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제82호=고선주 기자) 그를 만난 것은 아마 2007년께다. 이전에는 그에 대한 존재감을 별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가 파꽃을 그린 것은 2000년부터였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파꽃이라고 하는 소재가 워낙 독특한데다 기성 세대 여성들이라면 식탁의 요리 재료로 쓰이는, 익숨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 마음에 각인됐을 것이라는 상상은 당연한 이치다.
필자 역시 화폭 속 파꽃을 신기한 그림을 쳐다보듯 했었다, 이는 파꽃을 그리는 화가에 대한 생경함이 그림보다는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파꽃 그림이 전국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계기는 2007년 나인갤러리 소속으로 서울화랑아트페어에 참가해 진화랑과 연결되면서다. 그의 파꽃 작품을 본 진화랑 측이 그림이 독특하고 참신하다는 이유로 그를 초대하면서 파꽃은 당당하게 외연을 넓힐 수 있었다. 이 파꽃 그림의 주인공은 일찍부터 ‘파꽃의 화가’로 불려온 서양화가 최향씨다.
그를 만나기 위해 동구 궁동 예술의거리 무안요를 끼고 15번길로 살짝 꺾어 접어들면 자리한 화실로 향했다. 그의 화살을 찾아가는 날 예술의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오전 시간대이기도 했고, 온나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몸살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더더욱 그렇게 보였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를 13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안면을 알고 있었으면서 심층취재 한번 못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지만 한편으로는 묵은 숙원사업같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앓던 이가 빠지는 격이 아닐까 싶다.
무안요 앞으로 마중을 나와있던 그를 따라 작업실로 들어갔다. 계속 앞서면서 허름하다는 말을 했지다. 그러나 화가의 작업실은 그 작업실을 쓰는 주인장에게 최고의 공간이면 되는 것이지, 객들에게 좋아봐야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자문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약간 어두운 톤의 작업실과 잔잔한 음악은 작업실이 작업실이라는 목적에만 한정하지 않는 듯 보였다. 집 못지않게 그의 일상이 소화되는, 또 다른 공간으로 여겨졌다. 2000년부터 8년여 동안 김재규 경찰학원 인근 작업실에서 보낸 뒤 현재의 작업실로 옮겨와 지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올해 그는 파꽃을 화폭에 담아온 지 20년을 맞았다. 이 파꽃으로 귀결하기까지 그의 삶에도 여러 차례 변화가 찾아왔다. 그는 원래 전북 익산 출생이다.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교직에 종사했다. 전북 정읍에서다. 2년 반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이었지만 같은 교직에 있는 남편을 만나면서 교직을 정리하고, 남편이 광주로 전근을 오자 자연스럽게 그도 광주로 거처를 옮겨오면서 광주생활이 시작됐다. 결혼 1년 뒤인 1979년 옮겨온 이후 줄곧 광주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그림에 몰입한 것은 아니다. 1979년부터 2000년까지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학원을 병행하면서 작업을 손에서 놓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학원에 신경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프로작가의 시점을 1988년으로 잡는다. 제1회 개인전 때문이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화니백화점 갤러리에서 열렸다. 해바라기나 아이리스 등 일반 꽃을 그리던 때였다. 광주에 기반은 없었지만 개인전에 대한 반응이 워낙 좋아 화가로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것은 그에게 수확이었다.
이런 일반의 작업들이 있었기에 훗날 자신만의 독창적 파꽃에 가닿을 수 있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그는 3년 전부터 파꽃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조각까지 더해 작업을 펼쳤고, 현재는 약초과 식물(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에 속하는 맥문동을 더해 작업한다.
"파꽃을 캔버스 밖으로 꺼내볼 수는 없을까 해서 조각을 더했죠. 그런데 평면회화가 가지고 있지 않는, 전혀 다른 느낌을 안겨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맥문동을 더한 것은 파꽃과 맥문동이 보는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에서였죠, 또 파꽃 안에 맥문동이 들어가 있기도 하구요. 지금은 파꽃과 맥문동의 듀엣을 구축한다고나 할까요, 따로 또 같이를 구상하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파꽃을 작업하고 있음에도 자신을 아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에게 다시 추상을 해볼 것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첨언했다. 이런 취지가 전시로 구현된 것이 2018년 제29회 개인전이었다. 예술의거리 아트타운갤러리에서 열렸던 이 전시에서 작가는 추상과 파꽃 및 입체조각 등 트리플 판타지의 개념을 선보여 관심을 모았다. 여기다 지난해에는 서울코엑스에서 열린 화랑미술제에 작품 9점을 출품했다. 서울에서 전시한 지 오래된데다 판매 목적보다는 파꽃 그림을 미술계 안팎에 한번 더 각인하기 위한 취지로 참여한 것이다.

사실 오늘날 그가 파꽃의 화가로 화단에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유년 시절 예술가 집안의 향취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게 유년 시절의 기억들은 그의 삶 곳곳에 선명한 자국으로 남아있다. 어렸을 때 ‘그림 잘 그리는 아이’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녔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와 언니는 음악을 전공했고, 바로 위 오빠는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했다고 한다. 유년시절 집에 피아노 소리 끊기는 날 없을 정도였다고 술회한다. 모친마저 그에게 "너는 한국 최고의 화가가 돼야 한다"라고 말씀을 하셔서 미술은 자신의 전부로 몸과 마음에 자리잡게 된다. 이런 영향들이 오늘날 화가 자신의 뒷배경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가 교직이라는 안정직을 내려놓고 그림으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빵보다는 자유에 더 마음이 가닿은 때문으로 풀이된다.
"저는 빵 보다는 자유를 원했던 것 같아요, 광주로 와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화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것이 행복했죠. 전업 화가를 하다보면 어려운 일이 한두기지가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화가가 조금 가난한 게 더 좋은 것 아닐까라고 여겨져요. 젊었을 때는 부족한 것이 좋았어요. 제가 작가로서 성취하려는 것과 작가로서의 빠른 성취 등 작가로서 버팅길 수 있었던 것은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힘도 한몫했죠. 이 종교적 활동은 일상의 안정감은 물론이고 창작의 또 다른 에너지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이런 개인사 속에서 귀결된 파꽃은 국내를 넘어 취리히 아트페어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왔다. 그러나 더 큰 욕심보다는 화가로서의 삶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는 작가로 나아갈 방침이다. 소소한 자신의 일상을 언급했다.
"도움받지 않고 혼자 작업할 수 있는 것도, 경기가 안좋아 옛 영화는 없지만 작가로서의 삶 행복하다고 할 수 있어요. 저에게 주어진 인생을 정리하면서 마음을 비워가며 작업을 할 거예요. 무조건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서 욕심내지 않고, 화가로서의 길을 꿋꿋하게 갈 겁니다. 이 나이에 제 또래들보다는 더 나은 일상이에요. 여전히 출퇴근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니까요. 서민적 낮은 자세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림이 되든, 되지 않든 지금의 작업실로 출퇴근을 하고 있어요.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죠."
이런 일상이 가능한데는 작가가 빠져있는 사색 때문으로 읽혔다. 이들 활동 외에 버스를 타고 무등산 원효사를 다녀오는 것 역시 그가 갇혀서 하는 작업보다는 자신을 놓음으로써 채워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 사색은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에의 준비이기도 하다.
올 6월께 30회 개인전을 열 계획인 그는 파꽃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파꽃은 전생과 같은 존재이자 다음을 준비하는 씨방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상품성이 있는 자가와 유명한 작가 보다는 영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깊이있는 작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낮은 자세로 비어있는 삶을 채워가는 화가가 되고 싶어요."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