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만 번의 손길…대가들이 사랑한 붓 탄생하다 [남도명인] 명필장 소천 채태원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19년 07월 14일(일) 1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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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장 소천 채태원씨는 반 백 년 붓을 만들어왔다. 스물다섯 건장한 청년이 붓을 쥐어, 백발 성성한 77세가 된 지금까지의 세월이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갈고 닦아진 그의 붓은 당대 이름을 날린 서화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작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채 명인의 붓을 찾아 주월동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로 향했다.
그는 붓 속에 있었다. 붓 속에 있다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작업실 오른편 방으로는 그가 만든 붓들이 줄지어 내걸려있다. 대나무로 만든 죽필부터, 흰 염소털로 만든 양호필, 칡 줄기로 만드는 갈필, 볏짚을 쓰는 고필 등 그 종류만도 엄청나다.
그 중 눈길을 끈 것은 테이블 위로 흩어져 있는 하얀 털이다. 유심히 지켜보
자 "이것은 붓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흰 염소 털이다"고 말해준다. 친절
히 설명하면서도 부단히도 털을 손으로 쓱쓱 쓸어내리는데, 그의 쓰담는 손길을 따라 털 몇 가닥이 쏙 쏙 빠져 나온다. 붓 모양을 빼는 작업이라 한다.
"붓은 정성이에요. 하나의 붓을 만드는 데 수 만 번의 손이 갑니다. 얼마만큼 온 마음을 들여서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어요. 공정 하나 하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붓은 털 선별, 기름을 빼는 작업, 털 모양을 만들기 위해 다듬는 일, 털 길이와 중량을 달아 붓의 크기를 맞추는 공정 등이 차례로 이뤄진다. 과정 중 무엇 하나 부족함이 있다면 좋은 붓은 나오기 힘들다.
우선 좋은 붓은 좋은 재료에서부터 나온다. 가장 좋은 것은 국내산 흰 염소 털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구하기가 어려워 중국에서 수입을 하는데, 털의 기름 빼는 작업만 잘 하면 국산에 버금가는 좋은 붓은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국산 털이면 70%정도만 빼면 됐어요. 하지만 중국 것은 그만큼 빼버리면 붓이 뚝뚝 끊어져 벼려서 못쓰죠. 털 상태에 맞게 적당히 기름을 빼는 것이 기술이죠. 그리고 붓 모양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털을 다듬고 섞음질을 잘해서 묶어내고, 붓 대통에 끼우면 우리가 아는 모양의 붓이 탄생하죠."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해초로 만든 풀을 먹여서, 동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 남아있다. 붓 끝을 봉긋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붓에는 ‘소천필’(小泉筆)이란 자신의 호를 조각해 세상에 낸다.
그렇게 만들어 낸 붓 하나 하나에 ‘소천필’이란 글귀를 새겨 내기까지 부단한 노력들이 있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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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명인이 붓을 처음 접한 것은 아주 어렸던 시절이다. 5살 때부터 서당에 가 한문 공부를 했던 그는 할아버지에게서부터 붓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그러다 스물다섯 살에 본격적으로 붓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1960년 대 말, 그와 동서지간이던 김복동(광주시 무형문화재 제4호) 선생에게 붓 제작 기술을 전수받았다.
"대하 김복동 선생은 우리나라 대나무 붓의 손꼽히는 명장이셨죠. 그에게 기본적인 붓 제작 기법을 배웠어요. 당시 제가 붓을 배우자마자 서예 붐이 일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서예를 배웠고, 집 집 마다 붓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만큼 취미로서도 인기가 높았어요. 시작한 타이밍이 좋았던 것이죠. 제가 만든 붓이 전국적으로 팔려나갔으니까요."
그는 1973년 제1회 인간문화재 공예작품전 입선을 시작으로 제22회 전남공예대전 우수상, 23회 최우수상 등을 거머쥐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붓을 만들면서 그는 1973년부터 중앙일보 가업(家業)란에 글을 연재했는데, 이를 본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그의 붓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특히 육 여사와 연이 닿아 대한민국 여성회관 문예부에서 정기적으로 그의 붓을 받아썼다.
특히 그의 붓은 대가들이 아끼고 사랑했다. 의재 허백련 선생을 비롯해 남도 붓글씨 명인으로 손꼽히는 송곡 안규동, 담헌 전명옥, 소암 현중화, 학정 이돈흥 선생 등 모두가 그의 붓을 좋아했다. 그를 만날 때면 그의 붓을 사 쟁여놓기에 바빴다 하니, 그들의 붓 사랑이 얼마 만큼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지난날을 회상하던 그가, 마침 잘됐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작업실에서 붓 두 개를 가지고 나온다. 대나무로 만든 죽필과 칡 줄기를 그대로 살려 만든 갈필이다. 통상 붓이라고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라서 꽤 흥미롭다. 죽필은 붓 심지까지 온전히 대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대나무를 수 없이 쪼개어 가늘게 뽑아 낸 모습이다. 수 만 번 손이 간다는 붓 공정이 그려져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붓의 시초라 여겨지는 갈필은 칡 나뭇가지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여기다 태아의 머리털로 만드는 태모필, 양털로 촉을 만든 양호필, 이리털로 만든 낭모필,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필, 닭 목의 털로 만든 닭털필, 말 털로 만든 마필 등 100여 가지가 넘는다. 그 중 가장 좋은 털은 무엇이냐고 묻자, 쥐 수염이라는 재미난 대답이 돌아온다.
"제가 가장 좋은 붓으로 보는 게 쥐수염 털이에요. 식용 쥐가 있는데, 쥐의 털 중에서도 위에 있는 털만 꼽아 써야 해요. 털이 아주 가늘면서도 끝으로 갈수록 굵어지거든요. 이렇게 쥐수염으로 만들어진 붓은 탄력성이 좋아서, 붓을 눌러쓴 다음 다시 거두어들일 때 휘었던 붓털이 완전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쥐 수염 붓으로 글을 썼다고 전해지죠. 귀한 것이니만큼 희소성도 높고요."
채 명인은 주말이면 담양 죽녹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서예가 낯선 아이들을 대상으로 붓글씨 체험을 진행한다. 붓을 쥐는 이들이 많아야만, 붓의 생명력이 길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붓은 제 온 생이죠. 제 호가 작은 옹달샘이란 의미의 ‘소천’(小泉)입니다. 처음에 호를 받았을 때는 왜 하필 작은 샘인가 했죠. 그러나 소천은 시작일 뿐이에요. 작은 옹달샘의 물이 좔좔 흘러서 큰 강으로, 또 바다로 흘러갈 테니까요."
앞으로 꿈에 대해 묻자, 지금껏 해온 것처럼 좋은 붓을 많이 만들어 선보이고 싶다 한다.
"지금은 큰 욕심이 없어요. 제게 허락된 시간 동안 좋은 붓을 많이 만들어서 보급해주고 싶어요. 제 붓을 사랑하는 이들에게요. 하나의 도구로서, 작품의 첫 시작으로서 붓이 제 역할을 해준다면 세상엔 좋은 작품들이 더 늘어나게 되겠죠. 그것이 50여년 붓 제작에 매진 해 온 이유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붓을 만들어 낼 원동력이 돼줄 거라 믿어요."

2026.10.10 (토) 20: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