규모의 해외 수출 계약을 진행하며 문화산업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미술과 생활을 접목한 광주의 대표적 문화기업인 ㈜인스나인은 디자인비엔날레로 세계화에 나선 대표적 사례다.
㈜인스나인은 2015년 디자인비엔날레를 통해 세계적 디자이너인 스테파노 지오반노니와 협업으로 만든 ‘미니맨’ 작품이 이탈리아의 디자인 기업인 알레시(ALESSI) 매장에 입점했다. 미니맨이 찻잔과 물병 위를 기어오르고 낚시를 하는 등 위트있는 디자인으로 관심을 끌면서 알레시는 전 세계에 5000여개의 매장을 가진 세계적인 디자인 기업으로 인스나인은 크리스마스에 맞춰 찻주전자와 찻잔 세트를 내놓았다. 또 지오반노니는 또한 화순에 있는 인스나인 공장을 직접 방문해 제작 공정을 둘러보고 나서 ‘지오반노니’라는 이름의 온라인 디자인숍에 인스나인 제품을 함께 선보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시에 머물지 않고, 사업화와 비즈니스로 보폭을 옮기고 있는 만큼 디자인비엔날레를 통한 문화산업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된 것은 큰 수확의 하나다. 대규모 문화행사가 문화산업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런 흐름은 타지역 행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2일 폐막된 ‘2017청주공예비엔날레’가 대표적 사례다. 작품 전시와 판매가 함께 이뤄진 공예페어와 아트페어가 실시됐는데 이는 작가와 소비자가 직접 소통하는 ‘문화상품마켓’으로 자리매김했다. 공예페어(4억2000만원)와 아트페어(1억7000만원), 거리마켓(2100만원)에서는 총 6억1000여만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경제적 활성화에 크게 일조한 만큼 이를 되새겨봐야 한다.

#시스템 정착·수익모델 구상해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펴낸 ‘2016 공예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예품 판매처는 공방 내 매장이 82.4%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개인·작가 면접조사에서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판로 개척’의 어려움을 꼽았다.
이를테면 투자가 가장 많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광주의 문화산업 주력으로 언급되고 있는 공예산업이 지역 간판 문화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공예산업의 특성과 지역산업 여건을 고려한 상호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광주에서 창작·생산·유통되는 공예문화상품이 산업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정착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한 공예산업클러스터 조성으로 문화관광자원으로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안과 전통공예 기술 리소스에 대한 체계적인 DB화와 기술융합으로 시장 확대 및 신시장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수익모델을 구상하는 일이 중요하다. 축제 및 문화콘텐츠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해 국제적인 행사를 유치해 네트워크 형성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으로 판로를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 도자산업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경기도 이천시가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천시는 2010년 공예와 민속예술로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성공적으로 가입한 뒤 이후 2년간 창의도시 네트워크 사업을 전개했다. 국제교류 전문 인력을 보강한 ‘창의도시팀’(3명)을 신설해 향후 지속적이면서 전문적인 사업운영 방안을 마련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2030 이천시 창의 도시 마스터플랜’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이천시 프랑스·중국 박람회’를 열어 해외에 판로를 확대한 것이 각각 10억원 이상의 판매성과로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또한 문화상품의 고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인스나인과 같이 기업과 연계하는 등 다양한 유통경로를 구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는 통합적인 마케팅전략으로 기업 간의 협력이나 제휴를 활발히 모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문화상품만을 취급하는 전문 유통업체와 판매업체를 육성하는 동시에 문화상품 상설전시판매장과 판로지원을 강화하는 일에도 집중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대표상품 위해 집중과 선택 필요
문화상품 시장이 아직은 초기 단계인 광주는 문화상품 성공 사례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지역을 대표하는 관련 상품은 관광객의 관광기념품이라는 경제적 부가가치와 더불어 지역을 상징하는 기념품으로서 수출 가능성이 클 수 밖에 없다. 회화에서부터 전통문화에 이르기까지 예술을 바탕으로 한 문화상품의 개발과 보급은 경쟁력은 물론 이미지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치게 돼 그 지역 공산품 전반에도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문화산업에 청신호를 켠 국내 성공적 사례들을 통해 지역의 문화상품 개발과 육성의 방향을 진단한다.
목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맘키드크레프트’는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을 개발하는데 온힘을 쏟고 있다. 국내 및 해외 판로를 활발히 개척해 나가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부상한 맘키드크레프트는 2003년 한국관광공사에서 개최한 ‘한국 기념품 공모전’에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풍속화를 에스프레소 찻잔에 핸드프린팅해 출품,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후 중소기업청의 ‘기술혁신 연구&개발(R&D)사업’에서 지원받아 특수 핸드프린팅 기법을 개발했다. 한국적인 미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화하고 차별화시킨 점을 인정받아 2011년부터 영국 대영박물관 아트샵, 영국의 해로즈 백화점에 입점했으며, 지금은 프랑스 전역 국립 박물관에 맘키드크래프트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에는 국립중앙 박물관을 포함한 6곳의 국립박물관 아트샵과 경복궁, 예술의 전당 아트샵, 인천공항 면세점까지 출시했다.
김명효 대표(맘키드크래프트)는 "2003년 사업 시작 때부터 ‘기술력이 디자인을 보강해준다’는 신념으로 기술력을 강화한 점이 차별성을 갖게 된 비결"이라면서 "또한 풍속화, 민화 등 한국적인 미를 담아 국내 대표상품으로서 세계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상남도 포항의 경우 특산물에 예술적 디자인을 가미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탈바꿈시켰다. 상품은 디자인별로 총 6종으로, 과메기와 돌문어, 포항초(시금치)가 티스푼으로, 개복치가 목걸이와 브로치, 열쇠고리 등으로 변신했다. 티스푼은 순은에 은도금과 일부 금도금, 목걸이는 순은에 은도금, 브로치는 순은에 은도금과 금도금, 열쇠고리는 황동에 은도금과 금도금을 각각 한 제품이다. 이 대표문화상품을 가지고 포항시는 본격적으로 시장 활성화에 들어갔다.
또 충북 청주시는 ‘젓가락’이라는 콘텐츠를 특화하기 위해 국내 처음으로 젓가락 연구소를 설립했다. 대표 문화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한 복안인 셈이다. 우선 청주시는 우리나라 수저 문화를 연구, 집중적으로 문화상품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강성곤 교수(호남대학교 디자인산업과)는 "광주의 대표상품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하되 집중과 선택이 필요하다"면서 "시에서 공예산업 육성을 위해 여러 분야에 투자하고 있지만 청주가 ‘젓가락’을 대표적으로 상품화하기 위해 집중투자하는 것처럼 더욱 체계적이고 집약적인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박사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