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 개방 자연과 합일정신 드러나

[문화재 다시보기] 완도 보길도 세연정
인공연못 중앙에 섬 조성 정자 건립
‘어부사시사’ 등 윤선도 시문학 산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2년 10월 05일(수) 17:50
(2022년 7월 제110호=여균수 기자)완도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시인인 윤선도가 보길도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병자호란이 끝날 무렵이다.
해남에 있던 윤선도는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실의에 찬 그에게 서인들로부터 ‘남한산성에서 임금이 고생하고 있을 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비난까지 들렸다.
그는 세상을 다시 보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고 제주도를 향해 떠났다. 그러나 풍랑이 거칠어 보길도에 오게 된 윤선도는 이 섬의 아름다운 경치와 아늑한 분위기에 매혹돼 제주행을 포기하고 이 섬에 머물게 됐다고 한다.
그는 정착한 곳 일대를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 정치 싸움으로 찌들고 멍든 마음을 이곳에서 풍류로 달랬다. 부용동은 주변의 산자락이 연꽃잎이 피어나듯 둘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집을 세워 ‘곡수당’이라 하고, 그 건너 산중턱 위에 집을 지어 ‘동천석실’이라고 불렀다.
부용동의 핵심공간은 세연정(명승 제34호)이다. 윤선도가 51세 때부터 보길도에 13년 간 머무르는 동안 ‘오우가’나 ‘어부사시사’와 같은 훌륭한 시가문학을 이뤄낸 곳이다.
윤선도는 바위틈에서 솟는 물을 막아 연못(세연지)을 만들고 가운데에는 섬을 조성해 큰 바위와 소나무들을 옮겨놓고 세연정을 지었다.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해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전시실에 게재된 세연정의 건축적 의미를 옮겨본다.
‘개울의 보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계담과 방지 사이에 판석보를 막아 조성된 세연지는 물과 바위 및 송죽과 정자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세연지 중앙에 앉힌 세연정은 일반 누각과 달리,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사방으로 창호와 마루를 둘렸다. 창호는 분합문으로 문을 모두 들어 걸면 사방이 개방된 정자가 돼 주변의 풍경을 병풍처럼 두르게 된다. 세연정 앞 동대와 서대, 서쪽 산 중턱의 옥소대까지 끌어들여 거대하고 입체적인 무대를 만들어낸 고산의 섬세하고 기발한 조원 기법이 드러나는 곳이다. 고산은 이곳에서 예악(禮樂)으로 성정을 다스리며 자연과의 합일에 이르고자 했다.
세연정을 중심으로 한 부용동 원림은 담양의 소쇄원,강진의 백운동 원림과 함께 조선 3대 정원으로 꼽힌다.
4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세연정의 운치는 하나도 변함이 없다. 정자 앞 노송은 우월한 자태를 더욱 뽐내고 있고, 연못의 거대한 암석들 역시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연못의 수초가 너무 왕성하게 번져 물빛을 가리는 게 아쉬웠다. 수초를 제거한다면 ‘물 위에 뜬’ 세연정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윤선도는 보길도 생활 후에도 몇 차례 벼슬길로 나간 적이 있으나 금세 당파 싸움에 휘말렸고 그럴 때면 다시 보길도에 내려와 지냈는데, 그 기간이 19년이나 됐다고 한다.
윤선도가 사랑한 보길도와 세연정. 주말 여행지를 고민하는 분에게 강추한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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