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는 선교문화의 발원지인 양림동과 사직동이 자리하고 있어 근현대 역사의 보고로 손꼽힌다.
양림동은 역사문화마을로 호남신학대학을 비롯해 유진벨 선교기념관, 우일선 선교사 사택, 오웬 기념관 등 양림동의 기독문화유산과 이장우 가옥, 최승효 가옥 등이 자리하고 있고, 인근 사직동은 광주의 근·현대역사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림동의 문화유산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직동 등의 문화유산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광주 남구는 양림동 일원을 선교유적 및 생태숲 복원, 전시·디자인 등 콘텐츠 개발을 골자로 한 ‘역사문화마을 관광자원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직동도 문화역사공원으로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네 번째 순서인 남구편에서는 양림역사문화마을의 문화유산 관리·활용 실태를 파악하면서 상대적으로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는 문화재들까지 조망한다.


남구 관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 2개와 지방 지정문화재 35개(유형 7개·무형 9개·기념물 6개·민속문화재 3개·문화재 자료 6개·등록문화재4개) 등 총 37개의 문화재가 있다.
이 중 양림동은 마을 전체가 근대문화체험관으로 꾸며지고 있다. 이들 중 유진벨 선교기념관, 우일선 선교사 사택, 오웬 기념관 등 양림동의 기독문화유산과 ‘최승효 가옥’과 ‘이장우 가옥’이다.
먼저 양림동 관광안내소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막다른 골목에 ‘최승효 가옥’이 나온다.
이 가옥은 1921년 최상현 선생이 지은 집이다. 최상현 선생은 중국과 무역을 통해 큰 부를 축적한 독립운동가이다.
이 집은 정면 8칸 측면 4칸으로 규모가 크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기와는 유약을 바른 적색기와로 특이하고, 정면에 비대칭수법을 사용해 율동감을 주는 등 전통가옥이 개화기 한옥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민속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집을 지을 때 백두산과 압록강 인근의 최고급 목재를 구해 바닷물에 3년 담갔다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공들여 지은 집에 다락방이 있었다. 이곳에 독립운동가를 숨겨준 일화는 유명하다.
여기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이장우 가옥’이 있다. 후손이 울타리 한쪽에 집을 지어 살고 옛집은 관람할 수 있게 했다. 1899년 안채와 대문간을 건축했고, 1959년 이장우 선생이 매입해 사랑채, 행랑채, 곳간을 지어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안채 앞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고 안채 앞에는 펌프가, 장독대 앞에는 수도가 있다. 이장우 선생은 동강유치원, 동신 중·고등학교, 동신여중·고등학교, 동강대학, 동신대학교 등을 설립한 교육자다.
이 두 가옥이 양림동의 역사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보니 안내하는 이정표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어 찾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광주 천변, 기독교병원, 호남신학대학교 부근에 까지 이정표가 있어 이 두 가옥이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최승효 가옥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개방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무런 정보없이 찾았다가는 가옥 내부를 보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대문과 담장만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또 포털사이트에서 ‘최승효 가옥’을 검색하면 가옥의 구조에 대한 설명 뿐 최승효 선생에 대한 내용은 찾기 힘들다. 물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등에서는 언급돼 있으나 문화재관광청 홈페이지와 심지어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에서 발행한 ‘양림을 걷다’라는 책자에서 상세한 내용을 찾기 어려워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대목은 문화재에 대한 정확한 내용 전달보다는 안일한 홍보 중심에 치중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를 맞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승효, 이장우 선생의 이름이 명칭으로 쓰이고 있는 만큼 이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정리되는 등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어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인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 대한 좀더 체계적인 접근과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곳은 광주나병원과 제중원을 세운 우일선 선교사가 거주했던 곳으로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돼 있다.
1921년 증축된 이곳은 지난 2010년 2억2605만 원의 예산으로 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동문화재단 모니터링 팀이 조사한 결과 흰개미 가해가 있었던데다 지붕 물받이가 손상돼 있어 수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선교사 사택은 호남신학대학교의 영성센터로 강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2층에는 기도실이 있어 영성훈련소로 이용되는 공간이다.
그러나 광주 기독교 선교 발상지로 오웬기념각, 윌슨 선교사 사택 등과 함께 이곳이 선교역사문화투어 코스에 포함되면서 후유증도 생기고 있다. 방문객들의 발길이 늘면서 학생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비지정문화재 '남평문씨 쌍효문'

투어를 진행하는 해설사의 설명멘트와 방문객들의 소란 등이 더해지면서 강의와 영성훈련에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다 담배꽁초 등을 무단 투척하는 일까지 잦아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수립이 요구되고 있다.

광주 남구 사직길 49에 위치한 비지정문화재 '양파정'

양림동 소재 근대문화유산이 재조명되면서 2009년부터 ‘근대문화유산 탐방로’로 추진돼 올해 햇수로 10년째를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구는 지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양림동 일원(20만㎡)에 254억원(민자 53억원 별도)을 투입,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 전통보존과 도심재생을 함께 이뤄낸다는 복안으로 지난 2012년 말 순교자 기념공원 조성과 문학소공원 조성, 선교사 사택 보수 등 1-2단계 사업을 완료했다.
이후 3단계 사업으로 커뮤니티센터 건립, 마을 주차장 조성, 정율성로 정비, 역사문화길 조성 등을 일부 완료하고 역사길 2단계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양림동 문화유산에만 집중투자되다 보니 양림동 밖 문화유산들은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남구 사직동이 꼽히고 있다.
사직동은 광주의 연원을 찾아 나설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역이다. 조선시대 국가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했던 사직단(社稷壇)이 자리한 곳인데다 일제 강점기 광주의 3·1운동 최초 발상지도 이곳 사직동 광주 천변 일대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사직동은 광주 근현대의 역사는 물론 임진왜란 의병의 혼까지 광주의 지난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성거산으로 불렸던 광주공원에는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 109호 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과 시 유형문화재 9호 광주향교, 임진왜란 당시 광주목사였고 도원수까지 오른 권율 장군 창의비가 자리하고 있다. 사직공원에는 예의 사직단과 광주의 명소 중 하나인 통기타 거리까지 조성돼 있다.
이곳에는 구한말 항일 의병 투쟁 시 남도 제일의 의병장이었던 심남일 순국비와 4·19 기념비, 어린이 헌장 탑, 5·18 전적비, 남평 문씨 쌍효문 및 석서정, 양파정, 화수정 등이 자리하고 있다. 옛 선대들의 혼과 흔적이 곳곳에 어려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양림동에 비해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아쉬움을 더한다.
남구 사직길 49번지에 위치한 ‘양파정’은 조선말 양림리의 큰 부자이며 참봉을 역임한 온양 정씨 양파 정낙교가 고려말 광주청의 강 가운데 건축했다. 홍수를 다스린 석서정을 추억하며 1914년 양림산 바위 언덕에 건축했는데 후에 광주에 기증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부후균류의 침입에 의해 목질이 분해돼 조직이 파괴되는 현상이 기둥 하부에 나타나고 있으며 기둥과 초석사이 이격이 발생 돼 구조안전 진단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파정’ 지척에 있는 200여 년의 역사와 지극한 효심을 품은 ‘남평문씨 쌍효문’의 상태는 더욱 처참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가 전혀 안된 상태로 방치돼 있고 내부는 각종 폐기물이 버려져 있어 쓰레기장을 방불케하는데다 기와는 천으로 덮혀있는 채 곧 무너질 듯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동네의 흉물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이곳이 유적임을 알게 해주는 ‘쌍효문’ 관련 현판 두 세 개가 간신히 자리를 보전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남구 관계자는 "복구가 안될 정도로 관리가 안돼 안타까운 상황"이라면서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해봤지만 지정문화재가 되기에는 훼손이 너무 심하다"고 설명했다.
방치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는 사직동의 문화재는 이 뿐이 아니다.
‘쌍효문’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있는 ‘최부자집’도 개보수가 시급하기는 마찬가지다.
1936년 착공해 1942년 완공된 최부자집은 총 1800평 규모의 일제강점기 광주일대 대표적인 건축물로 일본식이 혼합된 개량 한옥 건축물이다. 현준호, 정낙교와 더불어 광주부자로 알려진 최명구의 아들 최상현이 그의 큰 아들 최정숙에게 2층의 한옥을 지어 물려준 게 이 집의 유래다.
오랜 세월과 관리부실 탓에 현재는 기와가 떨어지고 누수 현상으로 목재가 썩어가고 있다. 정원은 나뭇잎이 수북이 쌓여 있고 지붕에는 풀이 자랄 정도로 방치돼 있다.
한 주민은 "이 집에 대해 모르는 주민들이 없는데 들어가 본 사람들도 없다"며 "개보수 후 시민들에게 개방하면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최부자집’은 남구에서 관리하기 위해 시도한 비지정 문화재 중 한 곳이었다. 남구와 대동문화재단, 무진주문화재지킴이, 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 등 지역의 문화재 관계자들이 이 곳의 안타까운 현실을 접하고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 대상으로 포함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소유주의 거듭된 거절로 성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유주가 관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사직문화보존시민모임과 사직동 마을기업 꿈꾸는 거북이에서 최부자집의 문화적 가치를 대내외에 알리고 보존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상황이 이러한 만큼 관리 사각에 놓인 남구 사동의 역사문화자원 관리와 활용까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재 관계자는 "최부자집의 경우 지정문화재가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될 수 있고 활용을 통해 지속적인 개보수도 할 수 있게 된다"며 "지정문화재가 되면 오히려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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