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계절 좋은 시절에만 유럽을 찾아다닌 분들이 놓치는 것 중 하나가 ‘크리스 마켓’이다. 크리스 마켓은 겨울에 유럽을 찾은 사람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특히 11월과 12월에는 웬만한 규모의 도시 광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크리스 마켓이다. 크리스 마켓은 그리스도의 강림기간인 크리스마스 기간을 기리는 시장으로, 중세 후기인 14세기 유럽 독일어권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장 오래된 크리스 마켓은 1434년부터 시작된 독일 드레스덴의 크리스 마켓이 꼽히고 있다. 이 마켓에서는 전나무로 만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롯해 관련 수공예품, 초콜릿, 와인 등 다양한 물품들을 만날 수 있다.

필자가 방문한 마켓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체코 프라하 등이었다. 이 크리스 마켓은 유럽의 역사이자 일상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광장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비엔나 크리스 마켓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모두 목이 짧은 장화모양의 컵을 들고 다녔다. 자세히 보니 거기에 따뜻한 커피와 와인을 담아 음미하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해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 장화모양의 컵을 구입, 와인 한잔을 받아 마시며 유럽인들처럼 돌아다녔다. 이처럼 몇몇 도시를 돌면서 접한 크리스 마켓은 종교와 뗄 수 없는 유럽인들의 삶의 본령으로 이해됐다.

크리스 마켓을 통해 직감해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정신이나 일상의 중심에 가톨릭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 대표적인 시설이 광장문화와 접목된 성당이었다.

제일 먼저 접한 성당은 13세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남부 알자스의 작은 마을로 ‘쁘띠 프랑스’이자 프랑스의 작은 베네치아로 알려진 콜마르의 생마르탱 성당이었다. 마을 곳곳을 답사하면서 이보다도 더 깊은 종교의 역사와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채 여행객의 도시로 불리는 오스트리아로 넘어가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만났다. 잘츠부르크의 문화적 특성이 압축된 곳으로 쇼핑의 거리를 이루고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잘츠부르크 대성당은 바르크 양식으로 744년 창건돼 1871년부터 20년간 증축됐다고 한다.

아쉽게도 1655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시 증축됐다. 가톨릭 전통을 지켜온 나라답게 성당 내부는 웅장했다. 밝은 대리석으로 치장돼 우아한 느낌을 안겨줬으며, 건물 양쪽 끝 높이 80m의 탑은 좌우로 대칭을 이루게 설치돼 균형을 잡아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부 홀은 자그마치 1만여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고, 하얀 대리석과 벽화로 장식된 점이 특징이었다. 20세기 후반 제작된 청동 문이 3개가 있는데 이는 각각 왼쪽부터 믿음, 사랑, 희망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은 앞쪽으로 게트라이데 거리가 펼쳐지고 있고, 뒤쪽으로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채가 구시가지 가장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근에는 미라벨정원까지 자리해 종교시설을 거점으로 한 관광 여건이 한없이 부러웠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채에서 바라본 잘츠부르크 도심 풍경은 짤짜흐강을 중심으로 조망된다. 도심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반드시 빠뜨리지 않고 둘러봐야 할 성당으로 비엔나의 슈테판대성당이 있다. ‘빈의 혼’(魂)으로 불리는 슈테판대성당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聖人) 슈테판에서 이름을 차용했다. 고딕양식 건물로 114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을 시작, 공사기간만 65년이나 걸렸다 한다. 건물의 길이가 107m, 천정 높이가 39m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으로, 높이 137m에 달하는 첨탑과 25만 개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슬로베니아의 북서부 ‘알프스의 눈동자’로 불리는 블레드에는 빙하호가 자리하고 있다. 그 호수 한 가운데 조그만 섬에는 교회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블레드 호수라 불리는 곳으로 15세기에 지어진 성모 마리아 교회가 우뚝 솟아 있다. 고딕 양식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교회 내부는 바로크 양식의 가구들이 보존돼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정작 다른데 가 있는 듯 보였다. 교회 한 가운데 기다란 로프에 매달린 종이 있는데 행복의 종으로, 세번 당기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해 힘껏 잡아당겼다. 종소리가 호수로 울려 퍼져 나갔다.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호수 한편에는 유고연방대통령을 역임한 티토의 별장도 자리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보물로 불리는 자그레브 대성당(왼쪽)과 체코 프라하 구시청사의 천문시계(오른쪽).

이와함께 이채롭게 눈에 들어온 성당은 크로아티아의 보물로 불리는 자그레브 대성당이었다. 캅톨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가장 높은 건물로 자그레브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외관은 로마네스크의 과도기적인 양식을 띄고 있으며, 대성당과 대성당 내부의 제의실은 전형적인 고딕 양식으로, 북쪽과 남쪽에 위치한 첨탑은 높이가 각각 105m와 104m로 시내 어디서든 눈에 띈다. 1093년 헝가리 왕 라디슬라스가 세우기 시작해 1102년에 완공됐으며, 5000명이 한꺼번에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꽃보다 누나’에서 배우 김희애가 눈물을 흘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자그레브 대성당에서 걸어서 얼마되지 않는 곳에 자리, 지붕에 있는 모자이크가 인상적인 성마르코 성당은 13세기에 건립된 건물로 지붕이 예쁜 성당이다. 빨강, 파랑, 흰색의 아름다운 체크무늬 바탕의 지붕으로, 왼쪽에는 크로아티아 문장이, 오른쪽에는 자그레브 시 문장이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인근에는 돌락시장과 반 옐라치치 광장이 있다. 두브로브니크의 구시가의 대표적 르네상스 건물인 성사비오르 성당과 1317년에 세워진 프란체스코 수녀원, 도시의 수호성인 성블라이세를 기리는 성블라이세 성당도 허투루 볼 수 없었다. 이들 종교시설을 보면서 두브르브니크의 성채 안 역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직감할 수 있었다.

어부의 요새를 비롯해 세체니 다리와 함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꼽히는 마치시 성당은 13세기 건립된 초기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헝가리 국왕들이 대관식과 결혼식을 올리던 장소로 역사가 서린 곳이었다. 1470년 마차시 왕의 명령으로 증축된 88m 높이의 첨탑과 원색의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이 눈길을 붙잡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역사지구로 지정된 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 자리한 틴성당은 성 비투스 대성당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종교 건축물로 1365년 건립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다. 중앙에 우뚝 선 80m 높이의 쌍탑과 그 주변을 에워싼 작은 탑이 눈길을 붙잡는다. 원래 쌍탑 사이에는 후스파를 상징하는 황금 성배가 있었는데 1621년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황금 성배를 녹여 마리아의 후광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광장 끝자락에 하누슈가 1410년에 최초로 설치한 프라하 구시청사 천문시계가 인파를 끌어 모았다.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됐으며 현재도 작동되는 것으로 계절, 별자리 등 모든 천체과학과 원리가 집약돼 있다. 올해 9월 새롭게 단장돼 선보일 예정이다.

성 슈테판 대성당이나 잘츠부르크 대성당, 자그레브 대성당 등 유럽의 성당들은 하나같이 잦은 전쟁과 화재 등에 의해 훼손됐지만 후에 모두 복원됐다. 그들이 왜 복원했을까를 생각하니 종교시설이야말로 유럽인들의 삶과 정신의 구심점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성당이야말로 유럽 건축문화의 정수 그 자체였다.

고선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