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체 움직이지 않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문득여행]영광 불갑사·불갑제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23년 05월 09일(화) 1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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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와의 인연은 유년시절로 돌아간다. 부친으로부터 지역적 특성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가 현재까지 머리 속을 맴돈다. “불갑면장을 할래, 백수 하사리 이장을 할래”였다. 이는 그만큼 불갑면이 작은 규모라는 점에서, 반대로 대마가 불갑면 만큼 크다는 점에서 그런 이야기가 회자됐고, 필자에게까지 전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불갑사(佛甲寺)로 소풍 간 기억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불갑산은 영광 일대 등 전남 북서부 지역에서는 명산 중 명산으로 통한다. 월야 평야 끝자락에 솟아있는 불갑산은 그 일대에서는 어디서나 조망이 될 정도다. 보는 각도에 따라, 거리에 따라 완전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 더 오묘한 느낌을 안겨준다. 주봉은 연실봉으로 해발 516m에 달하는 산세 아래 불갑사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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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백양사의 말사로 384년(침류왕 1)에 마라난타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805년(애장왕 5)에 중창하는 등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쳤다. 스님 수백명이 머물 정도로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지만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만다. 그러다 1680년에 중건한 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의 가람 구조를 갖추게 된다. 대웅전과 팔상전·칠성각·일광당·명부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사찰 입구에는 각진국사비(1359)와 부도밭이 자리하고 있다.
일주문 인근에는 튤립 꽃밭이 조성돼 있고, 탑원 등이 조성돼 있다. 탑원은 굉장히 이질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유년 시절에는 없던 시설물이다. 탑원은 단어 자체로만 이해하기 힘든데다 모양을 보아도 무슨 용도인지 알아채기 힘들다. 탑원은 간다라 지역 사원 유구 가운데 가장 잘 남아있는 탁트히바히 사원의 주탑원을 본떠서 조성한 탑원으로, 마라난타 존자의 출생지인 간다라 사원 양식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공간들은 가운데 중앙탑을 바라보며 승려가 수행하던 작은 굴을 의미한다.
탑원이 생경했던 것처럼 일주문 또한 파격 그 자체로 평가받고 있다. 진입하는 쪽에서 보면 불갑사라고 하는 한문현판이 부착돼 있지만 사찰을 벗어날 때는 운광문(雲光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그런데 일주문을 지탱하는양쪽 기둥이 예사롭지 않다. 보통 직선의 나무기둥을 사용하지만 이곳은 곡선으로 자연스런 결을 그대로 살린, 휜줄기와 가지로 받치는 형태다. 아무래도 직선보다는 휘어진 기둥보는 힘을 덜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휘어진 기둥보라, 좀처럼 이해가 되지는 않았으나 그게 우리 불교건축문화의 또 다른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내 건축물을 살피다 휘어진 기둥보를 쓴 건축물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흔한 풍경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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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마음으로 자연을 만끽하며 경내를 향해 걷다 보면 호랑이 상과 호랑이굴을 만날 수 있다. 이 시설 역시 유년시절에는 없던 시설물이다. 영광군에서 실제 불갑사에호랑이가 서식했다는 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09년 모형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1908년 2월 한 농부에 의해 불갑산 덫고개에서 잡힌 것을 일본인 하라구지가 200원(당시 논 50마지기 가격)에 사들여 일본에서 박제 처리한 뒤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해 현재까지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이 호랑이는 남한지역에서 잡힌 호랑이 중 박제 표본으로 보관되고 있는 것으로 유일하다.
불갑사는 경내 입구까지 평지길인데다 공원이 조성돼있어 심심치 않게 이동하며 경내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부처님의 진리의 향기 가득한 불갑사 대웅전은 보물 제830호. 앞면 3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 형태를 띄고 있다. 특히 불단의 위치가 눈길을 붙잡는다. 불단이 서쪽 끝에 자리해 본존불이 동향을 향하도록 돼 있다. 이는 굉장히 드문 경우로 평가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볼 수 있는 불단의 형태다. 경내로 들어오면 보통은 불상이 앞쪽을 향하게 돼 있지만 이곳은 측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대웅전 마당은 벌써 석가탄신일(음력 4월 초파일)을 앞두고 연등을 매달기 위한 구조물이 한창 설치 중에 있었다. 이맘때 사찰은 초파일 분위기로 점점 달아오르고 있는듯하다.
특히 불갑사에 가면 대웅전 문창살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연꽃과 국화 모양 문양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에 그리 흔치 않은 모양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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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소풍 때는 연실봉까지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정상에는 군인들이 망원경을 설치해 서해안을 감시하는 군 초소가 자리하고 있었고, 우리들에게 망원경으로 서해안을 조망해보도록 해줘 그때 처음으로 망원경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찰 입구에는 현대민주주의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민주열사 박관현 동상이 조성돼 있어 잠시 5월을 앞두고 그의 투쟁정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박관현 열사는 깨복쟁이 친구의 외삼촌이어서 더 각별한 관심이 가던 인물이기도 하다.
불갑사는 아담하며 그윽하다. 열을 맞춰 가람구조가 돼있는 형국이다. 유년시절에 봤던 불갑사와 현재의 불갑사는 조금 다르다. 조금 흑백필름 속 가람들이 현재는 더 많은 요사채가 늘어난데다가 사찰 입구에 공원이 조성돼 전통적 감흥이 덜하다는 인상이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자 범종 타종이 경내로 울려 퍼졌다. 범종 타종하는 동안 지켜보다가 스님이 돌아서 계단을 내려오자 필자도 경내를 빠져 나왔다.
이에 앞서 불갑사 아래에 자리한 불갑제(불갑저수지)를 둘러봤다. 이번처럼 불갑제를 꼼꼼하게 살핀 것은 처음이었다. 전촌 마을로 가는 이면 도로를 따라 깊숙히 들어가봤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는 내내 불갑제 수변데크길이 닦여져 있었다. 늘 불갑산을 오면 불갑사만 둘러보고 가버렸기 때문에 불갑제가 이처럼 규모가 크고 아름다울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돈 있으면 전촌 인근에 땅을 구입해 전원주택 혹은 창작실 하나 구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광주 인근에 이처럼 호수와 산촌이 어우러진 곳이
있다니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촌으로 들어가는 도중 잠시 주차를 한 뒤 수변데크길을 걸어 운치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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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제 규모가 크기 때문에 마치 바다 근처나 큰 호수 근처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물살을 여울지고 바람이 우는 소리가 영락없이 물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이었다. 더욱이 친수 산책로와 전망대(물멍 쉼터) 등 생태탐방로까지 구축돼 물 위를 거닐며 힐링을 할 수 있었다. 교각 형태의 탐방로 아래로는 물살을 볼 수 있도록 아래가 보이는 구조로 해놓아 더 스릴과 살아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다시 거꾸로 전촌에서 나와 불갑제 건너편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닦여져 있어 전촌 쪽 보다 더 서쪽 길을 타고 불갑제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었다.
불갑제는 수변데크길을 포함해 수변도로 옆 보도, 댐길, 마을길 임도 등을 모두 합하면 15㎞에 달할 만큼 결코 짧지 않은 코스다. 제방으로 이동하는 도중 수변공연에 들렀다. 튤립 등 각종 꽃들이 만개해 호수 같은 저수지 풍경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움을 뽐냈다. 이곳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댐 제방으로 이동, 계단을 타고 올라가 봤다. 녹산로1길 소재 침류정(枕流亭) 앞 올라가는 계단 곳곳에 동물들의 분뇨로 인해 인상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지만 제방 위로 올라서서는 거대한 불갑제를 조망할 수 있어 가슴이 트였다. 하류 쪽으로는 유채꽃밭이 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제방 위에는 참전유공자기념탑과 불갑제라고 하는 안내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수지 끝까지 조망은 어려웠다. 산 사이를 파고들어 구부러진 물길 때문이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봤던 소양댐 같은 곳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면 너무 억측일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유명공간이 하나 안부러웠다는 것이다.
불갑사와 불갑제 방문은 백수해안도로 쪽으로만 향하던 패턴을 일거에 바꿔놓을 듯하다. 이곳의 풍경에 매료돼 가까운 시일 안에 다시 찾을 생각이다. 이번 여정에서는 불교미학이 곳곳에 투영된 건축물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없던 불심이 생길 정도였다. 또 복잡한 일상으로 인해 무뎌진 감성이 복원됐으며,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등 호기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번 여정은 좀체 움직이지 않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2026.10.10 (토) 20: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