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운명을 내다보는 일은 어떤 것일까. 또 한 번 정해진 운명이란 것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또, 타고난 운명이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물음들을 가득 끌어안고 서구 치평동에 자리한 ‘청경역학연구원’을 찾았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단출한 생활한복을 차려 입은 청경 김영철 도사가 반가이 맞아준다.
사무실 내부는 깔끔했다. 벽면에는 ‘사주명리학’과 관련한 각종 자격증이 내걸렸고, 서적들도 빼곡했다. 내부를 빙 둘러보다, ‘예도운명’(豫導運命)이라 써진 액자에 시선이 머물자 김 도사가 얼른 부연을 한다.
"예도운명이란, 운명을 예측해 좋은 길로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곳의 존재이유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 되겠죠."
운명을 미리 내다보는 것, 즉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사람을 살리는 일과 같다. 의사나 약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이 의학기술로서 사람 목숨을 살린다면, 김씨와 같은 역학가들은 타고난 사주팔자(四柱八字)를 분석, 이에 근거해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친다. 그 중 예측된 ‘흉’과 ‘화’를 피해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재정립해주거나 치유해주는 것이 역학가들의 업이다.
"쉽게 말해 사주명리학이란,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과 생시를 기준으로 ‘그날의 기운’과 ‘자신의 운명’이 잘 맞는지 풀어보는 것입니다. ‘음양오행’의 기운 중 약한 것은 채워주고, 너무나 강한 것은 눌러주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소한의 역할이죠. 길과 흉은 인간 삶에 깃드는 기운의 부조화에서 비롯되거든요."
그의 호는 ‘청경’이다. 푸를 청(靑)에, 빛 경(景)자를 쓴다. 푸른빛은 ‘소생’이나 치유의 의미가 담겨있는데, 말 그대로 풀어보자면 밝고 좋은 방향으로 치유해준다는 의미다. 타고난 운명을 점친다니, 꼭 이 업마저도 ‘타고난 운명’이 아닐까 싶지만 꼭 그렇지 않다. 그의 특이한 이력 탓이다.
김씨는 원래 공직에 있었다. 1981년부터 10여 년 간 국방부에서 일을 했고,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로 자리를 옮겨 2010년 은퇴할 때 까지 광주지방공정거래 사무소장으로 활동했다. 남의 운명을 점치는 것과는 무관한 업이었지만, 그에게 ‘사주명리학’은 재미난 놀이처럼 또는 취미처럼 늘 곁에 있었다. 이유는 어렸을 때, 사주명리학에 대한 좋은 기억 덕이다.
"할아버지께서 동네사람들 사주를 봐주셨어요. 그것을 어깨너머로 본 기억이 있죠. 사람들 사주를 봐주면, 떡을 시루 채로 싣고 오기도하고 쌀을 받아오기도 하셨어요. 제 기억 속에 사주명리학은, 막연히 ‘좋은 것’, 또는 ‘먹고 살기에 보탬이 되는 것’으로 인식됐죠. 그러다 성인이 되고부터 본격적으로 관심을 뒀어요."
그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사주명리학과 관련한 서적들을 읽고 공부했다. 오랜 시간 독학으로 공부를 했는데,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각 책마다 내세우는 이론들이 상충할 때가 많아서다. 독학으로는 이러한 간극들을 메울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평생교육원·한국역술인협회 등에서 여는 강좌를 찾아가 들었다. 그렇게 해도 안 되는 부분들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10년을 헤매는 부분도, 좋은 스승한테 배우면 깨우치는 것이 있다"며 사주명리학을 깊이 있게 공부하는 방법으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을 꼽는다. 혼자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이라면,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지름길’이란 설명이다.
그의 내공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자격증들이다. 김씨는 (사)한국역술인협회 역학상담사 자격증은 물론, 역학카운슬러·생활작명지도사·관상학 등 다수 자격증을 땄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장치들이라 한다.
그렇게 차분하게 준비해 청경역학연구원 문을 연 게 2011년 12월이다. 이전의 업과는 전혀 무관한 ‘제2의 인생’을 열어젖히는 일은 아무리 사주명리학을 철저히 공부한 그라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은퇴할 때가 되니 이 곳 저 곳 로펌에서 러브콜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 같은 ‘좋은 자리’를 마다한 이유는 딱 하나다. 여생을 보람되게, 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겐 잘하는 일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 있죠. 좋아하는 일이 곧 잘하는 일이라면 인생의 절반은 성공입니다. 행복해지니까요. 저는 직업과 별개로, 사주명리학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해왔고, 준비했기 때문에 행복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의 인생을 논하는 일은, 생각만큼 어렵다. 그는 말 한마디라도 정성스럽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상담을 원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년월시’를 먼저 주면, 문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사주감명서’를 작성한다. 한 사람 당 두 시간이 훌쩍 넘게 걸린다. 그가 하루에 4명 이상을 보기 힘든 이유다.

광주지방공정거래 사무소 직원들과 함께한 김씨(뒷줄 가운데)

"사전 작업 없이, 바로 와서 보게 되면 아무래도 세밀하게 분석하기가 힘들죠. 놓치는 부분도 있을 테고요.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두 부류에요. 운이 꺾여서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 또 하나는 중요한 결정을 앞둔 사람들이죠. 절박하다면 절박한 사람들이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논하는 만큼 작은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는 게 기본 마음가짐입니다."
그가 작성해주는 사주감명서는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이 잘 돼 있다. 사주를 보고 나서 ‘의문’이 들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남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보람된 일도 많았다. 사람을 살리는 ‘활인’(活人) 역할을 제대로 해내었을 때, 무엇보다 기쁜 그다.
"좋지 않은 운이 계속되다보면, 건강이 안 좋아집니다. 한 사람이 찾아왔는데 건강에 좋지 않은 기운이 감지됐어요. 정밀검사를 제안했는데, ‘백혈구 감소증’이란 병을 잡아냈죠. 후에 다시 저를 찾아와 감사인사를 전했는데 정말 제 일처럼 기뻤어요."
그에게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한 번 정해진 운명이란, 바꿀 수 없는 것인가"란 문제였다. 김씨는 어느 정도의 그릇, 즉 ‘격국’(格局)은 정해져 있다고 답해준다. 사람의 바탕은 이미 나와 있고, 이를 좋게 혹은 나쁘게 끌고 가는 것은 ‘운’의 크기라는 것. 그는 이를 자동차에 빗대어 맞춤형으로 설명해준다.
"타고난 인생은 자동차의 품격과 같아요. 에쿠스면 에쿠스, 소나타면 소나타, 티코면 티코 처럼요. 티코는 티코일 뿐, 아무리 대운이 들어온대도 에쿠스가 될 수는 없어요. 쉽게 말해 인생이란, 각자에게 주어진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것이죠. 대운이 들어왔을 때는 자신 앞에 포장도로가 펼쳐져있다고 보면 됩니다. 운이 나쁠 때는 비포장도로 구간을 지나고 있구나 생각하면 돼요."
그에 말에 따르면 아무리 좋은 차로 태어났대도 대운이 나쁘면 덜컹거리기 마련이고, 작은 차로 달리더라도 대운이 좋으면 평안한 것이다. 김씨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일"이라 말한다.
"생(生)의 행복은 욕심을 버리는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스스로 제 그릇을 알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평안한 인생이 펼쳐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누군가의 운명을 내다보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요. 물론 힘겨울 때 왜 없겠습니까. 다만 40여년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면서 깨우쳐 온 인생사 진리들을 나누며 살 수 있어 행복합니다."


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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