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戊戌年)인 올해는 광주·전남에 있어 의미가 각별하다. ‘전라도 정도(定都) 천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천년의 세월 동안 전라도는 생명의 땅이자 개혁의 땅으로 대한민국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근대화 이후 저출산과 젊은층의 수도권 유출 등의 영향으로 인구가 급감하며 타 시·도와의 경쟁력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갈수록 줄고 있는 광주·전남 인구의 현주소를 점검해보고 대안을 들어봤다.

◇심각한 저출산…인구 소멸단계 진입 현실화
2017년 곡성군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144명이었다. 이웃 구례군에서는 1명 많은 145명이 태어났다. 곡성과 구례에서는 2.5일에 1명꼴로 겨우 아기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갈수록 이 같은 현상이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젊은층의 도시 유출과 저출산 때문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최근 ‘한국의 지방 소멸 2’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전남이 전국 광역 단위 최초로 인구소멸 위험단계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인구 소멸이란 저출산·고령화와 대도시 집중화로 인구가 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남지역 22개 시군에서 고흥군이 소멸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소멸 위험에 진입한 곳은 신안·보성·함평·곡성·진도·장흥·구례·강진·완도·해남·담양·장성·영광·영암·화순군 등 무려 15곳이나 됐다.
광주에서도 남구와 동구가 ‘소멸주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됐다.
광주·전남에서 소멸 저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광산구가 유일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이들 지역을 포함해 전국 1383곳의 읍·면·동이 30년을 버티지 못하고 소멸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지난해 기준 전남도의 인구는 179만여 명이다. 1995년 206만여 명을 기록한 이후 20년이 넘게 계속 내리막을 걷고 있다.
광주는 147만여 명으로 1995년과 비교해 17% 증가했지만, 증가 폭은 매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지자체 살림살이·조직 규모 결정
인구는 정부가 지자체에 주는 교부세를 산정하는 중요한 잣대여서 주민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인구가 많을수록 시·군 재정이 풍요로워지고, 반대일 경우는 살림살이가 덩달아 팍팍해진다.

인구는 행정 조직 규모를 결정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정부가 마련한 지자체 행정기구와 정원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인구 3만명을 넘어서는 군(郡)지역은 13개 실·과·담당관을 두지만, 그 이하가 되면 12개로 축소된다.

5만명까지는 15개 실·과·담당관을 둘 수 있고, 10만명이 넘어서야 실·국 설치가 가능하다. 인구가 공무원 자리는 물론 행정 서비스 수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지금의 추세를 방치할 경우 10년 내 경제성장률이 평균 1.9%, 20년 내 평균 0.4%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15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놨던 전망치보다 훨씬 비관적이다.

◇‘발등의 불’ 지자체, 인구정책 전담부서 신설
전남자치단체들은 인구를 늘리기 위해 인구정책 전담부서를 신설하는 등 총력전을 펴고 있다. 장성군은 지난해 6월부터 인구 늘리기 종합대책인 일명 ‘연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연어가 고향을 다시 찾아 돌아오듯 장성군과 지역 유관기관이 힘을 모아 도시민과 향우가 살고 싶은 고장을 만드는 인구 증가 프로젝트다. 장성군에서 2000년부터 2016년까지 타 지역으로 전출인구는 1만70명이지만 전입인구는 399명에 그쳤다.

장성군은 세 차례 실무회의와 토론회를 거쳐 인구 늘리기 중점 과제를 선정한 뒤 8개 실·과와 10개 담당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장성군은 전국 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실버복지 인프라와 귀농귀촌 정책을 향우와 도시민에게 알려 이들의 정착을 돕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치단체와 기업체, 유관기관, 사회단체 등이 함께 캠페인을 벌이고 대도시에서 설명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인구 자연 감소를 막기 위해 출산 장려 및 보육사업과 노인복지사업, 주거환경 조성 사업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화순군은 최근 저출산 극복을 위해 가정활력과와 출산보육팀을 신설했다. 저출산 대응 TF팀도 꾸렸다. 화순군 합계출산율(여자 한 명이 가임기간인 15∼49세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015년 1.22명.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고흥, 장흥 다음으로 낮다. 인구수도 6월 말 현재 6만5015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6만5731명)보다 감소했다.

화순군은 화순전남대병원을 비롯해 산업단지와 농공단지, 개별입지공장 임직원의 주소 이전을 추진하고 이전 기업체 지방세 세무조사 3년 유예 등 시책을 마련했다. 지역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광주시와의 고교 공동지원제를 추진하는 한편 기숙형 교육시설 운영, 성적 상위 5% 이내 학생의 지역 고교 진학시 장학금(300만 원) 지급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수시도 지역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내 고장 학교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목포시와 무안군, 강진군, 장흥군, 완도군도 인구정책을 전담하는 팀을 신설했다.

광양시는 아예 모든 사업을 추진할 때 인구 증가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인구 유발 효과를 분석하기로 했다. 이른바 ‘인구영향검토제’다. 시설 구축, 프로그램 지원, 행정서비스 제공 등 인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정책사업이 인구영향 검토대상사업에 포함되며 전 영역에 걸쳐 인구 영향을 검토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은 광양시가 처음이다.

◇출산장려금 인상 효과는 글쎄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출산장려금을 올려 1000만원 넘는 큰돈을 주는 곳도 있다. 전국 최고액의 출산장려금을 내건 곳은 전남 완도군이다.

이곳은 셋째 1300만원, 넷째 1500만원, 다섯째 2000만원, 여섯째 2100만원, 일곱째 2200만원을 준다. 충남 청양군도 다섯째 아이가 태어나면 2000만원을 준다. 이밖에 경기도 여주시, 전북 남원시, 경남 창녕군 등도 셋째부터 1000만원을 내걸었고, 경기도 시흥시와 충북 괴산군 등은 넷째부터 1000만원을 준다.

전남 해남군은 출산장려금 효과를 본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곳은 2008년 전국 최초로 출산정책 전담팀을 꾸린 뒤 첫째 300만원, 둘째 350만원, 셋째 600만원, 넷째 이상은 720만원의 장려금을 주고 있다.

셋째 이상 건강보험료와 임신부 초음파 검진 등 다양한 지원시책을 병행한 결과 2016년 합계 출산율 2.42명으로 전국 시·군·구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5년 연속 1위다.

반면 전북 진안군은 2016년 첫째·둘째 출산장려금을 120만원에서 360만원으로, 셋째 이상은 45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인상했지만, 눈에 띄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2015년 196명이던 이 지역 출생아는 이듬해 176명, 지난해 147명으로 급감했다.

2015년부터 출산장려금 최고액을 2000만원으로 올린 충남 청양군 역시 2015년 170명이던 출생아가 이듬해 135명, 지난해 121명으로 줄었다.

고액의 출산장려금이 등장하면서 돈만 받아 챙긴 뒤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먹튀’ 논란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전남도의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5년 동안 전남지역 22개 시·군에서 출산장려금을 받고 떠난 ‘먹튀 출산자’가 1584명에 이른다. 이 기간 전남지역 시·군이 지급한 출산장려금은 737억1950만원이다.

이처럼 금전이나 물품 지원 또는 인센티브에 의존하는 방식의 인구 대책은 인구감소를 막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당장 전남도의 경우 최근 5년간 출산장려금으로 무려 737억 원을 지원했지만 같은 기간 인구는 193만여 명에서 190만여 명으로 3만여 명 감소했다. 인센티브 지원이 혈세는 혈세대로 투입하고도 인구 감소를 막지 못하는 근시안적 대책인 셈이다.

조사를 맡은 우승희 전남도의원은 "금품 지원 등 인센티브에 의존하는 인구 대책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출산지원뿐만 아니라 육아, 교육 등 성장 과정에 따른 전반에 대한 지원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인구증가 효과에 비해 재정부담이 크다고 판단해 출산장려금 지원을 중단하는 지자체도 생기고 있다.

◇일자리 창출로 아이 낳을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일각에서는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수도권에 편중돼 있는 기업을 유치해 젊은층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구가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정립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일자리는 인구 유입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여유는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인구유출을 막고 청년들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교육훈련 투자 강화 등 과감한 정책 시행도 필요하다.

특히, 서민층의 생활안정을 위해 공공일자리 창출과 청년창업 지원을 확대하고 일자리 박람회 개최, 사이버 기업 지원센터 구축 등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일자리 창출과 인구 증가의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광주전남연구원 심미경 연구위원은 "인구절벽에 대응하는 지역 차원 해법 마련을 위해 출산 지표 개발과 모니터링, 협업체계 구축, 인구정책협의체 구성과 운영, 돌봄 플랫폼 모델 발굴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인구정책 광역 플랫폼을 설치해 세분된 인구 관리를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덕모 호남대학교 교수는 "정부는 강력한 일자리 정책을 펴고 기업은 미래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적극 늘릴 필요가 있다"면서 "지자체는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가능하면 모든 규제를 풀고 좋은 일자리 확보를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이 경감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야 한다"면서 "그래야 출산율이 회복되고 인구절벽이 해소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