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이 좋~은 것을 신나게 즐기도록 할까. 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는 ‘전통은 재미없다’는 섭섭한 편견들을 깨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왔다.
한 해는 가야금병창에다 무용을 접목했다. 구성진 새타령이 가야금병창으로 연주되고, 그 앞으로는 날아가는 새를 표현하는 춤꾼들이 무대를 가로질렀다. 또 ‘사계’를 주제로 한 무대에 무예인을 초청해 컬래버레이션 공연은 선보였다. 고고한 전통의 맥은 잇되, 다양한 장르와 협업을 통해 다채로운 볼거리들로 꾸민 것이다.
문명자 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 대표(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보유자)는 전통을 지켜 나가는 사람이다. 광주시 문화재인 그에게 주어진 무거운 몫이나 다름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지런히 ‘한 눈’을 판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젊은 예인들 못지않게 끝없이 공부한다. 공부해야만 참신해질 수 있고, 참신해지는 것은 곧 ‘지루함’이나 ‘고리타분함’ 같은 느낌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관객들의 구미를 당기게 할 만한 것들이라면, 어떤 장르든지 함께 꾸며보곤 합니다. 늘 머릿속으로 무대를 구상해보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들을 하지만, 단 한 가지 흔들림 없이 가는 게 있어요. 바로 가야금병창 그 전통만은 훼손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대를 기획할 때 회원들과 제가 제일 공을 들이는 부분이 바로 전통의 맛과 멋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일이죠."
2002년 창립된 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는 남도 가야금 병창이 가진 전통적 가치를 보존·계승하는 데 힘쓰고 있다. 문 대표와 그의 제자들 100여명은 가야금병창과 함께 매번 새로운 시도들을 선보이고 있어, 젊은 층에서도 호응을 받는다.
사실 가야금병창은 그 국악 장르 자체가 협업에서 비롯됐다.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소리를 하니, ‘국악의 꽃’으로도 불린다. 한 장르에 두 가지 공부가 필요하니 공부가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가야금 연주면 연주대로, 소리면 소리대로 잘해야만 ‘가야금병창인’으로 무대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해선 안 될 일이다.
"그것이 가야금병창의 매력이에요. 가야금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산조의 깊은 맛을 내는 정도가 돼야 합니다. 소리는 또 어떻고요. 남도 소리의 구성진 맛을 낼 수 있어야 하죠.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만나서 한 장르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노력 또한 몇 배를 쏟아야 합니다. 그만큼 무대가 풍성해요. 솔로보다는 여럿이 나와서 하는 것이라 더 꽉 찬 느낌이죠."
가야금병창은 말 그대로 화합의 무대다. 소리는 맛깔 나는 가야금이 받쳐주고, 가야금 연주는 묵직한 남도 소리가 든든하게 밀어준다. 특히 남도가야금병창은 위쪽 지방의 병창보다 묵직한 소리를 내는 게 특징이다. 판소리에 버금가는 소리를 연마해야만 남도가야금병창의 맥을 잇는다 할 수 있다.
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는 이 같은 탄탄한 실력을 기둥 삼아, 가야금병창극은 물론 진도씻김굿, 강강술래 등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11년 가야금병창으로 ‘춘향극’을 만들어 올렸어요. 일종의 창극같은 것이죠. ‘춘향가’에는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니, 이를 가야금병창으로 풀어낸 것이죠. 우리 회원들이 연주를 하고 춘향과 이도령, 방자와 향단이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극을 이끌어 가는 방식이었어요. 특히 변사또가 기생들과 어울리는 장면에서는 무용수들이 춤을 췄는데, 관객들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이처럼 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는 자신들의 연주는 고고히 지켜나가면서도, 다양한 볼거리로 구성한다. 극화한 것은 ‘춘향’ 뿐이지만 수궁가·적벽가·심청가·흥부가 등 판소리 다섯바탕의 눈대목들을 모두 색다르게 꾸며 보여주었다.
"같은 소리를 한다고 해도, 의상이나 소품에 차별화를 두었어요. 수궁가를 선보일 땐 토끼 머리띠라도 찼고, 거북이는 등껍질 가방을 단단히 매고 무대에 올랐죠. 심봉사는 눈을 가리고 수염을 그렸고, 심청은 궁중에서 입는 가채를 쓰고 나왔어요. 곡에서 곡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이 같은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소개해주는 역할을 한 겁니다. 별다른 연출은 없지만, 그저 설명없이 연주를 이어가는 것 보단 쉽고, 재미나게 무대를 진행할 수 있었죠."

2010년부터 시작된 연탄드리기 행사 포스터

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는 겨울엔 더 분주해진다. 날이 쌀쌀해지면 올리는 공연이 있어서다. 바로 ‘사랑의 연탄 드리기’ 무대가 그것. 올해로 9번째를 맞는 행사는 공연 수익과 기부를 통해 매년 어려운 이웃 20가정에 연탄 300장을 선물한다.
지난 11월18일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성황리에 열린 공연을 끝으로, 6000장의 연탄이 이웃에 전달됐다.
"정말 어려운 이웃들이 연탄을 떼겠구나 싶어서 시작했어요. 사실 공연 수익으로는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우리 제자들과 함께 좋은 마음으로 기획한 것이기에, 계속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그들은 전통의 ‘정면 돌파’나 다름없는 무대를 올렸다. ‘문화재 맥을 잇다’를 타이틀로 한 공연에서 문 대표와 제자들 40여명은 단가를 꼽아 연주했다. 단가는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들인데, 사실 재미는 없다. 그러나 문 대표는 호남가, 사철가, 공명가, 명기명창, 녹음방초, 편시춘, 장부가, 청석령 등 12곡의 단가로만 무대를 구성했다. 대신 곡 사이 사이에 친절한 해설을 곁들여 곡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노래라는 것이, 부르는 이들이 적어질수록 대중에게 잊혀지게 됩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전통을 사랑하는 우리가 해야 하겠지요. 재미난 공연들을 기획하면서도 사실 이번 ‘단가편’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고민도 안한 것은 아니에요. 다만 공연명 ‘문화재 맥을 잇다’와 같이 문화재로서 이 또한 제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그들의 오랜 팬들에겐 "역시 전통이 좋다"는 평을, 젊은층들에게도 "전통이라 울림이 있다"는 감상평을 들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남도가야금병창진흥회는 앞으로도 무던하게 한 길을 갈 작정이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리고 오래 오래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문 대표는 끝으로 "전통 국악을 공부하는 후배들이 마음껏 꿈을 펼쳐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힌다.
"전통 국악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졸업을 하고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넓어졌으면 합니다. 우리 음악을 활발하게 전할 수 있도록 터전이 마련되길 바라죠. 돈 걱정 안하고 우리 것을 연구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곧 우리 전통 문화를 튼튼히 지킬 수 있는 ‘키’라고 믿어요. 전통은 우리 것입니다. 전통이 없어지면,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전통 국악이 우리 교육의 필수과목이 됐으면 해요. 이유는 간단하죠. 우리음악이니까요. 고유의 전통 문화가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무던히도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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