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안에 스토리 있어 읽는 맛이 좋다고 해요"

신문화탐색(연극배우 출신 시인 한종근)
극단 ‘신명’서 20대 청년기 보내며 사회·문화 운동 펼쳐
8, 9년 전 담양 연화마을 정착…오십 중반 늦깎이로 등단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시 창작 하겠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6월 02일(수) 17:55
(2021년 6월호 제97호=글 고선주 기자)

 담양 창평에 거주하고 있는 그를 만나러 가는 길. 그는 연극배우 출신 시인이다. 연극은 10년 경력의 중고참이고, 시인으로는 등단 2년차 신예다. 그가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또 연극 배우를 하다가 시를 쓰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가는 길에 다른 한 곳을 경유하느라 조금 늦다보니 고속도로를 타지 않을 수 없었다. 창평 IC를 빠져나가 좌회전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지나 또 좌회전이었다. 창평 가는 길은 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여운이 남으려고 하는 순간 터널 같은 숲길은 끝나버렸고, 그가 거주 중인 창평면 유곡리는 그렇게 다가왔다. 마을회관에 차를 세우고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그의 거처가 나왔다. 연화마을 한 복판 쯤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문이 열리고 그가 마중을 나왔다. 주인공은 연극배우 출신 늦깎이 시인 한종근씨(56). 그의 거처 마당으로 들어서자 어귀에 예쁜 의자와 책상이 놓여져 있었다. 서둘러 이동하느라 숨이 차 호흡을 잠시 가다듬고 그와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의 거처는 본채와 부속채로 나눠져 있다. 본채는 창인당으로 부르고, 부속채는 청암으로 명명하고 있다. 창인당은 창평과 어짊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창인당은 설명을 하려면 계보가 필요했다. 다석 유영모 선생으로 올라간다. 그의 제자인 김흥호 선생이 있는데 또 그의 제자 심중식 선생님이 있다. 그가 지어준 택호라는 것이다. 나중에 그는 ‘창인당’이라는 시를 한편 창작하기도 했다. 창인당은 그가 품은 생각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요즘 서예를 배우고 있어 창인당이라는 택호는 더 각별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낙관에 쓰는 호가 창인당이라고 해서 시 제목 역시 창인당이라고 했다는 설명이다.
 부속채인 청암은 원래 마굿간과 창고, 헛간으로 쓰이던 곳이었는데 이를 작업실(창작실)로 바꿨다. 벌써 연고도 없는 연화마을에 정착한 지 8∼9년이 흘러갔다.
 그가 25여 세대 사는 마을에 더 빠르게 녹아날 수 있었던데는 대형 축사가 마을로 들어온다고 해 함께 반대운동을 하면서 깊은 유대감을 형성, 안착에는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한다.
 농촌에 거주하면서 틈틈이 아이들에 독서지도 역시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담양 소재 9곳의 지역아동센터 중 서너곳을 순회하며 독서지도를 한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하면 부속채 청암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회를 진행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한씨는 지역에서 독특한 지점에 자리한 예술인이다. 20대 청년 시절 그는 광주의 대표적 극단에서 젊은 혈기로 마당극에 올랐다. 그의 활동기는 주로 5·18민중항쟁 최초 마당극인 ‘일어서는 사람들’이 선보일 무렵이었다.
 이때만 해도 훗날 정식 문인이 돼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전공이 국문학이어서 문학 언저리에는 늘 자리했지만 그는 연극 무대에 먼저 투신했다.
 그는 극단 ‘신명’에서 20대를 보냈다. 신명은 무대극하는 극단이 아닌, 공동창작이 이뤄지곤 하는 마당극 전문 극단이었다. 극본과 연출을 같이 가져가는 활동이 주였다. 신명은 여타 다른 극단처럼 연극예술도 했지만 사회·문화 운동을 지향하는 연극을 펼쳤다. 우리 지역이 농촌이 많아서인지는 모르지만 농촌에서 활동을 주로 펼쳤다.
 그의 연극 입문은 특정한 계기보다는 장르적으로 좋아 시작하게 된 경우다. 예술적 역량보다는 자신의 연극적 기량을 사회의 한축을 위해 공헌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지금 연극 쪽을 보면 후배들은 자신 때하고는 다른 듯하다는 전언이다. 일단 예술적 기량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고, 좋은 예술로 감명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전한다.
창인당(왼쪽)과 청암 전경.


 이처럼 드러난 것이 연극배우의 삶이었다면 그에게 감춰진 꿈은 시도 아닌, 소설 창작이었다.
 "연극 배우라기보다는 소설 창작이었죠. 그렇다고 해서 소설가가 돼야 겠다고 강렬하게 매진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연극 배우가 먼저 된 것이죠. 연극 배우가 돼 여러 경험을 쌓았고, 농민 관련 문화운동을 전개했어요. 풍물 전파 혹은 전수를 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이중에는 전교조 선생님을 비롯해 일반 교사, 농민회원, 농촌 청년 등을 대상으로 풍물을 전수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오십 중반을 넘긴 늦깎이로 시단에 데뷔했다. 계간 ‘시와문화’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정식 이름을 올렸다. 등단이 지난해였지 습작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10년 간의 문학을 위한 고뇌의 시간이 있었다. 전원범 전 광주교대 교수 밑에서 시 공부를 해왔던 것이다.
 ‘연극이 시에 영향을 끼친 것이 있느냐’며 궁금해 물었더니 주변에서 자신의 시에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반응이 있다’고 귀띔했다. 아마 연극적 스토리와 호흡이 시에 유야 무야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쯤으로 이해됐다.

 "시 안에 스토리가 있어 읽는 맛이 좋다고들 해요."
 그는 서두르지 않을 심산이다. 등단하면 모두 시집부터 밝히지만 그는 100여편은 창작해놓아야 하는데 70여편 밖에 없어 시집을 내는 것보다 창작하는데 더 집중할 각오다.
 일년 밖에 안돼 등단 전후의 문학 혹은 문단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등단 이후 여러 가지 언급할 게 있죠. 그중 도드라지게 느꼈던 게 문인들의 평균 연령이 생각보다 높다는 점이에요. 후배들 층이 너무 얇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중에 이게 문학적 한계로 작용하지 않을까 해요."
 다시 연극으로 돌아와 무대에 설 생각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소쇄원에서 정신문화 상기를 위해 조선시대 가사문학 성행시기를 재현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지난해에는 가끔 배우로 섰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본격적 배우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답변이다. 지금의 그로부터 거의 연극 무대를 실행하고자 하는 행간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분주한 일상 속 틈틈이 창작은 물론, 독서를 해 나간다. 주제를 정해놓고 읽는 편이 아니라 자신이 활동을 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제시되는 책들을 읽는 데 주력한다. 여기다 물리학 서적도 읽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떤 시를 생각하고 있냐’고 묻자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인터뷰를 마무리지었다.
 "상당히 추상적일 수 있으나, 행간에 숨겨져 있는 의미가 아니라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시’를 창작하고 싶죠. 시간을 정해놓고 창작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쓰여지는 시를 모으고 있는 중이구요. 그리고 훗날 어떤 시인으로 평가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 개의치 않고, 느낌 대로 사유하며 창작을 해나갈 겁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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