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에 분포한 문화재는 모두 1만여점. 여기에 지정 또는 등록을 앞둔 문화재까지 합하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처럼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문화재를 보다 잘 가꾸고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자체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관리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않고 있는 ‘소외된 문화재’를 찾아 가꾸는 시민들이 있다. 현재의 문화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처럼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주는 것은 물론, 문화재를 즐기며 가꿔나가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로 구성된 ‘무진주 문화재지킴이’ 이야기다. 이들은 10년 동안 자발적으로 지역의 문화재 관리에 나서 환경미화에서부터 전문적인 콩댐작업을 펼치며 문화재 보존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이근섭 회장(60·무진주 문화재지킴이)을 최근 만나 문화재지킴이의 전반적인 활동내용을 들어봤다.

"문화재를 말끔히 청소하고 나면, 마치 몸을 깨끗이 씻고 목욕탕을 나온 것처럼 개운하고 마음이 상쾌합니다."
지난 2009년, 문화재를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는 이들 10명이 뭉쳤다. 그리고는 광주의 옛 이름 ‘무진주’를 딴 ‘무진주 문화재지킴이’ 이라는 순수 동아리 형태의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의 인연은 2008년 문화재관광청에서 주관한 ‘문화재지킴이’ 위촉을 받고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시작됐다. ‘광주 문화재지킴이’ 1기와 2기에 걸쳐 지킴이 교육을 수료한 동료들과 자연스레 지킴이활동을 실천하기 위한 동아리를 만들자고 뜻을 모았고, 이근섭씨를 회장으로 추대한 게 시작이다. 모임에는 이씨를 포함해 기아자동차에서 근무하고 있는 5명의 회원과 광주지역 문화유산해설사 4명, 일반 회사원인 1명으로 구성됐다.
"이 모임은 문화재 보호활동에 있어 지원을 받지 않고 회원들의 자비로 휴일을 반납해 자율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에요. 여기다 아마추어이지만 체계적인 준비로 전문적인 문화재 관리를 펼치고 있죠. 무엇보다 문화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단 한 번의 갈등도 없이 활동을 펼칠 만큼 문화재를 생각하는 마음이 뜨겁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아마추어로서 처음 몇 년 동안 이론을 공부하고 현장을 답사하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한번 훼손되면 돌이키기 힘든 문화재 보호 활동을 하기 위해 정확한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
이를 위해 매주 2회 분량을 정해 한옥, 석탑 등에 관련된 서적을 읽고 그 문화재와 관련한 발표를 하는 등 공부를 지속했다. 당시 40~50대의 직장인들이 퇴근 후 관련 서적을 탐독하기 위해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텐데 문화재에 대한 열정 하나로 뭉쳤다.
그러면서 매년 초에는 새로운 활동주제를 선정, 매월 셋째 주 일요일에 답사를 떠났다.
2009년에는 ‘우리문화 바로보기’를 주제로 전남지역 문화재 수십 곳을 둘러봤고, 2010년에는 ‘광주의 역사와 문화’, 2011년에는 ‘영산강유역 문화재 모니터링’, 2012년에는 ‘유애서원 및 광산구 문화재 가꾸기 활동’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추진했다.
그러다가 2012년부터는 목재 문화재를 중심으로 ‘콩댐작업’에 주력해 왔다.
이는 정자와 서원, 한옥 등 우리나라 문화재에서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목재 문화재 관리에 손길이 늘 부족하며, 외부 환경에 취약하기 때문에 관리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콩댐작업은 메주콩과 들깨를 갈아 목재에 묻어 있는 묵은 때를 벗겨내죠. 그 위에 광택을 내는 작업으로 불린 콩과 들깨를 갈아 무명 자루에 넣고, 목재나 한지 장판에 문지르면 콩물(천연수지)이 나무의 세포막에 침투해 도막을 형성해요. 이것이 마르면서 보기 좋은 색을 띠게 하고 방수제 역할까지 하게 됩니다. 장판과 목재에 이 작업을 하면 빛과 윤이 나고 목재 또한 썩지 않아요."
이때부터 펼친 목재 문화재 콩댐작업은 지금 이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됐다. 이들만큼 광주에서 콩댐작업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은 없을 터.
이들은 서원 몇 곳을 콩댐작업을 통해 새롭게 탄생시켰다.
장성의 ‘고산서원’은 바닥은 때가 끼고 지저분했으나 지난 2013년 10명의 회원이 방문해 3일간 하루 8시간씩 마루에 칠해진 니스를 벗겨내고 콩과 들깨로 마루 바닥을 문질러 깨끗하게 만들었다. 또 시민강좌 공간으로 활용되던 광주 광산구의 ‘무양서원’ 강당은 이전까지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만 했던 곳이었으나 작업 후에는 신발을 벗고 입실이 가능해졌다.
이들의 이 같은 수고로 나무 틈 사이의 찌든 때가 벗겨지면서 바닥이 윤기나는 곳으로 바뀐 곳은 고산서원과 무양서원 외에도 유애서원, 풍영정, 호가정, 풍암정, 담양 상월정, 정읍 영모재 등이다.
이외에도 무진주 문화재지킴이들은 지역 곳곳에 방치돼 있는 ‘비지정문화재’를 돌보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다.
이를테면 영산강변의 문화유적이나 퇴락해가는 마루 바닥 등 이들의 손을 거쳐 새롭게 거듭난 문화재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난 2011년에는 담양 시원지에서부터 목포 하구언에 이르는 영산강유역의 수많은 문화재들을 찾아다니며 모니터링 하고 주변을 정화한데 이어 영광, 나주, 화순, 영암, 보성, 구례 등의 방치된 문화재들은 주변의 풀을 재배하거나 콩댐작업을 펼쳐 탈바꿈시켰다.
‘무진주 문화재지킴이’는 당시 영산강유역 문화재 활동으로 문화재청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2011년 영산강 유역 답사를 실시한 뒤 찍은 단체사진

회원은 모두 10명이지만 매월 떠나는 정기답사에는 30~40명이 참여할 때가 많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기 위해 회원의 자녀·부모님까지 함께 모셔 답사를 진행해서다. 이들이 가족과 함께 벌이는 이러한 활동이야말로 문화재의 중요성과 문화재 가꾸기 위한 일 중 하나라고 그는 강조한다.
"가족과 함께 문화재 활동을 하고 나면 문화유산을 함부로 대하거나 취사 등으로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마치 자신의 것 인양 불미스런 행동을 해 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문화재에 대한 예의를 배우게 됩니다. 문화재는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한다는 ‘국민의식’을 갖게 되는 일이죠."
2년 후면 문화재지킴이 회원 2명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이들이 퇴직 후 문화재 활동에 더욱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이어 지금의 동아리 형태의 모임을 비영리단체로 등록해 보다 전문적인 문화재 단체가 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를 위해 올해 처음으로 신입 회원 모집에 나서는 등 외연을 넓히는 중이다.
특히 올해 이들은 활동 주제를 ‘전국명승순례’로 잡았다. 이에 따라 창덕궁후원을 비롯해 화양구곡, 준경묘, 청암정 등 명승을 둘러보며 환경 정화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문화유산 헌장에도 밝히고 있듯이 문화유산은 우리 겨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보배이자 인류문화의 자산으로 한 번 손상되면 다시는 원상태로 돌이킬 수 없어요.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 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의무가 있잖아요."
"평생 문화재를 알고 즐기며 활동하는 일에 주력하고 싶다"는 이 회장은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문화재는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문화적 자산이자 문화를 발전시키는 근원입니다. 문화재에는 민족의 정체성과 정신이 담겨있어 미래 발전의 창조적 소산이라고 생각하죠. 이처럼 문화재 보호에 대해 모든 시민이 자신의 일이라고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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