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시민활동가, 시민 시장(탈권위), 달빛동맹, 연대·협력, 광주형일자리 등등.
민선6기 윤장현 광주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자, 그가 이룩해 놓은 성과들이다. 비록 6·13지방선거 재선 도전의 꿈은 접었지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광주정신의 세계화’를 위해 또다시 온몸을 바치겠다는 그다.
다채로운 이력만큼이나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삶이 증명해 왔듯, 당장의 아쉬움보단 그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주시장으로 재임한 지 어언 4년, 퇴임을 한달 앞둔 윤 시장을 만나 그가 가고자 했던 광주의 장밋빛 미래, 혹은 진정 남기고자 했던 유산이 무엇이었는 지를 되짚어 보고, 앞으로의 인생계획 등 전반에 대해 물었다.

-2014년 7월 "시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취임선서을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불과 임기가 한 달여 남았다. 민선6기를 마무리하는 소회는.
△모든 권위와 허례허식을 벗고 오직 시민만 섬기겠다고 약속하는 자리였다. 실제 취임식 행사비용 중 현수막 제작비 1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예산 4900만원으로 장애인 직업 재활시설 생산품 홍보 전시관 설치, 근육병 환자 등 저소득 중증장애인에게 전동침대 지원, 광주거주 고려인 가족과 시민 화합의 한마당 행사비용으로 지출했다. 무엇보다 4년이 지난 지금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시민’의 정의가 달라진 것이다.
취임 초 공직자들에게 "시민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민주사회의 구성원’, ‘행정서비스 대상’ 등 원론적이고 사전적 의미로 대답했지만, 지금 공직자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면 ‘시민은 곧 나의 부모님이고 형제이며, 아들·딸이다’고 대답한다.
결국 모든 행정의 출발점이 내 가족, 가정공동체가 됐다. ‘시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섬김의 행정, 시민 중심의 행정, 시민 참여의 행정을 실현했다고 자부한다.

-평생 의사로서, 시민활동가로서 봉사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 행정 수장이라는 책임의 길을 걷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윤장현에게 ‘시장’이란 어떤 의미인가.
△외형적으로는 평생 의사가운 걸치고 살았는데 넥타이에 정장 차림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어색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저에게 맡기신 시장 직은 ‘권위’가 아니라 ‘시대적 소명’이었다. 청년, 우리 아들·딸, 후손들이 광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받고 소외돼서는 안된다고 생각에 무엇보다 후손들이 ‘광주사람’인 것을 부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특히 ‘시민시장’이라는 타이틀의 배경에는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고, 광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 그렇게 광주시민 속에 있다가 나왔으니 시민들의 눈높이에 광주를 생각하고, 행정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했다.
먹고 살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넉넉한 삶, 그리고 ‘5월의 진실규명’을 통해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물려줬야겠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

-민선6기는 여러모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탈권위’에 대한 평가가 높은데.
△취임하면서 그동안의 내 삶의 궤적이나 시민시장으로서 청렴과 도덕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았으며, 시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혜, 특권을 내려놓음으로써 정직하고 진정성 있게 시민에게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먼저 관용차로 ‘소울’을 택한 것이다. 아마 전국 지자체장 중 가장 작은 관용차를 탄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내 몸이 편안해지고, 점점 눕고 싶어지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나를 다잡는 장치이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소울 전기차로 인해 친환경자동차산업을 홍보하는 효과도 톡톡히 했다.
이와 함께 행사 등 여러 의전을 없애 행정의 변화로 나타나기도 했다.
시청이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시민숲’ 조성했고, 카페와 안전체험관, 세미나실, 북카페, 로컬푸드, 장난감도서관 등도 설치했다. 이 밖에도 여름에는 시청광장이 도시속 캠핑장으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과 썰매장으로 바뀌는 등 아이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소수자와 약자를 먼저 챙기는 행정. 그래서 ‘광주형 복지’라는 말이 새로 생겼을 정도다. ‘더불어사는 광주 더불어행복한 시민’이라는 시정목표 실현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시장 취임 후 첫 결재가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 지원사업’이었다. 광주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관련 조례가 없다, 예산이 없다, 타 지자체의 사례가 없다, 정부 지침이 없다’ 등의 이유는 통하지 않았다. 총칼 앞에서도 서로를 보듬어안은 광주, 하물며 행정이 소수자와 약자, 미래세대를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어 전국 최초로 ‘발달장애인 종합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장애인의 실질적인 자립생활 지원을 위해 ‘탈시설·자립생활지원 5개년 계획’을 마련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가도록 터전을 만드는 데 힘 썼다.
또 여름마다 폭염으로 힘들어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긴급 예산을 투입, 관내 1297개 경로당에 에어컨 설치했으며, 176명의 독거노인생활관리사가 여름내내 휴가도 반납한 채 4600여 명의 독거어르신들의 안전과 건강을 매일같이 체크했다.
이외에도 위기의 가정 지원, 행복한 목수로 돌봄이웃 지원, 광주복지재단 설립 등으로 복지사각지대 해소에 주력했다.

- 지난 4년동안 광주의 산업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친환경자동차와 에너지신산업, 문화콘텐츠융합산업 등 소위 ‘3대 밸리’로 불리는 대표산업은 4차 산업혁명시대와 맞물려 방향과 내용을 잘 잡은 것 같다. 그 배경과 성과는 무엇인가.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이 세상을 한발 앞서 보는 눈을 뜨게 했다. 4년 전 ‘3대 밸리’ 이야기를 했을 때는 ‘뜬구름 잡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중공업과 정보통신으로 대표되는 2·3차 산업혁명이 막을 내리면서 지능정보기술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 개막, 아울러 인간과 자연이 상생할 때 지속가능한 미래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산업의 불모지였던 광주가 4년 사이에 많은 변화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선도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세계적인 변화 흐름에 맞춰 친환경자동차와 에너지신산업, 문화콘텐츠융합산업,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이와 관련한 예산과 사업을 펼칠 전용부지도 생겼다.

-‘윤장현’ 하면 ‘광주형일자리’가 연관어로 떠오를 정도로 공을 들인 것으로 안다. 특히 노동을 행정 안으로 끌어들였고, 문재인 정부 또한 ‘광주형일자리’를 100대 국정과제로 포함시켜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에만 있는 일자리가 아니라 광주에서 시작된 일자리 패러다임의 전환이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바람이다. 윤장현의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대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 존엄의 가치를 지키는 좋은 일자리,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일자리이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또한 민선 6기에서 주목받은 일 중 하나다. 이것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중앙정부와 타지역 등 이런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는 기관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인간 존엄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곧 노동의 신성함을 제대로 인정받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취임 초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화장실에서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2015년 새해 첫 결재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고, 지난해 말까지 공공부문 859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일자리는 곧 개인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며, 가정공동체를 지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능력에 대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에 대한 차별은 없어야 한다.

-광주와 전남의 상생이 제2남도학숙 개관, 남도피아 조성, 전라도 정도 천년사업 등 여러 성과를 낳고 있다. 또, 달빛동맹 또한 영호남의 경계를 없애고 연대와 협력의 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경계를 넘어서는 상생에 심혈을 기울인 까닭은.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뜻을 모으면 경계를 허무는 일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한뿌리를 갖고 서로 형제처럼 지내오던 전라도가 비록 행정의 편의에 따라 광주와 전남, 전북으로 나뉘어 틈새가 벌어질 때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손잡고 상생을 모색하는 관계가 됐다.
이낙연 전 전남지사님과는 후보시절부터 광주전남 상생을 약속했다. 우리는 한 형제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며 광주전남연구원 통합, 제2남도학숙 개관, 무등산권과 담양 가사문학권을 아우르는 관광명소 남도피아 조성 등을 추진했다.
광주전남의 상생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빛가람혁신도시’. 광주의 특별자치구라는 생각으로 혁신도시 이주민들의 정주조건을 개선. 한국전력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공기관들이 에너지밸리, 친환경자동차산업 등 미래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동반자가 됐다.
이와 함께 광주전남의 상생만큼 국가균형발전 나아가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영호남의 대립과 갈등의 고리를 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달빛동맹은 연대와 협력의 상징이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구2·28민주운동 기념식에서 달빛동맹의 의미를 강조한 바 있다.

-사드 여파 등으로 한중이 냉전관계를 유지할 때에도 광주는 중국과의 교류 끈을 놓지 않고 이어왔다. ‘중국과 친해지기 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세상은 바뀌어도 이웃은 바뀌지 않는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광주는 G2로 부상한 중국과의 교류 기반을 탄탄히 다지기 위해 민선6기 들어 ‘중국과 친해지기 정책’을 추진했다. 단순히 관광객 몇 명 끌어모으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와 역사, 생활과 경제 등을 깊이 공유하고 이해하면서 미래의 상생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 같은 우호협력적 관계는 사드문제를 둘러싸고 한중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추궈홍 중국대사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광주에서는 중국문화주간 행사 개최, 광주 차이나센터 운영을 비롯해 자매·우호협력도시인 광저우, 염성시, 우한시 등과 문화, 예술, 관광, 산업 등 다방면의 연중 폭넓은 교류를 진행하고 있다. 지방정부 간 결속을 한층 강화하고 수출계약 및 의료관광설명회 개최 등을 통해 실질적 비즈니스 성과를 거뒀다.

-5·18진상규명과 옛 전남도청 원형 복원 등 미완의 광주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도 민선 6기의 역할이 컸다. 그 힘이 어디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가.
△옛 전남도청의 원형 복원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지켜내기 위한 오월어머니들의 천막농성장을 빠져나오면서 전일빌딩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렸고, 그곳에서 총탄자국을 처음 발견했다. 당시의 전율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뒤로 이어진 촛불시민혁명은 5·18민주광장과 금남로를 가득채워 민주정부를 세웠고, 문재인 대통령이 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정신의 계승과 헌법 전문 게재를 약속하며, 광주시민들의 깊은 한을 풀어줬다.
그 뒤로 이어진 5·18진실규명을 통해 신군부 세력이 육해공군을 동원, 광주진압에 나선 사실과 계업사령부의 헬기 사격, 전투기 출격 대기가 사실로 드러났으며, 지난 2월 5·18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미완의 역사가 진실에 조금 더 다가서게 됐다.
광주시도 37년만에 처음으로 5·18진실규명 지원단을 꾸려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진실 "최초 집단발포 명령자가 누구인가"를 밝혀내지 못했다. 이 시대에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기도 하다.
5월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정부나 학자가 아니라 바로 시민이다.

-광주정신은 밖으로 캄보디아, 네팔, 몽골에 이르기까지 광주진료소를 통해 더욱 확대됐다. 윤 시장이 생각하는 광주정신, 광주다움은 무엇인가.
△광주정신은 총칼 앞에서도 내 부모와 형제, 이웃을 지켜냈던 공동체의 힘이다. 그 안에는 인간 존엄의 가치가 살아있다.
즉 광주정신은 곧 남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측은지심’이다.
때문에 광주정신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돼야 한다.
핍박받는 민중, 인권과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민중을 외면하지 않고 꾸준히 연대를 모색, 한편으로는 각종 재해나 재난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일 또한 광주정신의 실천이다.
3년 전 예고없이 찾아왔던 지진으로 깊은 고통과 절망에 빠져있던 네팔에 ‘광주’라는 이름으로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 시민들이었다.
2014년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네팔, 최근에는 몽골에까지 광주진료소가 세워웠다.
인권과 평화, 나눔과 연대의 광주정신 베이스캠프와 같은 곳이다. 광주로 인해 네팔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며, 그 네팔을 통해 보다 큰 지구촌 공동체의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주가 가장 인권적인 도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인권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생명존중 사람중심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이 가치만큼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선6기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부분들도 많을 것 같다. 민선7기에 바라는 것은.
△이제 변화의 첫 발을 내딛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친환경자동차와 에너지신산업 등 광주의 미래를 책임질 토대를 마련했다.
이것을 실질적인 일자리와 먹거리 창출로 연결할 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광주형 일자리를 성공시켜야 한다.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지금까지 광주가 축적해오고 합의해왔던 일들을 성공시켜 한국사회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로 삼아야 한다.
정치인으로서는 ‘초보’였지만, 시민이 세운 문재인 정부가 광주의 오월정신, 일 자리 정책, 청년 정책 등 다양한 분야들을 국가적 아젠다로 가져갔다.
민선7기에서는 이 같은 변화를 제도와 시스템으로 완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분권과 자치, 4차 산업혁명, 지방인구소멸,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사명을 시민과 함께 실현해 나가길 기대한다.

-150만 광주시민에게 어떤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앞으로의 계획은.
△어디서든지 만나면 반갑게 "우리 시장님"이라고 손잡아 주셨으면 좋겠다. 광주토박이는 퇴임 후에도 여전히 광주에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할 것이다.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 중심보다 가치 중심적인 삶을 살 것이다. 여전히 광주가 광주답게 가는 길을 고민하며 나의 역할을 찾을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출장길에 비행기에서 환자를 구했다. 벌써 4번째다. 의사 윤장현으로서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앞으로도 북쪽이나 제3세계에서 보건의료 지원하는 일, 또는 광주정신의 세계화를 위해 스스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 시민과 숨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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