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개국공신 신숭겸 장군 유적지

[문화재 다시보기] 곡성 용산재
구룡문 유허비 유허단 비각 동상 등 조성
오곡면엔 장군 기리는 덕양사액서원 건립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01월 18일(수) 18:24
(2022 10월 113호=여균수 기자))용산재는 곡성군 목사동면과 석곡면 갈림길 인근 보성강(대황강)을 건너 산기슭을 타고 들어가다 보면 산으로 둘러 쌓인 구룡마을이 나타나는데, 이 동네 입구에 위치해 있다.
주암호에서 흘러내려온 보성강은 이곳 곡성에 이르러 대황강이란 이름으로 바뀐다. 대황강 물길은 곡성 압록에서 섬진강 본류와 만나 구례와 광양을 거쳐 남해로 흐른다.
곡성의 옛지도에 이곳 강을 대황천(大荒川)으로 표시하고 있듯 예로부터 곡성에서는 이 강을 보성강 대신 대황강으로 불러오고 있다. 극락강, 황룡강과 함께 영산강을 이루는 지석강이 나주 남평 앞에 이르러서는 드들강으로 불리는 것과 같다.
전남도 기념물 제56호인 용산재는 평산 신씨 시조이며 고려 개국공신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유적이다. 목사동면 구룡리는 신숭겸이 태어난 고향이다.
신숭겸(미상~927년)은 어려서부터 몸집이 장대하고 무예가 뛰어나 궁예 말년에 홍유, 배현경, 복지겸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이 고려를 개국시키도록 도운 일등공신이다.
태조 왕건 즉위 후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후백제와의 긴장관계는 견훤이 신라를 공격함으로써 악화된다. 927년 견훤이 고울부를 습격하고, 신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이는 등 압박을 가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조 왕건은 크게 분개해 사신을 신라에 보내 조문하는 동시에 친히 5000의 군사를 거느리고 대구의 공산에서 견훤을 맞아 싸우게 된다. 그러나 후백제군에게 포위돼 왕건이 위급하게 되자, 신숭겸은 왕건의 옷과 바꿔 입고 왕건을 먼저 피신시킨 후 후백제군과 마지막까지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다.
신숭겸의 살신성인으로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 태조는 신숭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며 장절(壯節)이란 시호를 내렸다.
신숭겸을 모시는 용산재는 대문이라 할 수 있는 구룡문을 지나 큰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우람하게 서있다. 정면 5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1897년에는 용산재에 신숭겸의 유허비를 세웠으며, 1929년에 신숭겸의 태를 묻었다는 곳에 단을 모은 용산단을 세우기도 했다.
용산재 유적지에는 제사를 모시는 용산재를 비롯 구룡문, 유허비, 유허단, 비각이 있으며 해마다 9월 중에 제사를 지낸다. 유적지 입구에 신숭겸 장군의 동상이 조성돼 있다.
한편 곡성군 오곡면에는 신숭겸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덕양서원이 있다. 1589년(선조 22)에 창건됐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모두 불타고 사우와 위패만 남았으나 1603년 전라도 관찰사 한준겸의 주선으로 중수됐다.
제사를 지내는 덕양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에 팔작지붕을 한 목조 건물이다. 낮은 기단 위에 네모난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3량가이다.
1695년에 덕양이란 이름으로 사액(조선시대 국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고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을 받아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 철폐됐다가 1934년 지방 유림들이 나서서 다시 복원시켰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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