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지난 5월 중순이었다. ‘제36회 대한민국사진대전’ 에 ‘환희’(歡喜)라는 작품을 공모해 당당히 대상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광주에서 이 공모전의 대상 수상은 처음이라는 설명을 듣고 귀가 솔깃했다. 본인이 직접 연락해온 것은 아니고 그와 오랫동안 교유하며 형님, 동생으로 지내는 분으로부터 제보를 받은 것이다.

그 대상에 관한 자료들을 건네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음성은 굉장히 밝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한달여가 흘렀다. 자동차보수용페인트를 납품하는 기업가인 그는 갓 스물이 되기 전에 택시 운전대를 잡은 뒤 스물네살 때 택시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광주서중 재학 무렵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형편이 어려워지기 시작해 열여섯 까까머리 시절 생활현장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1982년 동양상사와 동양자동차정비공장, 2002년 법인 전환 등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런 그를 지난 6월8일 사무실에서 만나 기업체를 꾸리면서 어떻게 사진에 입문했고, 어떤 사진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광주를 연고로 사진활동을 펼쳐온 전남 나주 출생 범진석(69·㈜동양통상 대표이사)씨의 이야기다.

자동차보수페인트를 취급하는 회사로 그의 사무실은 광주시 북구 비엔날레로 191-4번지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사무실은 2층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아담했다. 안쪽 창가에는 다구(茶具)들이 가지런히 정돈, 진열돼 있었다. 그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어렴풋하게 예감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는 그가 제일 좋아한다는 태백산 풍경과 대상 수상작인 ‘환희’ 등이 벽면에 걸려 있었다. 그 사진들을 보면 이 사무실의 주인장이 대충 무슨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를 눈치챌 수 있다.

이처럼 그가 사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젊었을 때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1978년 택시사업을 할 당시 집안 형으로부터 카메라를 선사받은 것이 그 출발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메모리칩에 기록돼 이미지를 다운받고 하던 시대가 아니라 모두 필름을 써야 했다. 그러다가 1989년 일본의 한 회사로부터 초청받아 그곳의 전자상가에 들렀는데 300㎜ 카메라 신형을 구입해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그때 아사히 펜탁스 MX 50㎜ 작은 카메라를 가지고 활동하던 때였다.

마흔을 앞두고 1996년 전남대 경영대학원 경영자과정에 들어갔다. 그때 원우들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게 됐다. 필름시대이다 보니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찍은 사진들을 빼서 주게 됐는데 그때 사진동아리 총무를 맡았던 원우로부터 작품활동을 권유받게 된다. 이 일로 인해 사진동아리에 들어가 활동을 펼치게 됐다. 지리산 종주까지 하는 등 나름 열심히 활동했다. 오히려 몸이 좋아지기보다는 건강이 악화돼 2년여 정도를 쉬게 되는 결과가 벌어졌다. 그는 쉬는 동안 건강을 위해 다시 따라다니기로 하고, 의욕적으로 사진에 응한다. 아픈 몸이다보니 여전히 뒤로 빠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한 번 고장이 나니까 쉽게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있어 카메라를 메고 가면 엄청 땀을 흘렸어요. 풍경을 찍기 위해 산을 많이 타야 했죠. 그런데 몸이 더 안좋아져 다시 3년을 쉬게 됐던 거예요. 서석사진동아리 회장을 2년여 하면서 사진협회 관계자들을 알게 됐죠. 이후 서영대학 사진강좌에 등록, 배우게 됐습니다. 6개월간 두 차례에 걸쳐 창작에 대해 체계를 잡는 등 심도있게 눈을 뜬 시기였어요. 이전에는 사실적인 풍경만 찍었는데 이 사진강좌가 저에게는 전환점이 됐죠. 사진 작업들이 창작 쪽으로 전환돼 사진을 찍기 시작한 때가 됐어요."

그는 창작사진을 한지 5년여를 맞았다고 한다. 병원에서까지 포기를 했다는 그는 좋지 않은 건강상태에도 불구하고 몸이 먼저 반응해 고통을 다스리기 위해 사진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철저하게 평가하는 듯 보였다. 필자가 보기에는 자신에게는 평가가 엄격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진을 찍어왔고 공모전 등에서 대상까지 수상했으면서 스스로에 대해 프로보다는 아마추어라고 명명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더욱이 서예와 사진 장르의 호남미술대전 종합대상(2015)을 비롯해 5·18전국사진대전 특선(2016), 광주시사진대전 우수상(2015) 및 특선(2016·2017), 대한민국 사진대전 입선(2016) 및 특선(2016·2017), 전국사진회원전 10걸상 등 다수 수상했다. 이 수상 경력만 봐도 그가 허투루 사진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금세 직감할 수 있었다. 또 사진협회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프로 사진가라고 해도 될성 싶은데 사진단체는 사진관 등 사진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주로 가입돼 있는 한국프로사진협회와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있다고 설명하며, 프로 사진가와 관련한 물음에 대해 대신한다. 사진에 관한한 커트라인이 높게 설정된 것으로 보였다. 사진과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그의 마음 속 행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대화를 나눌수록 사진에 대한 주관이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게 ‘사진을 해보니 미술과 어떤 차이가 있냐’고 물었다. 사진과 미술을 제대로 구분해 설명, 오히려 필자가 그 체계를 세우는데 도움이 됐다.

"미술은 자기 구상에 따라 마음대로 만들 수 있죠. 하지만 사진은 구상대로 할 수 없어요. 미술은 작가가 여러 가지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진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도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매년 달라지지 않습니까, 똑같은 장소에 가도 매번 달라져 있어요. 그러니 사진이 쉽지만 않죠. 미술은 작가가 마음대로 쓰지만 사진은 빛이 물감입니다. 그래서 빛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죠. 그것도 하늘이 도와줘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사진과 미술에 대해 선명하게 이해를 한 필자는 사진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에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사진 징크스였다. 범 대표는 자신 안에 있기 보다는 자연 여건이 징크스 아닌 징크스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가 말하는 자연 여건은 ‘빛’으로 이해됐다.

"제 사진은 빛이 많습니다. 풍경 사진을 찍을 때는 빛이 물감인지라 다른 방법이 없어요. 빛이 좋지 않다면 좋을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죠. 빛이 마음에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려야 해요. 어떤 때는 좋은 물감을 위해 비박을 3일씩 하기도 해요. 고도의 인내를 가지고 최고의 장면을 포착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기도를 많이 해요. 기도와 불심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있어요. 하늘이 많이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그도 찍어보고 싶은 사진이 있다. 이를테면 스님과 수녀가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 등 일종의 종교 간 벽을 넘어 그 간격을 좁히는 내용의 사진 말이다. 이미 아이슬란드를 다녀왔다. 14박 16일 일정으로 핀란드를 포함해 아이슬란드에 머물렀지만 결국 마음에 든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이런 노력도 종교 간 벽을 넘는 사진처럼 자신에게 기념비적인 사진 하나를 기록하고 싶은 목표 아닌 목표 때문으로 읽혀졌다.

"강직성 척추염으로 산을 탈 수 없는 몸이었죠. 그러나 여력이 되면 남극이나 북극 같은 데 가서 사진을 찍어 역사적 기록을 남기고 싶어요. 티베트도 마찬가지죠. 이곳에 가서 제 마음에 든 사진이 나온다면 그것은 아주 특별한 사진이 될 겁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그는 유독 태백산을 자주 찾아간다. 태백산에는 천제단과 단군성전이 있는데 스님하고 제(祭)를 올리고 있다. 이는 건강하게 산에 다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기 위한 목적이 없지 않지만 풍경에 대한 자신의 예법이자 의식으로 이해됐다.

마지막으로 풍경 사진과 창작 사진에 대해 물었다. 그의 주관이 뚜렷한 답변이 귀에 맺힌다.

"사진은 좋은 카메라로 찍는 것이 아니예요. 발로 찍는 것이죠. 풍경 사진은 하늘이 도와줘야 촬영이 가능합니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은 이런 구상까지는 필요하지 않겠지만 창작사진은 하늘의 도움에다 구상이 더 얹혀져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