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 경고!’

하얀 옷
백합의 향기여
우리 사람 몸이여

해와 달이
거꾸로 돈다 한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남북이 서로
눈 감고 불총을 쏘면
하늘에 젖을 물려준
어머니의 말씀 버리면

아마겟돈
쾅쾅, 우주가
폭발하는 소리?

한반도는
풀 한 포기커녕
꽃 한 송이 피지 않고
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을 것이다

두드릴 목탁은커녕
십자가를 만들어 세울
한 그루 나무도 자랄 수 없을 것이다!’


"광야에서 하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시인입니다."

그의 시를 읽는 것은 한 시인의 서사를 읽는 일이다. 그가 시단 활동을 펼친 지 올해 50년을 맞았다. 1969년 ‘시인’에 시 ‘참깨를 털면서’ 등이 추천돼 문단에 등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신작시집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50년 시단을 관통해온 시적 흐름을 올곧게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진성 독자들에게는 고된 독서가 되거나 모처럼 거대한 서사를 안고 있는 시인의 작품을 접하는 기회로 손색이 없다. 더욱이 일흔을 넘어선 그가 데뷔 50년을 맞아 신작시집을 펴낸 뒤끝이라 오롯하게 형상화한 통일시들에 궁금증이 일었던 것이 사실이다.

매일 창작의 숲에서 늘 새로운 마음으로 글쓰기에 진력해온 전남 해남 출생 김준태 시인을 지난 6월4일 만나 제17시집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도서출판 b)와 곁들여 그동안의 창작여정에 대해 들어봤다.

그의 시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내력을 조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할아버지는 강제징용을 당했고, 아버지는 일본군으로 강제징병이 된 우울한 가계의 역사를 안고 있다. 그의 나이 3살때 부친이 6·25한국전쟁 형국에서 보도연맹 사건에 휘말려 해남 대흥사 골짜기에서 학살당하는 비운까지 감내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력 때문인지 그는 베트남 전쟁 파병과 5·18광주민중항쟁의 한복판에 서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5·18도 전쟁으로 바라보는 그는 일제와의 전쟁과 6·25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네 차례의 전쟁을 겪었다고 술회한다.

이런 개인사 때문인지 그의 시에는 생명존중과 평화, 하나됨, 시민공동체 등이 시문학의 중심을 관통해왔다.

"국내에서 보도연맹으로 200여만명이 숨진 걸로 알고 있어요. 제 부친도 여운형의 건준 해남위원을 지냈습니다. 결국 보도연맹 사건으로 돌아가셨어요. 저는 1969년부터 1년 동안 청룡부대원으로 파병돼 베트남 전쟁도 겪었고, 5·18항쟁도 겪었죠. 죽은 자를 너무 많이 봤죠. 5·18을 민주화운동보다는 항쟁으로 부릅니다. 5·18항쟁이 아름다웠던 것은 ‘시민 공동체’ 때문이에요. 시민공동체는 자신 혼자는 못살아요. 다 함께 살아야 하죠. 우리는 사회와 가족, 그리고 나라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그의 시편들에는 주·객관적 삶의 아우라가 드리우고 있다.

이 아우라를 간파하지 않으면 자칫 활자만 실컷 구경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그래서 이날 그는 무척이나 개인적 삶을 끄집어내는 데 주력했다.

이번 시집은 애초 4월에 출간될 계획이었지만 4·27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시집출간이 5월로 넘어왔다. 그래서 그는 또 다시 이 시집에 광주오월을 상기하고 싶었다. 발행일을 5월18일에 맞췄다. 이번 제17집은 유독 통일 시편들이 넘쳐난다. 남북이 하나 되기 위해 만남을 가진 마당에 5·18에 새롭게 그는 시집을 내어놓았다. 이 시집의 숨(호흡)은 5월18일부터인 셈이다.

인터뷰 내내 그가 광주못지 않게 밝혔던 것은 생명과 통일에 관한 확고한 신념이었다.

"생명존중은 사람이 가장 상위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조건은 남과 북이 만나야 하는 겁니다. 서독은 수학여행을 동독으로 갔잖아요. 우리도 이제 열차가 연결돼 남북이 오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벌써 ‘통일열차’가 나와 서울에서 베를린까지 갈 수 있는 상품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제가 죽기 전에 열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해 모스크바에 가고, 베를린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동안 1민족 1국가나 하나의 민족, 남과 북 두개의 체제 등 여러 통일방안이 나왔지만 그 본연에는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불변이 있죠."

우리 민족이 하나된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는 그는 훗날 화폐 등 남북간 많은 것들이 통일의 대상이겠지만 ‘마음통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남북 상호간 정부를 인정해주면 마음통일로 갈 수 있다는 입장으로 이해됐다. 지난 3월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래서 시인은 하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벽을 데리고 걸어가네’라는 시도 썼지만 남과 북을 가로막는 삼팔선은 우리 민족의 벽이었죠.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은 직진하지 않고 유턴합니다. 우리 민족 앞으로 직진하면 다 죽을 거예요. 이제 우리 민족 유턴할 때가 왔는데 후손들은 통일의 시대에 살리라 확신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더없는 찬스가 왔다고 봅니다."

그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통일론을 언급했다. 원효대사는 싸우지 말고 통일하자 했고, 의상은 싸워서 통일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이 시대 싸우지 않고 통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원효대사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 중요한 화두라는 사실을 강조한 셈이다.

또 페미니즘에 관한 자신만의 소회도 잊지 않았다.

"모성주의와 여성권리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든 인간은 여성으로부터 태어납니다. 저는 여성을 반신(半神)이라고 봅니다. 반은 신이고, 그 나머지 반은 인간이라고 보는 것이죠."

실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쌍둥이 손자가 있는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2001년 6·15남북공동선언 제1주년 행사가 열린 평양 고려호텔에서 낭송됐던 ‘백두여, 통일의 빛나는 눈동자여’, ‘좋다, 줄탁동시라!’, 세월호 영령들에 대한 해원 의식을 투영한 시편 등 50편이 수록됐다.

그의 시가 노래화돼 널리 알려진 ‘감꽃’ 등 20여편이 있지만 이번 제17시집에 수록된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가 이미 작곡화됐다는 후문이다.

‘흙’에 관한 시편들을 모은 제18시집 ‘밭시·강낭콩’이 전주를 연고로 한 모악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데 이어 오는 7∼8월께 일본 도쿄 유수의 출판사에서 일본어판 ‘김준태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