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없는 일상 詩로 감성 보듬기

[북 스토리] 이번에는 시집읽기
좀처럼 여유 되찾기 어려운 일상이지만…
마음의 짐 내려놓고 독서삼매경 이룰 수 있을 터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11월 04일(목) 18:16
(2021년 11월호 제102호=글 고선주 기자)(2021년 11월호 제102호=글 고선주 기자)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엊그제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떠든 것 같은데, 벌써 늦가을이다. 어느덧 아
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하기까지 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지친 삶에 끌려다니다 보니 책 한권 마음대로 읽을 수 없을 만큼 여유를 되찾기 어렵다. 좀처럼 여유를 되찾기 어려운 일상이지만 복잡하지 않으면서 무뎌진 감성을 되살릴 수 있는데는 시집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싶다. 이 계절에 시집이야말로 무겁지 않으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독서삼매경을 이룰 수 있을 터다. 최근 출간된 시집들을 정리, 소개한다.

가족·자연·역사…뜨거운 서정의 숨결
백수인 제2시집 ‘더글러스 퍼 널빤지에게’ 출간
조선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한 뒤 고향인 장흥 소재 거처에 머물며 창작을 벌여왔던 백수인 시인이 두번째 시집 ‘더글러스 퍼 널빤지에게’를 푸른사상 시선 147번째권으로 펴냈다. 고향 집이 자리 잡은 전남 장흥에서부터 두만강 건너까지 시인의 시선은 무한하게 펼쳐져 나간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는 물론, 자연과 역사를 노래하는 시편들에서 뜨거운 서정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표제로 쓰인 더글러스 퍼는 일반 주택 현장에서 사용되는 목재로,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며 몸과 생각, 시간을 한꺼번에 누일 개념으로 치환해 구사한 듯 보인다. 널빤지는 판판하고 넓게 편 나뭇조각을 말한다. 자신의 삶에서 비바람을 막아주고,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짓는 가림막같은 의미일 터다. 어쩌면 대학교수라고 하는 사회 리더로서 살아온 그에게 삶의 외풍은 미미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시인의 길로 나선 그에게 시적 외풍은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상처와 외로움으로 그의 심지에 남는 듯하다.
‘가슴에 사무친 멍울/그 멍울 위에 덧씌운 또 하나의 멍울이다//삶의 고갯마루 오를 때 내뱉는 한숨/그 한숨 위에 겹치는 한숨 덩이다//겨우 아물었던 상처가 덧나서 곪아 터진 아픔/그 세월 견뎌낸 흉터다’(‘옹이’ 일부)라거나 ‘세상의 외로움 여기 다 모였네/외로운 사람끼리 등 기대고/작은 마을 이루고 있지만//…중략…//이 투명한 영혼들/한 점 바람결에도/어디로 날아갈지 몰라/은하의 어느 고독한 별나라에 사뿐히 앉을까 몰라’(‘민들레 홀씨’ 일부)라고 노래한다.
이어 ‘감나무 마른 가지 같은 아버지의 한 생애를 양지바른 산 중턱에 묻어두고 터벅터벅 돌아왔다’(‘아버지의 방’ 일부)라고 아버지를 회상한 시인은 ‘아버지의 가지산’과 ‘아버지의 일기장’ 연작, ‘아버지의 손목시계’ 등 사부곡의 감상을 느낄 수 있는 시편과 울란바토르를 비롯해 광동대협곡, 터키, 몽골 설원 등의 해외 여정의 감상을 담은 시편 및 통일을 염원하는 그리운 금강산과 두만강, 5·18을 상기시키는 오월의 분수대 등도 눈에 들어온다.
이번 시집은 제4부로 구성, 59편의 시가 실렸다.

‘자성’ 새긴 역동적 저항성과 서정성 투영
목사 시인 정홍순 제5시집 ‘향단이 생각’ 출간
‘순천만의 목사 시인’으로 불리는 정홍순(희락교회)씨의 다섯번째 시집 ‘향단이 생각’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43번째권으로 출간됐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저항적 주체와의 동일성뿐만 아니라 지향하는 세계와 융합한 서정으로 유려한 저항의 목소리를 담보한다. 근대가 열리면서 함께했던 불행하고도 비극적인 세계사를 배경으로 해 당위적인 궁극의 세계를 향한 저항의 목소리에 천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성의 글쓰기를 지향했다. 자서에서 밝혔듯 한쪽으로 치우친 글을 써 왔음을 고백하고 있다. ‘프라하의 밤’은 그 한쪽을 향하던 시적 촉수를 조정하는 듯 보이는 작품이다.
시인은 ‘…중략…/조선의 역사에/변주할 수 없는 드보르작의 선율이/아리랑, 아리랑 울 수 있느냐/전쟁 없는 역사는 역사도 아니다/상처 받아보지 않은 모든 것은/봄이 가기 전 떠났다/칭칭 감아 피는 등꽃 프라하/우리에게도 봄이 있다/밤새 출렁이는 프라하/업어치기 한판 걸어 내일은/꽃으로 주저앉히고 말없이 빛나는/역사 앞으로 떠나야겠다’고 노래한다.
시 ‘카타콤’에서는 자성적 삶이 촉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겨울 상주처럼 물집 서린 발바닥 집어넣었다 생의 조각들 조심히 디뎌가며 이생의 안부 전했다 더듬더듬 흙 속에 필사한 몸들의 방식 읽고 방종한 내 삶을 반성했다/…중략…//저승의 글 물고 날아가는 저 하늘에 머리터럭 한 올 묶어 휘갈겨 몇 자 쓰고 죽어야겠다’고 읊는다.
시인이 목회자로 초기 기독교 시대의 비밀 지하 묘지를 의미하는 ‘카타콤’을 통해 갈수록 물질만능의 혼탁한 세태와 그 혼탁한 세태를 직시해야 하는, 씁쓸한 현실고 마주해야 하는 고통의 이면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 시집은 제4부로 구성, 58편의 시편이 수록됐다.

혁신 갈구 현시대 조망…자연의 서정 다시 읽기
김진수 시인 첫 시조집 ‘아, 조국’ 펴내
전남 여수 출생 김진수 시인(전남대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첫 시조집 ‘아, 조국’을 시와사람 서정시선 74번째권으로 최근 펴냈다.
그의 시편들은 세상을 뒤로 한 채 개별적 삶의 안위만을 쓰다듬지 않는다. 세상에의 혁신을 갈구하는 성품답게 시조 한 가운데에는 시인이 생각하는 혁신의 세상에 대한 희망이 부채살처럼 퍼져 있다. 혹자는 뉴스를 문학적으로 재해석 읽은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모두 이런데서 기인한다. 시 ‘단두대’에서 시인은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에게 있으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삼척동자도 알지만/맥없이 궁금해지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라고 노래한다.
또 현대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역사를 빠뜨리지 않고 다룬다. 시 ‘하얀 민들레’에서는 ‘긴 군홧발 소리에 무참히도 짓밟힌/오월은 여전히 납작한 황토무덤/망월동 그 허름한 비석 아래/그래도 꼿꼿한,/그래도 꼿꼿한,’이라고 읊는다.
그러면서도 개별적 경험의 일상들과 사물에의 관찰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시 ‘양파’에서 ‘겹겹이 둘러싸인 간절한 사람끼리/부대끼다 매워지고 눈물로 응어리진/그 세월로 살아온 이야기 동그랗게 보입니다’라거나 시 ‘수박씨’에서 ‘속살 한 입 베어 물다 맹탕에 젖은 가슴/씹기도 삼키기도 어정쩡한 입안에서/까맣게 맴도는 이것/내 생의 앙금 같은’이라고 시화한다.
이번 시집은 거대한 역사와 개별적 삶을 오가며 시적 진폭을 이루고 있다.
이밖에 ‘낯 푸른 겨울 바다 오동동 오동동동/성상으로 다다른 섬 단걸음에 환한 이 길’(시 ‘오동도 가는 길’)처럼 자연에의 서정 또한 잊지 않고 다뤘다.
이번 시집은 ‘바람의 횡포’를 비롯해 ‘로드 킬’, ‘겨울나무’, ‘무진교를 건너며’ 등 4부로 구성, 70편의 작품이 실렸다.

사물의 본성과 삶의 근원 들여다보기
한영희 첫 번째 시집 ‘풀이라서 다행이다’ 출간
전남 영암 출생 한영희 시인의 첫 번째 시집 ‘풀이라서 다행이다’가 푸른사상 시선 149번째 권으로 출간됐다.
시인은 삶의 언저리에 있는 작은 존재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는다. 광주의 오월을 살아온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도 기꺼이 품는다. 시인의 따스한 시선과 깊은 세계 인식은 생의 근원과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머묾으로 간직했던 사유를 나아감의 화두로 제시하는 동시에, 대체로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사물들을 조응한다. 작고 낮은 곳의 사물과 그들이 뱉는 목소리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기까지 시인이 디딘 삶의 영역은 평면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풀이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 시인이 보여준 시편들은 삶의 언저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일상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시인은 그것들을 통해 그만의 깊이를 구축한다. 앞서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이라고 언급했던데는 쉽게 달아오르지 않으면서 차분한 관찰로 사물의 본성과 삶의 근원에 가닿고자 하기 때문이다.
‘절뚝거리며 걷는 남자/그가 가까이 왔을 때/등 뒤로 따라오는 슬픈 눈을 보았다’(‘햇볕이 들어온 날’)라거나 ‘뒷짐 지고 지나던 바람이 휘파람 같은 봄을 떨어뜨리고 간다’
(‘말랑말랑한 감정’), 그리고 ‘조등처럼/먼지는/소리없이 흘러간다//문틈을 스쳐지나고/예민한 시간은 빈자리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뿌옇게 부풀어 오르는 새벽 어스름/머뭇거리던 시간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먼지의 시간’)고 노래한다.
시인은 작가의 말을 통해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살아도 하나가 빠지면 텅 빈 계절 같은 여기 나는 그들과 함께 오늘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고 간단한 소감을 언급했다.
이번 시집에는 제4부로 구성, 일상 틈틈이 창작해온 52편의 시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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