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제84호=글·최성국 기자)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낸 5·18민주화운동이 올해 40돌을 맞이했다.
오월영령들을 추모하고 당시 광주시민들과 열사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이어가려는 광주·전남 시·도민들의 열기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대유행을 하면서 32년 만에 취소된 5·18 전야제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기념행사들이 전격 취소되는 이례적인 상황에 부딪힌 현실이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이 때에 대대적인 행사는 열리지 않지만, 오월에 담긴 열사들의 의지와 5·18 정신을 선양하려는 국민들의 마음은 여느 때보다 절실하다.
‘전국화’와 ‘세계화’라는 키워드를 두고 광주를 뜨겁게 달굴 5·18민주화운동의 40주년이 가지는 의미와 코로나19로 취소된 기념행사, 오월 정신 선양 작업, 청년세대·시민들의 참여 저변 확대 등에 대해 돌아본다.

△1980년의 광주와 2020년의 대한민국.
"삼촌의 마지막 모습조차 보여드리지 못했던 엄청난 슬품을 어떻게 발아들일 수 있었을지 저는 감시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광주의 1년은 5월에서 시작해서 5월로 끝이 납니다. 삼촌을 기억하고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우리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을 간직한 할머니를 위로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5월 18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진행됐던 정부 주관 5·18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에서 안종필 열사의 조카 안혜진씨가 무대에 올라 수만명의 시민과 문재인 대통령 내외 앞에서 했던 말이다.
안종필 열사는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쟁을 벌이다 숨진 광주상고 1학년 시민군이다. 그는 어머니인 이정님 여사의 갖은 만류에도 1980년 5월 25일 새벽 거리로 나가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계엄군에 의해 사망했다.
그리고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안혜진씨의 말처럼 광주·전남 시·도민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5월이 자리잡고 있다.
매년 5월이 되면 시민들의 마음 속 한켠이 뜨거워 지는 이유다. 5·18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당시 신군부 세력의 진압에 맞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비상계험 철폐’ ‘유신세력 척결 등을 외치며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역사적 사건이다.
항쟁 기간 중 22~26일 닷새동안은 시민들의 자력으로 계엄군을 물리치고 광주를 해방구로 만들어 세계사에서 유래가 드물게 자체공동체를 실현하기도 했다.
이런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뜻깊은 올해의 기념사업은 ‘전국화’와 ‘세계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키워드들은 ‘기억하라 오월 정신, 꽃피어라 대동 세상’이라는 올해 5·18기념행사의 슬로건과 상징 문장(엠블럼)으로 지정된 ‘오월 주먹밥’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기억하라 오월 정신, 꽃피어라 대동 세상’이라는 문장에는 ‘5·18민주화운동의 40주년을 맞아 5·18의 진실을 밝혀내고 1980년 5월 해방 광주가 경험했던 자유와 평등의 대동 세상을 한반도와 세계에 꽃 피우자’는 의미가 담겼고 ‘오월 주먹밥’은 숫자 518을 이미지화하고 항쟁 정신과 나눔공동체, 민주주의 세계화라는 의미가 부여됐다.
80년 당시 광주공동체가 실천했던 나눔의 가치를 상징하는 주먹밥과 5·18의 세계화를 의미하는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제40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이하 행사위)는 40주년 기념행사의 슬로건·엠블럼을 지정하기 위해 공모전을 진행했는데, 슬로건에는 545편, 엠블럼에는 26편의 공모가 접수됐다.
정식 당선작 이외의 공모 작품들일지라도 작품 하나하나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받아들인, 5·18민주화운동이 이뤄냈다고 생각하는 500여 가지의 모습들이 담겨 있는 셈이다.
전국화와 세계화는 먼 곳에 있는 게 아닌 광주의 오월을 경험하지 못한 청년세대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확대에서 시작한다.
5·18의 전국화를 위한 첫걸음의 일환으로 광주시와 서울시는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사업’의 공동 추진에 나섰다.
40주년을 계기로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재조명해 그 의미와 정신을 세계에 알리는데 공동으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두 도시는 협약을 통해 5·18이 포함된 한 주를 민주인권주간(5월 12~18일)으로 정하고 4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 기간 다채로운 문화예술 및 학술행사가 개최되며 서울시청과 서울광장 일대에서 40주년기념음악회, 국제컨퍼런스, 서울의 봄 라이브 콘서트, 민주·인권·평화도시 선언 전국대회 등이 열릴 계획이다.
이 밖에도 5·18의 의미를 담은 문학, 무용, 연극, 영화 등 문화·예술공연도 양 도시에서 선보인다. 특히 민주·인권·평화와 관련한 양 도시의 우수정책을 상호 교류해 도입키로 했다.

△코로나19 여파…‘5·18 40주년’ 주요 행사 전격 취소
5·18정신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위해 중차대한 제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맞닥뜨렸다.
전 세계를 공포와 경제 충격으로 몰아 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지난 1월말 국내에서도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하더니 세계보건기구(WHO)가 감염병의 최고 경계 단계인 팬데믹을 선언, 전 세계로 확산돼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수만명의 사상자를 만들고 있다.
이런 코로나19의 공포감 속에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수십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행사위의 시작마저 순탄치 못했다.
코로나19의 지역 사회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급속도로 번지고 정부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에 나서면서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행사위 출범식은 무기한 연장, 추후 간략하기 치러졌다.
행사위는 코로나19 장기화로 국민건강 악화와 서민경제가 심각하게 침체되는 상황 속에서 축제 분위기는 적절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고,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은 전격 취소됐다.
특히 매년 수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의 시작을 알렸던 5·18 전야제도 32년 만에 열리지 않는 이례적인 상황을 맞았다.

행사위는 지난 4월 7일 5·18단체장과 상임 행사·집행위원장, 분야별 행사위원들이 참석하는 제9차 행사위원단장 회의를 열고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40주년 5·18기념행사를 대폭 취소하는 것에 대해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행사위 관계자들은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지속돼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인파가 밀집할 수 있는 행사 개최는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이 같은 의견을 모았다.
취소되는 행사는 기념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5·18 전야제와, 국민대회, 청년마당, 민주기사의 날 등이다.
5월 17일 5·18민주광장과 금남로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전야제에서는 민주주의와 역사, 생명, 평화, 통일, 환경 등 다양한 체험 부스가 운영, 오후에는 오월 가족과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광주 여러 장소에서 출발해 금남로와 옛 전남도청으로 향하는 ‘민주평화대행진’이 치러질 전망이었다.
특히 전야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혁명의 촛불,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민주의 역사 △위대한 광주 △민중의 힘으로 명명된 5개의 문을 통과해 본 무대에 도착, 동학혁명부터 촛불혁명까지 이어지는 시대의 흐름을 민주주의 역사로 형상화하는 동시에 행사위는 전 세계의 민중항쟁 현장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동시 생중계하면서 세계화의 시작을 알릴 계획이었다.
16일 펼쳐질 예정인 국민대회는 1980년 당시 궐기대회의 형식과 내용을 차용하는 방식으로 현 시대 상황을 진단, 이 행사에는 학살과 진압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 5·18민중항쟁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망언 등이 멈춰지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 반영될 예정이었지만 전부 취소됐다.
이어 20일 민주기사의 날에는 무등경기장~구 전남도청으로 이어지는 차량 행진이 이어지면서 당시의 차량시위를 재현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행사 시간에 맞춰 경적 울리기, 전조등 켜고 운전하기 등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이마저도 무산됐다.
5·18 전야제가 추진되지 않으면서 다양한 체험 부스가 운영되는 시민난장, 금남로와 옛 전남도청으로 행진하는 민주평화대행진, 오월 풍물굿 등도 전면 취소됐다.
5·18민주광장에서 1만개의 북을 동원한 공연 행사 등 시민들이 밀집하는 각종 행사도 취소하기로 했다.
18일 당일 정부 공식 기념식은 기존 일정대로 추진될 예정이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고려해 참석 인원 등 행사 규모는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또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계엄군에 희생당한 오월 영령들을 기리는 추모식과 부활제는 참석 인원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추모제는 5월 17일, 부활 문화제는 5월 27일에 각각 열린다.

△‘진상 규명·왜곡·폄훼 대응·5·18정신 선양’…미래의 40년 준비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기념행사가 전격 취소되거나 축소됐지만 5·18민주화운동의 전국화와 세계화는 첫발을 내딛었다.
행사위는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취소하는 대신 5·18정신을 선양하고 미래의 40년을 위한 사업을 구상·추진할 계획이다.
행사는 축소되더라도 학생 오월길, 역사탐방, 5월 청소년 한마당, 진상규명 사업, 전국화·세계화를 위한 네트워크 사업, 부문 사업 등이 5·18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광주 곳곳에서 치러질 전망이다.
특히 5·18기념재단은 주요 현안 과제인 5·18 진상규명과 왜곡대응을 목적으로 진상규명 및 조사 지원, 고백과 증언 제보센터 운영, 유튜브 왜곡실태 분석 및 대응전략 연구, 왜곡모니터링, 전두환·지만원 관련 민·형사 법률대응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지만원과 전두환 관련 민·형사 법률 대응에 본격 팔을 걷고 나설 방침이다.
오프라인 상에서 시민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길이 막히자 온라인을 통한 5·18 정신 선양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행사위가 청년세대·시민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추진한 유튜브 동영상 공모전이며, 5·18기념재단은 5·18 진상규명과 왜곡 대응을 위한 유튜브 운영 및 콘텐츠 제작 등에 나선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청소년이 바라보는 5월의 영웅’을 제작한 김온유군은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6살 청소년이다.
이 작품은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금남로에서 희생된 시민들을 포스트잇을 활용한 인터벌 촬영기법으로 제작, ‘5월의 그 날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았다. 포스트잇에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고 이를 정상속도보다 느리게 촬영해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의 기법이 활용됐다.
김군은 "5·18 영화와 관련 서적을 보고 읽으며 영상을 준비하면서 5·18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며 "아직도 진실을 모르는 또래들이 이 영상을 보고 조금이라도 그날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당선작 중 ‘오월, 그날의 숫자들’은 5·18 항쟁시작일(18), 항쟁 당시 사용된 총탄 수(51만발), 행불자 수(242명), 전두환 재산(29만원), 전두환 회고록 허위사실(33가지), 집단발포일(21일), 5·18 서훈자 수(91명), 처벌자 수(0명), 5·18민중항쟁 40주년(40) 등 숫자를 매개로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제40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5·18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학살책임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아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5·18이 올해 40주년을 맞은 만큼 온전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로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고 5월 정신을 헌법전문에 반영하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행사위는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기념행사가 축소되더라도 5·18정신을 선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며 "전국화와 세계화의 성과를 바탕으로 광주의 오월을 넘어 대한민국의 오월, 세계인과 연대하는 오월로 확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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