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최초의 서양화가로 알려진 여수출신 김홍식 화백의 누드화는 현재까지 4점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동경미술학교 졸업 작품으로 ‘자화상’(1923)과 함께 출품된 ‘나부’는 동경예술대학 예술자료관에 남아있다. 그리고 유족들에게 3점이 소장돼 있는데 이 중 1점은 미완성 작품이다.

김홍식의 작품세계는 빛에 의한 외광파적인 인상주의 화풍을 주조로 한 사실적인 그림으로 화단의 평가를 받아왔다. 견고한 데생력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인물화의 경우 윤곽선을 뚜렷이 살리는 묘미를 통해 볼륨감을 강조하였으며 전체적으로 풍요롭고 화사한 색감은 전라도의 자연과 감성을 반영했다는 평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욕장(浴場)’은 스승인 후지시마 다케지의 영향을 받은 대표 누드작으로 꼽을 만하다. 여수 만성리 절골에 아뜰리에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소일하던 당시의 작품이다. 그곳에 들어와 밥짓고 집안을 돌보던 소녀를 모델로 그렸다. 건강하고 한국적 여성의 누드를 진솔한 기법으로 정직하게 가감없이 표현했다.

욕장의 창가 쪽으로 돌아서서 목욕을 시작하려는 모습을 잡았다. 이 작품은 인물의 포오즈와 순결하고 화기에 찬 실내외 분위기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역시 이 작품에서도 인물을 부각하는 김홍식 특유의 구도가 엿보인다.

화면 한 가운데 상하 수직으로 인물을 배치하고 화면을 상하 절반으로 나눴다. 상단부는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정원풍경을 담아 장식성을 가미했다. 하단부는 간략하게 생략하여 걸려진 수건을 왼쪽에, 비누통을 오른쪽에 각각 배치해 놓았다. 화면구성 상 상하좌우가 전체적으로 균등한 무게를 갖는 시선의 균형감을 고려했다.

김홍식의 인물묘사의 데생력이 드러나 있다. 여인의 통통한 몸매와 무표정한 얼굴을 드러내는 그대로 사실적인 분위기를 담아 그렸다.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살을 뚜렷하게 흘러내린 굴곡 진 선의 흐름은 김홍식의 데생실력을 보여준다. 둥글둥글한 얼굴과 가슴, 엉덩이는 화면전체에서 원형감을 일으켜 생동감을 자아내면서 누드화 부드러움을 준다.

길게 땋아 우측 가슴 쪽으로 흘러내린 댕기머리를 풀고 있는 두 손의 처리도 실제 행동에서 보여지는 자연스러운 자세로 사실감을 높였다. 불쑥 튀어나온 어깨 죽지와 살짝 골지며 ‘S자’로 굽은 등뼈, 허리춤에 패인 주름살, 잘록 들어간 허리선, 몽고 반점 주변 살갗의 긴장감 등은 인체의 해부학적 관심에 충실한 나체화임을 증명하고 있다.
인물 대상의 신체를 머리에서 무릎 위까지만 그린 것도 이채로운 형상이다. 이렇게 하여 김홍식은 작품에서 여인의 풍만함을 자극하는 외곽의 선의 맛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가 필요한 부분만을 차용해서 작업하겠다는 근대화가들의 조형의식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창 밖으로 들어오는 정원의 녹음 우거진 풍경이 원근감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실내의 모습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창 밖의 풍경을 그려 넣음으로 하여 그림의 단조로움을 줄이고 밝고 맑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김홍식의 누드가 뒷모습을 그린 것도 여러 의미를 전한다. 우선 스승 후지시마가 즐겨 다룬 포오즈란 점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작업 성격 상 뒷모습을 다루면 인체의 곡선이 뚜렷하여 그림을 인체 데생에 용이함은 물론이다. 화면상의 분위기를 연출하는데도 작가의 의도를 쉽게 조형할 수 있는 점을 김홍식은 고려한 듯하다.

또한 당시 나이 어린 소녀를 모델로 하여 수줍어하며 돌아선 여심을 서정적으로 포착하는 순수한 화면을 연출하기 위함일 터다. 뿐만아니라 김홍식의 누드의 구도와 포오즈에 초점을 두고 분석해 보면 동경미술학교 선배이자 한국근대양화 도입의 선구적 족적을 남긴 김관호의 걸작 ‘해질녘(석모)’과 매우 가깝게 느껴진다. 우선 돌아선 뒷모습의 나부를 모델로 고요하고도 부드러운 분위기, 그리고 빈틈없이 잘 짜여진 구도와 색채의 신비스러움은 거의 한 작가의 작품처럼 느끼게 할 만큼 공통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글·김옥조 대기자/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