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주년 5·18민주화운동을 맞아 거리행진부터 촛불집회까지 광주가 다시 뜨거워진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광주로 모여들고 이목이 집중된다. 모인 이들은 손에 손을 잡고 1980년 5월 그날의 광주를 떠올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5·18 민주묘지에 꽃을 바치며 넋을 기린다.
광주에서는 5·18의 넋을 기리고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매년 5월이 되면 기념식을 비롯해 행사가 펼쳐진다.
5·18행사위원회, 5·18기념재단,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오월어머니집, 여러 시민단체와 관련 기관들은 5월 한 달 간 광주 지역 곳곳에서 ‘보아라 오월의 진실, 불어라 평화의 바람’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행사를 진행한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배경

1979년 10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국민들의 자유를 억누르던 유신 체제는 그 막을 내렸다. 국민들은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었지만 이 바람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정권에 눈이 먼 일부 군인들이 무력을 앞세워 권력을 빼앗으려는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바라는 시민들과 대학생들은 옳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을 차지하려는 일부 군인들을 향해 물러나라고 소리를 높였다.
1980년 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출범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난 운동이지만 광주의 함성은 유달리 컸다.
신군부는 5월 17일 0시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기에 이른다.
5월 18일 오전 10시께 전남대학교 교문 앞에 모인 학생들이 출입을 막는 계엄군에 항의하면서 광주에서의 최초의 충돌이 일어난다.
이후 광주 시내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무고한 시민들까지 닥치는 대로 폭행하고 연행하는 것을 보고 광주 시민들은 두려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된다.
대학생들은 시내로 뛰어나와 ‘비상계엄령 해제’, ‘전두환 퇴진’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시작하고 계엄군은 무자비한 폭행을 가한다. 이 일이 5·18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되면서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10대 청소년들까지 시위에 참여하게 된다.

△5·18민주화운동의 전개
19일 새벽, 도심 곳곳에서 시민과 계엄군의 격렬한 대치가 일어났다. 오전 10시께 금남로로 하나 둘 모인 군중들이 2000~3000명까지 불어나면서 군경의 저지선과 대치하고 있었다.
잠시 후 경찰과 공수부대는 최루탄을 쏘면서 적극적인 해산에 나섰고 전날의 진압에 분노한 시민들은 이에 대항했다.
추가 투입된 공수여단 병력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인한 살육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전날 계엄군에게 영문도 모른 채 구타를 당한 김경철 군이 사망하게 된다.
20일 광주 시가지는 팽팽한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수만 명의 인파가 금남로를 뒤덮었다. 경찰들은 최루탄을 쏘는 등 공방전이 계속됐고 시간이 흐를 수록 시위대의 수는 늘어났다.
시민들은 잔혹한 진압에 맞서기 위해 주위에서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이용했다.
이윽고 밤 11시께 총성이 울렸다. 광주에서의 첫 발포였다.
21일 아침이 되자 새벽 광주역에서 사망한 시체 2구가 시민들의 손에 들려왔다. 시민들은 손수레에 시체를 싣고 태극기로 덮어 시내로 나갔다.
시장 주변에서는 반찬과 밥을 모아 지나가는 시위대에 제공하기도 했으며 동네 아주머니들은 주먹밥을 만들었다. 아침부터 모인 시민들과 계엄군은 금남로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오후 1시 도청 건물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면서 공수부대원들의 조준사격이 시작됐다. 10분간 계속된 집단 발포에 의해 금남로는 피바다가 됐다.
이제서야 시민들은 무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각 지역의 예비군 무기창고 등에서 총기를 노획했다. 오후 5시 30분 계엄군의 총 퇴각이 결정되고 시민들은 도청에 입성했다.
22일부터 25일까지의 광주는 비교적 조용했다. 시민군 지도부 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시민들은 어느 정도 질서를 회복하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은행 등 금융기관에 대한 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고 발생한 범죄율은 평상시보다 훨씬 낮았다.
26일 새벽. 전에 시민군이 계엄군으로부터 탈취한 무전기를 통해 계엄군이 탱크를 앞세워 시내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마지막까지 남기로 한 항쟁지도부는 도청에 비상령을 내리고 조용히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 사실을 알려야 된다고 판단하고 차량에 올라 광주 시내 전역을 돌며 가두 방송을 했다.
"시민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우리 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숨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계엄군과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이윽고 27일 새벽 4시. 도청에는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계엄군들은 닥치는 대로 총을 쏘면서 진압했고 1시간 30분이 채 지나기 전에 최후의 항전은 끝났다. 5·18민주화운동의 열흘간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지난해 5·18기념행사 중 하나인 시민참여 그림 그리기 행사 모습.

△38주년 맞은 5·18 기념행사
올해 38주년 5·18 기념행사는 ‘보아라 오월의 진실, 불어라 평화의 바람’이라는 슬로건으로 치러진다.
5·18행사위원회, 5·18기념재단, 5월 3단체(유족회·구속부상자회·부상자회), 오월어머니집, 시민단체 등은 5월을 맞아 각종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거리행진부터 촛불집회까지 광주는 38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거리 곳곳에는 1980년 당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현수막이 설치된다.
먼저 5월 10일부터 27일까지 옛 전남도청 일원 및 5·18 사적지 일대에서 5·18 행사위원회가 주관하는 ‘5·18 역사탐방’을 진행한다.
5월 16~17일에는 5·18기념재단 주관으로 광주아시아포럼이 열린다. 아시아포럼은 지난 1999년 ‘아시아 민주희생자 연대’라는 명칭으로 시작돼 해마다 꾸준히 열리고 있는 학술행사이다. 5·18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로 토론이 펼쳐진다.
17일에는 오전부터 오후 늦은 시간까지 금남로 일대에서 전야 행사가 열린다.
‘보아라 오월의 진실, 불어라 평화의 바람’이라는 슬로건에 맞춰 다양한 체험부스, 거리공연, 촛불 사진전 등이 진행되고 5·18 하면 떠오르는 주먹밥 나눔 행사가 펼쳐진다.
주먹밥은 1980년 5·18 당시 철저히 고립된 광주 안에서 시위대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서로 주먹밥과 음료를 챙긴 나눔의 정을 의미한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행사장 곳곳에서 유족회, 구속자회, 부상자회, 오월어머니집, 시민단체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들에 나눠주는 행사를 매년 진행해 오고 있다.
이어 오후 7시부터는 금남로에 설치되는 본 무대를 중심으로 제38주년 5·18 전야제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금남로 일대의 차량을 통제하고 전시와 체험행사, 공연, 추모제 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함께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부스가 설치된다. 이 밖에도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편지낭독, 광주를 찾은 손님들의 평화의 메시지, 청소년들이 준비한 플래시몹이 계획돼 있다.
18일에는 5·18 민주묘지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지난해 기념식에는 4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했으며 그동안 합창이니 제창이니 논란이 돼 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참석자 대부분이 공식적으로 제창을 하게 됐다. 공식행사에서 제창을 한 것은 9년만으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이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5·18민주화운동 정신 그 자체다. 오늘 공식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20일에 펼쳐지는 5·18 민주기사의 날 행사는 5·18 당시 시위대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택시와 버스 운전사들을 기리기 위해 광주 챔피언스 필드부터 금남로까지 행진한다.
1980년 5월 버스와 택시 운전사들은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해 발생한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버스로 계엄군과의 대치선을 만들어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시위를 이어나갔다.
마지막으로 27일,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광주 동구 금남로 차 없는 거리에서는 청소년 민주주의 축제인 ‘레드페스타(REDFESTA)’가 열린다. 5·18 레드페스타는 1980년 5월을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5월을 기억하고 광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공간인 금남로에서 진행해 온 청소년축제다.
오후 7시 5·18 민주광장에서 5·18 부활제를 봉행하면서 올해 5·18 행사가 마무리 된다. 5·18 구속부상자회 주관으로 열리는 부활제는 지난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에 맞서 최후의 항쟁을 벌이다 숨진 오월 영령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풀어야 할 5·18 숙제
기념식에서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지난해 공식적으로 승인이 났지만 최초 발포자 등의 진상규명은 아직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약 2개월 간에 걸쳐 진행된 암매장 발굴조사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내부적으로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시민단체와 5·18기념재단 간의 첨예한 갈등이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지난 3월 김영진 5·18기념재단 이사장 선출을 놓고 ‘밀실추천’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논란이 되면서 김 이사장이 정식 업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사퇴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간 기념재단과 시민단체는 직원 수당 미지급, 특정인 자녀 채용, 불투명한 사료수집예산 책정, 비정규직 남용 등 시민단체가 제기한 의혹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이어왔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이사회 지배구조 개선 △시민사회와 소통 부재 △직원 고용안정 및 처우개선 △광주시 감사결과에 따른 책임 이행 등 의혹에 대해 반론하기도 했다.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발굴, 최초 발포명령자 규명 등 5·18 진상규명에 박차를 가해야 될 이 시점에 5·18 진상규명의 두 축인 기념재단과 시민단체의 갈등이 원활하게 풀려야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시민단체와 기념재단의 갈등은 풀어야 될 숙제"라며 "5·18이 보다 체계적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잘 풀어나간다면 진상규명에 한발 더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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