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포구가 결코 한적하지 않은 삶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다독여주기를 희망했다

[문득여행]무안 도리포에서 만난 풍경
작은 어촌과 바다 풍경 운치 더해 조용한 ‘쉼’ 최적
해제면 최북단 끝자락…갯벌·낙지·등대·김 등 유명
일몰·일출 명소 인기…칠산대교로 영광 왕래 수월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08월 31일(목) 17:33
(2023 8월 123호=글 고선주 기자) 수선스럽지 않은, 한적한 공간에서의 힐링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더욱 필요하다. 그렇다고 한 생을 쉼없이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년 365일 내내 일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는 사람이 1년 내내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식이 질리면 중식 먹고, 중식이 질리면 일식을, 일식이 질리면 양식을 먹는 이치와 같은 것 아닐까. 그래서 요즘은 일과 휴식이 동전의 양면처럼 움직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일하다 보면 같은 풍경만 보게 된다. 같은 풍경만 봐야 하는 일은 식상하기 이를 데 없고, 쳐다 볼수록 질릴 수 밖에 없다. 무감각하게 흘러보내는 방법 외는 다른 방도는 없다. 늘 새로운 곳에서 일상과 다른 풍경을 찾아나서는 이유다.
사전적으로 보자면 풍경(風景)은 감상의 대상이 되는 자연이나 세상의 모습을 말한다. 근래들어 번잡하고 타이트한 일상으로 인해 풍경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더욱이 7월과 함께 휴가철의 쌍벽을 이루는 8월이어서 풍경이 보고 싶었다. 그만큼 현실이 버거웠거나 잠시 쉼이 필요했지 않았나 싶다. 다만 그냥 현실만 벗어난다고 휴식이 되지는 않기에 한적하되 수선스럽지 않으며 고요하고 적막한 곳. 그러면서 풍경이 운치가 있어 심연에 숨겨진 낭만 한 토막 끄집어 내줄만한 곳, 가본듯 한데 가보지 않는 곳을 고민했다. 이런 곳을 찾는 게 가능할까 생각하다가 어느 시(詩) 한구절이 떠올랐다. 10년도 전에 신춘문예 시 당선작이었는데 처음 들어본 포구였다.
‘마악 사랑을 놓아버린 사람은 도리포에 가보라/일출도 일몰도 아름다운 바다를 지나 구릉을 넘어/도로끝 전방 이십미터 표지판마저 지나치면/정말 길은 끝나고/조각배 바늘침인양 떠있는 너른 물을 만난다…중략…가기는 가야하는데/길은 끝이 나고 막막한 사람 도리포에 가보라//꿈도 그리움도 물거품이고 그림자였다는 말 한마디 없이/통통 발동을 걸고 또 다시 물길로 나서는 공도리 空道理/터득한 고깃배를 바라보다가 귀소할 수 있기를 제발/당부하노니 지금 마악 사람을 놓아버린 사람은/마음의 고향을 일러주는 도리포 그 곳에 가 보라’
광주시낭송문화를 위해 오랫동안 힘을 써온 오소후 시인의 ‘문득 도리포에 이르러’라는 작품이다. 27행으로 이뤄진 시인데 처음에는 별로 감흥없게 다가왔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좋아진 작품이다. 오십줄에 접어들어 이 작품이 신춘문예에 당선 되면서 늦깎이로 등단한 시인이다. 2001년 전 직장에서 신춘문예를 담당하면서 뽑혔던 작품으로 벌써 22년이 지났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묵직한 한방이 있는 듯한 그런 시로 다가온 작품이다.
시 행간에서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지만 도리포가 이 시구들과 함께 더 명징해졌다. 모처럼 폭우로 많은 생채기를 남긴 뒤 맞이한 해맑은 금요일, 말 그대로 문득여행을 떠났다. 어제까지 비, 그러나 오늘 갑자기 해맑다니 마음만큼이나 변죽이 심하거나 속알머리 하나 없는 하늘 같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어찌됐든 이런 날 포구에 가면 알싸한 바다 내음과 포구에 들어선 전망좋은 카페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 하면서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고깃배들을 바라볼 생각을 마음의 도화지에 먼저 그렸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미 마음의 도화지에는 바다 풍경이 완성된 듯하다. 도리포는 ‘바라고 바라는 모든 풍경을 다 채워줄 거다’라는 혼자 생각에 확신의 옷을 입히면서 도리포로 향했다. 도리포는 무안 최북단에 있는 포구다. 무안은 지리적으로 함평 앞바다와 영광 남쪽 바다까지 형성돼 있다. 보통 목포쪽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전혀 그렇지 않다. 도리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함평만 앞에 떠 있는 해제면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 지리적으로 묘한 감정이 드는 곳이다.
앞서 시 ‘문득 도리포에 이르러’에서 꼼꼼히 읽은 분들이라면 시적 화자의 비장미가 군데군데 느껴지고, 그것이 더 증폭되는데는 끝이 가져다주는 긴장감과 호기심이 더해졌을 것이라는 짐작을 쉬이 할 수 있을 터다. 그냥 수많은 포구 중 하나였다면 이 시가 갖는 비장미가 훨씬 약화됐을 것은 뻔하다. 끝은 인간이 마지막으로 도달할 지점이다. 누구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니 우리네 삶에 빗대보면 그리 작은 의미가 아니다.
무안 도리포는 해수욕장만 있는 것은 아니고 4월이면 열리는 유채꽃축제가 있다. 또 인근 바다에서는 600점이 넘는 고려시대 상감청자가 발굴된 적이 있어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일출과 일몰로 널리 알려져 있다보니 연초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도리포가 끝을 각인하는 점도 좋지만 한적한데다 번잡스럽지 않은 풍경이 더없이 좋았다. 마을을 둘러보는데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송계 쪽 말고 이정표가 세워진 도리포구는 그야말로 아늑하다. 사람 성격으로 치면 말수가 적은 유형의 풍경으로 다가왔다.
조용하고 번잡스럽지 않으며 누구 하나 터치하지 않는 여정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돌아다녀봐야 고깃배들이 정박을 하는 곳에 조성된 방파제 둑에 올라 낚시하는 몇몇과 도리포항이라 새겨진 전망대 정자에 한 둘, 마을 횟집 야외 의자에 앉아 있는 주민 몇몇이 전부다.
물론 낙지를 형상화한 무안갯벌낙지 조형등대와 정자 앞 손을 뻗치면 닿을 만한 바위섬 위 조형물이 이 바다의 안녕을 관장하는 듯해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러댔다. 때마침 갯벌낙지 조형등대에는 낙지 머리 위에 갈매기 한 마리가 앉아 ‘안빈낙도 음풍농월 유유자적’을 실천 중이다.
도리포구와 천사대교, 낙지 조형 등대

다른 포구에 가면 쉽게 볼 수 없었던 영광군 관광지도 안내판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무안에 왜 영광군 관광지도 안내판이 서 있을까’ 생각했다. 무안군의 최북단이지만 건너편이 영광군 염산면 향화도항이 자리하고 있을 만큼 양 지역이 그리 멀지 않다. 물론 뱃길로만 왕래했을 때는 지금처럼 빈번한 교류는 어려웠을 것이고, 영광군 관광지도 안내판이 서 있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칠산대교는 왕복 2차선으로 1800여m 길이다. 2019년 12월 개통돼 무안과 영광 간 왕래에 신기원을 맞게 됐다. 예전 같으면 도리포를 도달하기 위해서는 배로 이동하거나 차를 타고 영광에서 출발해 함평 지나 무안까지 내려가 다시 최북단으로 이동해야 해서 엄청 불편했을 것이다. 칠산대교가 들어선 이후 그야말로 손쉽게 오갈수 있는 옆 마을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도리포는 수선스럽지 않아 좋았다. 도리포 쪽에서는 칠산대교가 더해져 덜 심심한 풍경이다. 마침 그 위로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 마음을 더 센티(센치, 감상적)하게 만들었다. 포구가 크지 않아 금방 둘러볼 수 있지만 근래는 바다 전망을 조망하면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전망좋은 카페가 있어 그곳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카페 내부도 모던하게 잘 꾸며놓았다. 그곳은 커피를 주문하면 간을 한 것과 하지 않은 두 종류의 시식용 포장김이 함께 따라 나온다. 맛을 보라고 내놓는 것이지만 맛이 압도적이어서 지갑에 손이 간다. 청정무안 도리포 곱창돌김이었다. 김이 꽤 유명한 듯했다.
포구를 샅샅이 훑어본 뒤 영광 쪽에서 바라본 도리포는 어떤 모습일까 해서 처음 칠산대교를 가로 질러 영광 땅으로 들어갔다. 영광 땅에서 처음 맞이하는 곳은 향화도항이다. 그곳에는 그 일대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칠산타워가 세워져 있다. 높이가 111m에 달해 함평, 무안, 신안 일대를 조망할 수 있었다.
칠산타워에는 크로마키 포토존과 망원경, 스카이워크, VR체험, 수산물판매센터 및 향토음식점, 낙월도와 송이도행 등 여객선 매표소가 입주해 있다. 원통형 구조로 한 바퀴 돌면서 조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곳곳에 유리 바닥이 설치돼 111m 아래 아찔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고소공포가 있는 분들은 공포감이 두배로 배가될 것이다. 멀리 도리포구도 시선에 포착된다. 그리고 군데 군데 섬들이 바다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압권은 타워의 조망이다. 절반은 바다 풍경이고, 절반은 내륙의 풍경이다. 반반 치킨처럼 반반 풍경이어서 그 조화가 더 색다르다 할 수 있다. 한 바퀴 돌고 나서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작은 카페가 있다. 가격도 얌전한 편이어서 부담없이 커피 한잔 하며 쉬었다 올 수 있다.
간혹 여행을 떠났다 돌아올 때는 또 가보고 싶은 풍경이 있는가 하면, 한번쯤 와볼만한 풍경, 다시 안 와도 될 풍경 등 저마다 여행지에 대한 평가를 매길 수 밖에 없다. 도리포는 또 가보고 싶은 풍경 단연 1순위다. 아니 앞으로 가까운 바다를 보고 싶을 때 버킷리스트(소망목록) 중 1순위가 될 성 싶다.
도리포에서 징글맞았던 폭우 뒤 맑은 여름을 볼 수 있었고, 수선스럽지 않은 포구의 풍경으로 인해 잠시 쉬어가는데 최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한적한 포구가 결코 한적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기를 희망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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