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유일한 증거이다. 지역의 역사, 멋과 미를 나타내면서 ‘지역 정체성’과도 직결된다.
문화재청 문화재 현황에 따르면 광주시는 국가지정 문화재 24건, 시지정 문화재 114건, 등록문화재 15건을 보유하면서 문화재 보유수가 전국 최하위권을 차지한다. 관련 정책도 문화재청에서 시행하는 사업들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문화재는 소유주, 정부, 지자체에서 잠시 손을 놓고 방치 하는 사이 손실되기 쉽다. 그러나 제대로 복원하고 보존한다면 우리 역사의 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산이 된다.
전라도인은 이번 호부터 자치구별로 다섯 차례에 걸쳐 광주시 문화유적 보존·관리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문화유산을 시민들과 향유 할 수 있는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짚어본다.

시에 따르면 현재 광주지역에 지정·등록된 문화유산은 총 153건(동구 26건·서구 12·남구 37건·북구 53건·광산구 26건)이다.
5개 구 중 가장 먼저 살펴볼 곳은 서구이다.
서구는 문화재 보유수는 가장 적지만 자연풍광과 문화유산이 잘 어우러진 곳을 ‘서구 8경’을 지정하는 등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구에는 국가지정 유형문화재 안중근 의사 유묵(보물 제569호)· 시 지정 문화재인 운천사 마애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4호)·병천사 존심당(유형문화재 제11호)·회재유집 목판(유형문화재 제23호)등이 있다. 시 기념물로는 화담사(시 기념물 제18호)가 있으며, 문화재자료인 만귀정(문화재자료 제5호), 지석묘(문화재자료 제6호), 유촌동 석조여래좌상(문화재자료 제21호) 등이 있다.

먼저 서구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만귀정’은 지역민이 즐겨 찾는 곳이다.
광주 서구 동하길 10에 자리 잡은 만귀정은 문화재자료 제5호로 흥성 장씨의 선조인 효우당(孝友堂) 장창우가 학문을 가르쳤던 옛터에 후손들이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일제강점기 정자이다. 원래 건물은 소실됐으나 1934년에 다시 중건됐고, 1945년에 고쳐 지었다.
앞면 2칸·옆면 2칸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각지붕으로, 시문과 만귀정을 포함한 현판 23개가 걸려 있다.
이곳은 봄(벚꽃)과 여름 (창포꽃), 가을(상사화), 겨울(설경) 등 사계절과 조화가 잘 이뤄져 서구 8경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작지만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이곳은 광주 외곽을 한 바퀴 도는 ‘빛고을 산들 길’ 코스에 포함돼 시민들의 방문이 잦은 곳이다.
그러나 만귀정을 찾은 날은 첫 번째 정자인 만귀정에서 습향각으로 건너가는 목교 쪽과 정자 주변, 습향각 뒤쪽의 대나무 가지가 많이 우거져 있어 미관을 해치고 있었다.
보통 구에서는 일주일에 1회 4명의 인력이 문화재들을 돌아가며 방문, 여름철에는 풀을. 나머지 기간에는 쓰레기를 제거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나무 가지치기, 잡초를 베는 일 등을 위한 빈번하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또한 이용객들은 습향각 뒤편으로 대나무 숲을 지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만귀정을 한 바퀴 걷기 위해선 대나무 숲 뒤에 있는 민가를 지나야 한다. 그러나 큰 개 두 마리가 집 앞을 지키고 짖어 이용객들이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광주시 문화재 관리는 시에서 위탁한 (사)대동문화재단을 주축으로 운영된다.
대동문화재단에는 18명의 문화재 돌봄 관리사가 ‘문화재 돌봄사업’과 ‘문화재 활용사업’ 크게 두 축으로 관리하고 있다.
문화재 돌봄사업은 문화재 훼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경미한 훼손사항에 대해 신속히 복구하는 ‘사전 예방식 관리’이다. 문화재청이 2010년부터 문화재 복권기금법 제정에 따라 광역시·도를 중심으로 문화재 예방관리 시책사업으로 시작했다.
이 사업은 문화재 보존상태 유지를 위한 ‘일상관리’, 기와 수리·마루 들기름 칠과 같은 ‘경미수리’,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정기 모니터링’, ‘긴급 모니터링’ ,‘전문 모니터링’을 골자로 한다.

문화재 활용사업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재 교육 등을 포함한다.
구는 주 1회 잡초제거, 화장실 청소 등 문화재 주변 환경정비와 문화재를 활용한 문화 사업을 하고 있다.
만귀정에서 차로 2㎞ 떨어진 곳에는 문화재자료 제6호인 ‘용두동 지석묘’가 있다. 만귀정과 가까워 함께 들르기 좋은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용두동 지석묘는 광주 소재 청동시대의 대표적 지석묘다. 이곳의 고인돌군은 남북 방향으로 3줄이 배치돼 있는데 현재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10기다. 주위에 덮개돌을 지탱하는 받침돌이 여러 개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2~3기 정도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지석묘는 서창동 주민센터에서 대촌동 주민센터 방향으로 가다 그 중간쯤 왼쪽 송학산에 위치한다.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일반적으로 ‘고인돌’로 불리는데 광주 전남지역은 전국에서도 가장 많이 분포돼 있다.
용두동 10개의 고인돌 중에는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탁자식 고인돌 1기가 있어 보존해야 할 가치가 크다.
1984년 2월 29일 문화재 자료로 제정된 용두동 지석묘는 만귀정과 함께 서구 팔경에 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귀중한 자료이지만 현재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어 서구 문화유산 중 관리가 가장 시급한 곳이다.
차량 네비게이션을 이용해 지석묘가 있는 용두동 25-1까지는 갈 수 있지만 이후에는 안내판이 없어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지석묘 옆에 방치돼 있는 ‘폐가’도 해결 해야할 문제 중 하나다. 녹슨 농기구와 쓰레기로 둘러 쌓인 폐가는 흉물처럼 방치돼 있어 시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뿐만 아니라 경관을 해치고 있다. 청동기 시대 유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지석묘가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유적으로 거듭나도록 체계적인 관리가 요구된다.

광주 서구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불교 문화를 보여주는 불상 두 점이 있어 눈에 띈다.
이 문화재들은 그 모습에서 각각 광주에서 보기 힘든 특징을 지니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광주 서구 금호동 푸르지오 아파트 뒤편에 자리한 유형문화재 제4호 ‘운천사 마애여래좌상’이 그것인데 고려 초기를 대표하는 석불이다. 광주에서는 보기 드는 실내 마애불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 불상을 모신 법당 앞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무등산도 가려졌고, ‘백팔번뇌’를 상징했을 보호각 앞에서 절까지 이르는 108계단마저 사라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또한 문화재자료 제21호인 서구 유촌동 ‘석조여래좌상’은 조선시대 불상으로 다리와 대칭을 이루고 있는 양쪽 발바닥, 옷자락의 모습이 특이해 조선 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래서 불교 조각 분야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눈코입의 형상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뿐더러 어깨와 허리, 무릎이 너무 크게 손실돼 불상의 위엄 부분이 상당 부분 상실되고 있어 더 이상 파손되지 않고 보존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이다.

광주지역 문화재 전문가들은 문화재를 관리·보존하는 일은 활용을 위한 전제이며 문화재는 시민들에게 널리 알릴 때 그 가치가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20세기가 문화유산을 발굴·보호하던 시기였다면 21세기는 그것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시대라는 게 이들의 중론이기도 하다.
문화재청에서 시행하는 ‘생생(生生)문화재 사업’과 대동문화재단의 ‘문화재 지킴이 사업’이 대표적인 활용사업이다.
문화유산활용 사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문화유산의 성격에 맞는 창의적인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을 통해 역사 문화적 가치와 의미들을 발굴해 효과적인 ‘향유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있다.
서구는 문화재청 공모사업에 올해도 선정돼 ‘생생문화재사업-서창 들녘에 부는 바람’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운천사, 병천사, 만귀정, 서창 한옥마을 등을 돌아보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스토리텔링 투어’이다.
또한 시의 시민참여예산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펼치는 ‘문화재 야행 사업’과 병천사를 배경으로 한 ‘달빛음악회’, 만귀정 문화유산 음악회인‘만귀정에 물들다’도 1년에 몇 차례 열고 있다.
이렇게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문화재를 돌아보는 일은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일과도 연결된다. 이러한 이유로 소유주의 의견으로 인해 ‘비개방’된 문화유산을 몇 차례라도 개방하는 일은 긴요하다.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11호 1924년에 건립된 충주지씨들의 서원이자 사우(祠宇)인 ‘병천사’가 그 사례 중 하나이다.
광주 서구 금호지구의 아파트 밀집 지역 안에 있는 병천사는 일제강점기 때 충주지씨들이 호국선현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고려 말 충신 정몽주(鄭夢周), 고려 말 공신 지용기(池湧奇), 조선조 공신 정충신(鄭忠信), 병자호란 때 활약한 지여해(池汝海)·지계최(池繼) 등 5인을 배향한 곳이다.
많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병천사는 광주 도심 최고이자 최대 규모의 사당으로 충주지씨 문중이 관리하고 있는데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비개방 사당으로 남아 시민들의 접근이 어렵다는 아쉬움이 큰 곳이다.
병천사를 무대로 여는 달빛 음악회 등 활용 사업을 통해 시민들과 접촉면을 넓히는 일은 다행이다. 그러나 문화재는 일상생활에서 공유될 때 그 가치가 빛난다는 점에서 시민에게 개방되는 일도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 광주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광주대교구청 브레디관’은 향후 활용 가능성이 큰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지난 4월 20일 등록문화재 제681호로 등록된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브레디관은 1961년 대건신학교 기숙사로 건립된 건물이었다. 건물 형태는 신학교의 초성인 ‘ㅅ’자 모양으로 크게 세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세 영역이 만나는 중앙 부분에 공동화장실, 세면실, 휴게실 등이 있어 학교 공동숙소의 생활양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특히, 건물 옥상은 일정한 양의 물을 채워 여름철에 실내온도를 낮추는 수조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점은 다른 건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징으로 신학교 건물로서의 건축사적 가치가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점은 아쉽다. 가령 외벽 창호는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으나 공동침실이 개별 침실로 바뀌면서 변형이 가해졌다. 외벽 창호의 경우 원형이 보존되고 있다. 방법 샷시나 모기장, 오르내리창의 철물, 멈추는 장치 등이 변형 없이 잘 보존돼 있다.
이 건물에서 영화 ‘검은사제들’, ‘화려한 휴가’ 등이 촬영됐을 정도로 미관상으로도 국내 건축 기법이 아닌, 서양의 기법을 그대로 따른 것이어서 독특하고 아름답다. 그만큼 보존가치가 높다는 점도 입증한다.
브레디관은 광주 문화유적지 탐방 코스로 각광 받고 있는 광주 남구의 기독교·근대문화 유적지와 연계한 ‘성지순례코스’로 거론된다. 또한 브레디관 앞에는 넓은 잔디, 옆에는 작은 공원이 있어 문화역사와 함께 하는 ‘작은 음악회’ 무대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사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