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을 세련되게 조정하기 보다는, 작가의 의도를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우리가 전한 문학들을 통해 80년 5월의 가치가 일본 사회에 전달 됐으면 하는 그 바람 하나입니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는 민주·인권·평화의 메시지가 깃들어 있는 문학들을 일본에 소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문병란 시집 ‘직녀에게, 1980년 5월 광주’를 또 지난달에는 김준태 시인의 시집 ‘광주로 가는 길’ 번역을 맡았다.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일어’로 새로 쓰고 있는 김 교수에게 그간의 활동들과 일본 사회에서의 반응,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그간 교수님께서 일본에 알려 온 한국의 문학(작가)들이 궁금하다.
문학을 둘러싼 한일 간의 화제를 거론하자면 2015년 5월18일 한수산 ‘군함도’가 개작 과정을 거쳐 27년 만에 공개된 일부터다. 당시 군함도가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추진되는 분위기여서 주목을 끌고 있었다. 그즈음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에서 일본으로 군함도 역사탐방을 가게됐다. 그런데 시민모임 답사단이 출입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나가사키 공항에 억류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기억이 되살아나는데 저의 책임도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작품 ‘군함도’ 연구에 몰두했던 기억이 난다.
이와 함께 2016년 8월 한수산 광주초청 강연을 시민모임 임원진과 같이 추진했고, 연말에 관련논문 ‘한수산 군함도를 읽다-조선인 징용갱부의 시점에서’를 국내 학회지에 일본어로 발표한 적이 있다.
한편 2014년 가을 저와 교류하는 주오대학(中央大學)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광주를 방문해 5·18 역사탐방을 진행했다. 이들이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고 난 뒤 광주의 시인 문병란에 대해 소개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인솔 교수에게 문병란 시인 프로필과 ‘희망가’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보냈고, 히로오카 교수도 공감해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
이게 지난해 10월에 문병란 시집 ‘직녀에게, 1980년 5월 광주’라는 타이틀로 출간됐고, 10월18일 일본 주오대에서 관련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그때 김준태 시인이 초청강연을 했다. 그게 계기가 돼 출판사에서 김준태 시집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최근 ‘김준태 시집- 광주로 가는 길’이 출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우리문학의 일본 발신, 일본문학의 국내 수용에 관심과 함께 한일교류 속에서 자연스레 얻어진 결과물이다.

사회의 단면을 담아낸 한국의 문학들이 일본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가.
일본문학의 국내 수용에 비해 우리문학의 일본을 향한 발신은 수적, 양적인 면에서 열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한 일본 작가, 그리고 일본 추리소설들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내리며 잘 팔리는데 반해, 우리 문학은 일본에서 변방의 문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88년 올림픽을 거치며 국가위상회복과 함께 우리문학도 뿌리를 내리게 되는데, 한류 붐, 즉 우리의 영화 드라마, K팝과 함께 주요작품들이 소개되지만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문학은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행히 일본에 ‘화려한 휴가’와 ‘택시 운전사’가 방영된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려운 시기에 인권회복을 위해 가장 치열하게 싸운 광주의 문제는 일상의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일본인들에게도 보편성과 확장성을 지닐 수 있는 화두라고 본다.

최근에는 문병란 시인과 80년 5월의 광주를 일본에 알리는 데 몰두하고 계신다고.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일본의 주오대학 정책문화종합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동아시아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비교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2013년 겨울 일본 주오대 법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인의 시점에서 본 근대일본문학-작가론과 시대상’ 특강에서 일본의 혁명작가 고바야시 다키지가 탄압받은 일본의 시대양상과 5·18민주화운동의 배경을 비교하며 군부세력이 시민들에게 총을 발포한 내용과 정권의 악랄한 탄압양상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일본 학생들은 한국현대사를 접한 경험이 전혀 없었으므로 많은 학생들이 시민과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을 군대가 진입해 무력으로 제압했다는 사실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당시 80년대 광주의 상황을 문학작품을 예로 일본에 알릴 필요를 절감했다.
2015년 여름에는 일본 가와사키시가 운영하는 가와사키
시 평화관이 주최한 전후 70주년 기획사업 심포지엄 ‘미래를 위한 과거에 대한 시선: 북동아시아 편’에 초청받아 ‘문 병란 시인과 주민주화운동’이라는 주제로 도쿄 소재의 대학생들 대상으로 강연한 바 있다. 당시 주오대 학생들은 현장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개요와 배경, 화염병 대신에 시를 던진 문병란 시인, 전두환 사형판결과 사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 과정 등을 사진과 함께 패널 전시회로 1달 동안 개최했다. 그 후로 주오대 연구소 개최의 심포지엄 및 연구발표, 나고야 지역 대학 강연 등을 통해 문병란 시인과 80년 5월의 광주에 대해 보편적 시점에서 소개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품 번역에 있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있다면.
문병란 시인과 김준태 시인은 5·18민중항쟁과 관련한 활동으로 직접 권력으로부터 탄압을 받았고, 그 후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민중운동의 선두그룹에 서서 광주의 공동체정신을 알리기 위해 여러 활동을 전개했다.
둘로 갈라진 한반도가 하나 되는 순간, 광주민주화운동의공동체정신은 열매를 맺으며 민족분단을 극복하는 통일정신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보는 견해이기에 항상 이를 의식하며 작업에 임했다.
민주, 인권, 평화의 문학적 메시지와 투철한 작가정신을 일본에 처음으로 번역, 소개하는 일이니 만큼 의미 있는 작업으로 느끼고 매진할 수 있었다. 멋지게 번역하기 위해 고민하거나 행간을 세련되게 조절하는 그런 일보다는 작가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힘 썼고, 해설 집필 시에는 일본의 독자가 우리의 민중문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의 집필 경위와 한국의 시대적 배경을 제시하기 위해 작가와의 교류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앞으로 계획이나 꿈 바람 등은.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 바람 등에 대해 코멘트하기가 쉽지 않다. 나의 작업은 주요 작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본의 양심작가 마쓰다 도키코처럼 저명한 작가가 아니거나 금방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의미를 느끼고 의무감에서 진행하는 예도 있다.
때로는 오랜 시간 몰두했지만, 세상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는 만큼 지금 이런 연구를 이렇게 진행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일문제와 관련한 의미있는 문학연구를 저술, 번역 등을 통해 묵묵히 해 나가겠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