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꽃을 기르는 화훼농업인들부터, 꽃집사장님 그리고 꽃나무를 재료로 작품을 만드는 플로리스트까지. 이들에게 받은 공통된 인상은 "참 행복하겠다"는 것이었다. 꽃을 보고, 만지고 또 그 향에 취해서 하는 일이니까. 최상의 근무여건인 셈이다.
이들 중에서도 송희자 꽃차문화진흥협회장의 업(業)은 더욱 눈길을 끈다. 한 잔의 꽃차를 마시기까지 그 과정이 너무나 아름다워서다.
좋은 가을날, 그를 만나러 담양으로 갔다. 그가 운영 중인 찻집 ‘머루랑 다래랑’은 꽃을 비닐 포대 자루 채 볼 수 있는 곳이다. 소쿠리에도 꽃이 가득 들어 있다. 색색의 포장지로 감아진 꽃다발보다 더 예쁘다.
천지가 꽃인 곳에서 원피스를 차려 입은 송 회장이 나왔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 노오란 빛 머금은 국화꽃차를 한 잔 내어준다. "꽃차는 눈으로도 마시고, 향으로도 마시고, 입으로도 마셔요"라면서 웃는다. 노랗게 우러난 꽃차를 받아들자, 그의 말이 단박에 이해되고 만다.
그와 꽃과의 연은 서울에서 담양으로 내려와서 발화했다. 서울토박이인 그가 ‘자연’으로 내려온 때는 1994년이다. 호텔리어로 일하던 그는 남편 박공현씨를 만나 결혼했고, 그를 따라 담양으로 내려와 터를 잡았다. 담양의 첫 인상은 "꼭 어머니 같다"는 것이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여유와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제 담양은 그에게 제2의 고향이다.
담양에서의 새 삶이 시작됐다.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템포였다. 잠시 풀어져도, 조금 느려고 더뎌도 좋았다. 해찰하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다 꽃과 연을 맺은 것은, 동네 산책길에서였다. 그때 본 것이 석양빛에 물든 찔레꽃이다.
"걷는 내내, 우리 가족을 따라오던 향이 있었어요. 길모퉁이에 흐드러져 있던 찔레꽃에서 나는 향이었죠. 서울에 서 나고 자란 저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처럼 노랫말로나 꽃을 접했었죠. 처음 본 찔레꽃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 꽃을 오래 오래 보고 싶다, 향을 오래도록 맡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꽃차더라고요"
그때부터 그는 꽃차에 홀딱 빠졌다. 깨어있는 모든 시간에 꽃차에 대해 공부했다. 옛 문헌을 찾아봤고, 꽃 특성을 파악했다. 꽃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어야만, 진짜 맛있는 꽃차를 만들 수 있어서다. 꽃의 향기가 저마다 다르듯, 꽃차로 거듭나는 과정 또한 각양각색이다.
"꽃은 땀과 동시에 위협을 느껴요. 그래서 빨리 피어나려고 하는 성질이 생기죠.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건조시키는 것이 예쁜 모양과 성분을 보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이에요. 이 건조된 것을 숙성을 시켜서 덖거나 찌는 겁니다. ‘덖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 볶는 것이에요. 이렇게 덖고 찌는 그 과정에서 꽃의 특성을 잘 살려줘야만 하죠."
목련꽃은 뚜껑을 열고 스팀기에 쪄야 좋은가 하면, 국화는 뚜껑을 닫고 충분히 쪄 줘야 한다. 아카시아나 등나무꽃 등 꿀샘이 있는 꽃들은 찌는 것 보다 덖는 게 좋다. 은근한 불에 덖어주면 꿀이 물줄기를 통해 가득 퍼진다. 그래서 꽃차의 맛이 더 진하고 향이 농후하다. 이 같은 방법들은 모두 경험에서 우러난 것들이다.
"동의보감이나 생약도감, 본초도감, 한의학대사전 등 문헌들에서 약으로 사용됐던 꽃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근원으로 추려낸 재료들을, 옛 방식이 아니라 현대적인 기구·기술을 활용해서 후반 작업을 진행하죠. 옛날에는 아랫목에 여러 날을 두고 발효를 시켰다면, 오늘날에는 밥통을 활용해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죠. 전자레인지를 활용하거나 팬을 쓸 수도 있고요. 선조들이 남겨준 자료를 토대로, 현대적인 기술들을 결합해 가는 것이 제 몫이죠."
송 회장은 꽃차와 관련한 데이터를 쌓아갈 때 가장 든든하다고 한다. 끝없는 실험과 도전 끝에 전에 없던 데이터를 정리했을 때, 맛좋은 꽃차를 만들어냈을 때, "참 꽃차 하기를 잘했다" 싶다.
지금에야 꽃차전문가로 통하는 그이지만,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었다. 당시 우리나라엔 꽃차에 대한 개념조차 바로 서지 않았을 때였다. 기본 데이터가 전무했던 터라, 그는 산으로 들로 꽃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만들어 마신 꽃차에 배탈이 나기도 했다. 온 몸으로 배우면서 만들어낸 꽃차 종류만도 이제 260여 가지가 넘는다. 이 중 50여개는 품목 제조 허가를 받아 유통되고 있고, 120여 가지는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
"현재 우리나라 꽃차시장의 규모는 700억이라고 합니다. 꽃차전문 자격증·소믈리에·지도사 등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3000여명이고요. 그 외 배우고 있는 분들까지 하면 더 많으리라고 봐요. 꽃차를 파는 매장은 아직 현황파악이 안됐지만 상승세를 타고 있어요. 커피 전문점은 포화상태에서 둔화되고 있는 반면, 꽃차 전문점이나 꽃차 메뉴를 넣고 있는 카페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꽃차로 한 길을 걸어 온 저로선 너무나 반가운 소식들이죠."
매일 보고, 만지고, 마시면서도 "꽃이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그다.
"꽃차의 꽃들은 살아있는 꽃에선 볼 수 없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어요. 꽃을 땄을 때, 또 이를 건조했을 때, 물과 만나서 순간 활짝 피어났을 때. 그리고 찻잔에 담겨 넘실대는 모습까지. 마시는 맛도 있지만, 이렇게 바라보는 것 자체로서도 정말 좋죠."
그의 삶 곁엔 늘 꽃차가 있다. 비가 오는 날엔 향이 짙은 찔레나 목련꽃차, 화창한 날에는 장미나 아카시아 꽃차를 마신다. 식사 후에는 소화를 돕는 매화꽃차, 집중력이 필요한 날엔 국화나 구절초·쑥부쟁이차를 추천한다.
송 회장은 우리나라 꽃차에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일단 재료가 풍부해서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는 꽃의 종류가 다양하다. 종의 다양성 뿐 아니라, 고유한 색상과 향을 머금고 있는 것 또한 강점이다.
최근 송 회장이 주목하는 것은 꽃과 과일의 콜라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과일 시장이 차 시장으로 확장되지 않았는데, 과일과 꽃을 잘 블렌딩 한다면 맛 좋은 경쟁력 있는 차들이 나올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모든 음식이 그렇듯 꽃차 또한 갓 나온 것을 바로 먹는 게 가장 좋습니다. 이후에는 ‘익어간’ 꽃의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방법이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꽃차가 건강기능 식품이 아니라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이란 것을 잊어선 안돼요. 어떤 효능을 바라
고 과하게 마셔선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즐기는 것이 차를 마시는 가장 큰 기쁨이죠."
이제 송 회장은 25여년의 경험치들을 모아 매뉴얼 하는 작업에 매진할 생각이다. 꽃차의 제조 기술부터 마시는 방법까지. 국제 규격에 맞춰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만의 꽃차 계보를 데이터화 하는 것이 산업화로 나아가는 데 첫 발이라고 믿는다.
여기다 꽃차에 스토리텔링을 버무려 내는 일도 중요하다. 꽃말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꽃차와 함께 내어놓는다면, 커피나 차 등 음료 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터다.
그에게 ‘꽃차’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곧 "나의 삶이고, 생명이다"는 답이 돌아온다.
"꽃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고, 꽃이 있어야 즐겁습니다. 제 인생에 꽃을 빼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제 삶의 전부이자 분신과 같죠. 지금껏 꽃차와 함께한 덕에 행복했으니, 이에 대한 보답을 할 차례라고 생각해요. 제가 진행하는 꽃차 데이터화나 매뉴얼 작업은 그 시작이 될 것입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