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제68호) 여든 중반에 접어든 나이를 맞았지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금남로 2가 소재 작업실에 나가 작품을 구상한다. 교육자 출신이지만 퇴직 후 쉴 수도 있으련만 그는 한창 때처럼 작업실로 출퇴근을 한다. 쉴 틈 없이 줄곧 작업에 집중해온 것이다. 여든다섯에 접어든 일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술 같은 것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늘 작업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에 방해가 되는 일들은 아예 거리를 두고 있는 듯했다. 화집 출판기념 전시(12.6∼12)에 앞서 만난 원로 서양화가 이우진씨(85·남구 백운1동) 의 이야기다. 그가 화업 59년을 맞아 자신의 고향인 전남 진도에 작품 200점을 기증하기로 밝힌 뒤 진행된 인터뷰여서 귀를 기울여 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광주사범을 졸업한 뒤 전남공고와 광주과학고 등교단에서 42년을 봉직한 교육자 출신으로, 배동신 김영중 강용운 양수아 화백을 은사로 모시고 미술공부를 했고, 여든 중반이 넘은 현재도 오전 8시30분 금남로 화실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할 정도로 일관되게 일상을 끌고 가며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이런 그가 200점이라는 작지 않은 작품을 기증하게 된데는 자신의 고향이 남종화의 본향이지만 서양화가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육성되기를 바라는 한편, 자신의 작품이 고향에서 예술적 내외연을 확장하는 등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동시에 자라나는 후학들에게 평생 일궈온 자신의 진정한 회화세계를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기증을 실행하기 위해 그는 지난 9월22일 전남 진도군과 협약식을 거행하고 우선 그동안 작품 중에서 가려 뽑은 작품 120점을 기증했다. 이어 화집출판기념 전시 이후 80점을 진도로 보냈다. 진도군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 두곳을 리모델링 해 이 작가의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200점을 기증하기로 하면서 도록을 출간했다. 작품을 기록하고 싶어서다. 화집 출판기념 전시는 그의 결산전이기도 했다.
그의 화집은 서암 이우진 서양화 200점 기증 화집 ‘이우진-자연과 교감한 감수성의 예술세계’라는 명칭으로 출간됐다. 2003년 고희전에 이어 두번째로 펴낸 것이었다.
이 화집에는 전시에 선보였던 40점을 포함해 기증하기로 한 200점의 작품이 수록됐다. 미술평론가 윤진섭 전 호남대 교수의 ‘가을 풍경-그 서정과 낭만의 세계’ 등의 평론 글과 일생의 자취를 담은 사진을 더한 연보도 실려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작품을 떠나보내면서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었는데 화집을 내고 나니 그 마음이 조금 달래진다는 설명이다.
"기증하고 나니 아쉬웠죠. 그래서 기록으로라도 남겨야겠다고 생각을 해 화집을 펴내게 됐어요. 교직에 있을 때도 시내에 화실을 두고 작업을 꾸준하게 했습니다. 물론 신장암이나 대장암이 발병해 투병까지 해야 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나마 화집을 만드니까 마음의 위안이 되는 거 같아요."
화집 출판기념 전시를 연다고 해서 만난 뒤 다시 인터뷰를 위해 12월8일 오후 들른 전시장에서 뵌 그는 전시를 준비하느라 무리했는지 몹시 피곤해 보였다. 미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그에게 화가에 입문한 계기를 물었다.
"국민(초등)학교 선생을 4년째 하다가 광주사범을 들어갔는데 다른 동료보다 5년 늦게 진학한 것이어서 5회 졸업생이 됐죠. 고등학교 때 미술부도 했지만 대학교에 와서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했다고 봐야죠. 물론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돼야 겠다고 생각했고, 쭉 관심을 뒀지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의 전시 작품들을 훑어보았다.
프랑스 르 살롱 입상작인 ‘양지’(1980년 작)와 목우회 공모전 입상작인 ‘잔영’(1979년 작) 등 모두 풍경이었다.
이 중 목우회는 그의 회화적 삶과 함께해온 미술그룹이다. 사실주의 화풍의 아카데믹한 사생을 위주로 하는 그룹으로, 작가가 추구하는 미술철학과 맞아 떨어진다.
그는 화가로 입문한 뒤 한눈 팔지 않고 줄곧 ‘풍경’을 해왔다는 전언이다. 현장스케치를 다녀온 뒤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연을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그는 스케치를 위해 독도는 막론이고 백령도와 마라도 등 전국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한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일본만 23∼24회를 다녀왔을 정도다. 스케치는 그에게 작업의 필수조건인 셈이다.
이 스케치들은 그의 회화가 지향하는 바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의 회화는 풍경과 농촌 및 산 풍경 등 대상에 대한 충실한 묘사를 바탕으로 한다.
이런 그에게 ‘왜 그림을 그리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실험보다는 오로지 자연 산수에 집중하면서 그림을 그려왔지만 미술은 노후에도 그릴 수 있어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품이 남으니까 좋죠."
그러면서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일본에서 축하를 해왔다고 소개했다. 일본 돗토리현 요나고시 ‘처칠회’에서 화환을 보내준데다 고다니 회장이 축하금까지 보내왔다는 것이다. 또 광주화단에서 최고 연장자인 김영태 원로화가(93)까지 전시장을 찾아 그의 전시를 축하해 자리를 빛내줬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암을 두차례나 투병해 건강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그림을 그릴 겁니다. 저는 화투도, 장기도 할 줄 몰라요. 그래서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해요."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