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하면, 조금 호찌지 않아?”

퓨전국악그룹 ‘여유’(旅遊)의 무대를 보기 전, 많은 사람들의 우려다. 여기서 ‘호찌다’는 말은 국악인들끼리 통하는 일종의 은어로, ‘부족하다’ 혹은 ‘허전하다’ 정도의 의미다.

‘여유’는 퓨전국악그룹으로 소개되지만 멤버는 딱 두 명이다. 가야금 병창 전공의 이연주·아쟁 전공의 김민지씨다. 일반적으로 퓨전국악그룹이 관현악·타악·신디사이저 등 다채로운 세션을 갖추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때문에 가야금과 아쟁으로만 구성된 악기편성을 보곤 의아해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유의 무대를 보고나면 이 같은 염려는 기우였음이 곧 증명되고 만다. 뜯어서 연주하는 가야금 연주에 틈이 보일 때면, 장대한 지속음이 매력인 아쟁이 이를 채워 넣는다. 여느 그룹보다 풍성한 연주는 아니지만, 여유의 공연은 단출해서 외려 더 멋스럽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이 그들만의 시그니처가 된 셈이다. 이들의 무대를 본 많은 팬들이 “힐링 되는 것 같아요”라 말하는 이유다.

2011년 세상에 나온 여유는 자신들을 소개할 때 꼭 덧붙이는 말이 있다. 바로 “국악을 노래하다 여유입니다”라는 것. 이들의 음악은 전통국악에 머물지 않는다. 국악기로 판소리·민요 등 전통국악부터 대중가요까지 섭렵한다.

이연주 대표는 “국악을 노래한다는 그 말처럼 어떤 장르에 한정을 두지 않고, 무엇이든지 여유만의 색으로 풀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민속악이나 국악의 제1번은 옛 것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에요. 스승님께 배운 것을 똑같이 하는 것이죠. 그 안에서 창작은 움트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유는 어떤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픈 팀이에요. 그런 면에서 민지씨와 마음이 통하는 게 참 좋아요. 새로운 제안을 했을 때, 자신의 악기를 벗어던질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겐 있거든요.”(연주)

이들은 ‘새타령’을 노래하면서 남아메리카 타악기 ‘카혼’을 두드렸다. 카혼 장단에 얹어진 구성진 새타령은 관객들에 색다른 재미를 줬다. 팀명인 여유는, 나그네 여(旅)자에 놀 유(遊)를 쓴다. 두루 다니면서 논다는 뜻이다. 어떻게 놀지는 공연 마다 다르다. 여유는 새로운 것, 그래서 흥미로운 것에 늘 관심을 둔다. 이들은 퓨전이란 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믿는다.

연주씨와 민지씨는 죽이 잘 맞는 파트너다. 전남대 국악과 선후배 지간인 이들은,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당찬 여성들이다.

민지씨는 아쟁 전공자인데, 소리도 한다. 가야금 병창은 전공분야가 있지만 아쟁 병창은 드물다. 활을 키면서 소리를 뽑아내는 것이 어려운 탓이다. 그러나 민지씨는 아쟁 연주를 하면서 소리를 한다. 그 뒷심에는 그의 어머니인 김향순 명창(전남도립국악단 단원·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이수자)이 있다. 소리는 어머니에게 특훈을 받는다. 딸이 소리하는 게 고생스러워 싫었던 어머니지만, 민지씨 소리를 듣고선 “역시 피는 못 속이겠다”고 뿌듯해 하신다고.

“기악을 전공했지만, 소리를 알아야만 진짜 국악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국악기를 다루든 그 뿌리는 소리에 있다고 봅니다. 어머니한테 그 어떤 제자보다 혹독하게 소리공부를 하고 있는데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국악에 있어 ‘만능인’이 되는 게 저의 꿈이자, 여유가 가고자 하는 길입니다.”(민지)

사실 두 사람의 국악기 자체로만 봤을 땐, 민속악적으로는 합이 맞다고 볼 순 없다. 가야금과 거문고 병주는 흔한데, 가야금과 아쟁이 합주하는 일은 드물다. 가야금 소리가 아쟁에 묻힐 수 있어서다.

그러나 전통 국악기가 개량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25현 가야금과 10현 아쟁은 꼭 바이올린과 첼로의 협연처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가야금은 다양한 음계를 표현할 수 있고, 아쟁은 든든하게 받쳐주는 베이스를 소화해 낸다.

그럼에도 알찬 구성의 실내악단 무대를 보면서, 여유 스스로도 “꽉 찬 느낌이다. 참 완성도 있다”고 느끼지만 악기 파트를 더 늘일 생각은 없다. 앞서 언급한대로 ‘호찐 음악’이 여유만의 매력이 돼서다.

“국악 자체가 원래 호찐 음악이에요. 소리꾼과 북 하나로 완성되잖아요. 그것만으로 사람을 웃게 하고 울게 하는 것이 국악이 가진 힘이에요. 대중가요는 반주가 조금만 부족해도 테가 날만큼 어색한데 국악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만의 매력
이 있는 것 같아요.”(연주)

풀 세션을 갖춘 음악이 ‘귀 호강’을 선사한다면, 여유의 음악은 ‘마음의 호강’을 선물한다. 비어있는 듯 한 단출함이 편안하게, 아무 생각 않고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한다.

여기다 그들의 ‘입담’이 더해지니 그 어느 실내악 무대보다 풍성해진다. 여유의 공연은 사회자를 따로 두지 않는다. 그저 관객들과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면서 진행된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이소라의 프로포즈’처럼 말이다. 일종의 토크콘서트와 같다.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 꾸미는 무대가 여유의 콘셉트예요. 사는 이야기도 하고, 관객들의 이야기도 듣고, 곡에 대한 설명도 해주고요. 옛 국악의 놀음판을 재현하고 싶었죠. 지금에야 공연자와 관객석이 나뉘어져 있지만, 이전에는 어떤 경계도 없었잖아요. 흥이 나면 누구라도 무대에 서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열린 무대로 꾸며가고 싶어요.”(민지)

누구보다 국악을 사랑하는 이들로서, 요즘 전통예술의 입지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참 좋은데, 이 좋은 것을 잘 몰라줘서’다. 단적인 예로 판소리가 유네스코세계무형문화유산에 올라있단 사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유네스코 심사 당시, 심사위원들이 ‘아 이런 음악이 있나’고 감탄했다는 이야기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전통예술이 해외에서 더 큰 가치를 인정받으니, 조금 서글픈 아이러니다.

“우리 국악을 지키고 또 알려야 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바로 ‘우리 것’이라는 겁니다. 대대로 내려온 민족의 뿌리라는 거죠. 이것만으로도, 전통예술을 올곧게 지켜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민지)

이와 관련해 연주씨도 뜻을 같이 한다. 국악은 우리 것이라서, 다른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울컥한 게 있죠.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는 개인 취향의 문제이지만 국악은 번외인 모양이에요. 말하자면 우리 국민만 가질 수 있는 정서죠. 대한민국을 하나되게 하는 힘, 그 응집력은 전통예술 저변에 깔려있어요. 그것이 바로 국악의 힘
인 것 같아요.”(연주)

여유는 이처럼 국악의 힘을 전하는 종합예술인이 되고 싶다. 노래면 노래, 악기면 악기, 춤이면 춤 모두를 소화해 내는 만능 예인이 되는 것이 꿈이다. 각기 전공 분야가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다방면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앞으로도 여유는 팀명에 충실할 생각이다. 두루 다니면서 잘 노는 게 그들이 제 일 잘하는 일이자, 가장 하고픈 일이다.

“우리 공연을 보고, ‘아 너무 좋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싶어요. 그 어떤 공연보다 완성도 있다고는 못하겠죠. 하지만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 기분 좋은 충만함을 안고 가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사랑받다 보면, 여유는 이런 음악을 하는 팀이구나, 하고 여유만의 매력에 고개를 끄덕여주셨으면 해요. 그런 관객들의 눈빛, 응원의 말 한마디가 여유를 오래오래 잘 놀게 할테니까요.”(연주·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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