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비극, 작품으로 기억하길 바랐죠"

[화제의 인물]극단 ‘밝은밤’ 연출 임채빈
희생자 사연 각색 추모극 ‘덩달아 무너진 세상’ 선보여
지난해 초 극단 창단…평균 연령 20대 초반 13명 집결
청년문제 다룬 ‘틈새’ 공연 예정…“지역예술 부흥 희망”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08월 30일(수) 17:46
(2023 7월 122호=글 김민빈 기자) “학동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사건이죠. 광주에 사는 시민이자 예술인으로서 지역에서 일어난 비극을 많은 사람들에게 더 알리고,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지난 6월9일부터 10일까지 동구 미로센터 극장2에서 3회차에 걸쳐 학동 참사 추모극 ‘덩달아 무너진 세상’을 선보인 극단 밝은밤에서 극본과 연출을 맡고 있는 임채빈씨는 이처럼 소감을 밝혔다.
‘덩달아 무너진 세상’은 지난 2021년 광주 동구 학동에서 철거 중인 빌딩이 붕괴되면서 시내버스를 덮친 사고를 모티브로, 희생자들의 실제 사연을 각색해 다룬 작품이다. 고등학생과 중년 여인, 70대 할아버지 등 실제 피해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을 구성했다.
극은 병원 중환자실을 배경으로 7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한다. 병원에 실려 온 피해자 6명과 그들을 지켜보는 의사 1명이다. 독특한 설정은 숨을 거두고 영혼이 된 피해자들이 죽기 전 기억을 모두 잊어버린 상태라는 점이다. 이들은 병원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이 죽게 된 원인을 찾아가다 마침내 진실을 깨닫게 된다.
임채빈씨는 장진 감독의 희곡 ‘아름다운 사인’에서 영감을 받아 극본을 썼다. 안치실에 들어온 시체 7구가 서로 죽은 이유를 털어놓으며 삶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학동 참사로 병원에 실려 온 피해자들이 죽기 직전 자유롭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상상해봤어요. 본인이 왜 죽게 됐는지 기억이 안나는 상태에서 사라진 기억들의 퍼즐을 맞추며 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예요.”
이 작품은 지난해 1월 조선대 극예술연구회(조대극회)가 처음 무대에 올린 바 있다. 임씨는 조대극회에서 활동하는 한편, 동료들과 청년극회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만들어오다 뜻을 모아 극단 밝은밤을 설립, 지난해 초 정식으로 단체를 등록했다.
극단 밝은밤이라는 이름으로 재연한 이번 작품은 참사 2주기를 맞아 추모의 뜻으로 기획됐다. 실제 사고를 모티브로 한 만큼 공연을 올리기에 앞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다고 한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을까, 자칫 사고를 폄훼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단원들은 공연 당일 리허설 중 공연장을 찾아온 한 유가족과 대화를 나눴고, 그로부터 힘과 용기를 얻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연극 ‘덩달아 무너진 세상’ 공연 모습

극 중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의사는 영혼을 볼 수 있으며 희생자들이 죽은 이유를 알면서도 우유부단하게 진실을 밝히는 것을 미룬다. 임채빈씨는 의사 캐릭터의 대사를 통해 참사의 비극성을 더 강조하고자 했다.
“의사가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많은 게 바뀔 겁니다’라는 대사를 해요. 죽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넬 수 있는 존재를 의사로 설정했죠. 이 캐릭터를 통해 학동 참사가 얼마나 무겁고 비극적인 사건이었으며, 불법 행위들이 많았는지를 관객들에게 알리고, 기억해야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의 단면만이 아닌 뒷편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각종 불법 행위 등 일어나지 않아야 할 여러 사건들이 모여 만들어진 참사라는 것. 그 연결고리가 모여 얼마나 비극적인 사건을 낳았는지 짚어내고자 했다.
작품의 가제는 ‘너무나 평범했던 그날의 이야기’였다. 극 중 운림 54번 버스를 타고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보내는 희생자들의 모습은 사고 후 모습과 겹쳐지며 관객들에게 사건의 비극성과 함께 그들의 삶이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게 한다.
공연을 보고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사건 안에 얽히고설킨 불법적인 정황들을 새롭게 알게 돼 분하고 원통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공연을 보고 가는 길에 소감을 적을 수 있도록 추모 부스를 마련했는데, 많은 관객들이 자필로 글을 남겨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극단 밝은밤은 평균 연령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 13명으로 구성돼있다. 대표 최혜민과 김예진 박지원 정수린 이태영 김주영 김진우 유현지 배우를 포함해 스텝 등 예술을 꿈꾸는 동년배의 청년들이다. 예술감독은 한지성 커스텀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맡아 연습실 제공과 공연 피드백 등의 도움을 주고 있다. 한 대표는 임채빈씨의 고등학교 연극동아리 당시 선생님으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극단은 정식 창단 후 첫 공연으로 지난해 7월 ‘기울어진 시선’을 선보였다. 시골마을에 이사 온 수상한 남자를 마을 사람들이 기울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지난 7월에는 창작극 ‘틈새’를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야외공연 ‘밤이 들어주는 이야기’를 마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생각이나 고민을 적는 부스를 운영했을 때 얻은 내용들로부터 만든 이야기다. 다양한 청년 캐릭터를 통해 청년 문제와 사회 이슈를 담아냈다.
'덩달아 무너진 세상' 관객들이 추모부스에 남긴 글

사회적인 작품 뿐 아니라 밝고 가벼운 작품도 준비 중이다. 오는 겨울에는 뮤지컬 느낌의 로맨틱코미디를 구상하고 있다. 충장축제나 광주프린지페스티벌 무대에도 지원해 더 많은 시민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창작 작품만 올리겠다는 게 저희 극단의 목표이자 색깔이에요. 시간이 많이 들고 인력도 부족해 쉽지는 않지만, 요새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에 그에 맞춰 트렌디한 작품을 만들고 싶구요. 다양한 연출을 시도하기 위해서도 창작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임채빈씨는 극작과 연출 공부를 꾸준히 하며 지역에서 동료들과 계속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지역에서 예술을 꿈꾸는 게 쉽지는 않지만, 꾸준히 배우고 도전하며 지역에서도 충분히 멋진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수도권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지역 예술을 살리고 이곳에서도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커요. 극단 밝은밤은 이십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이 만든 극단이어서 나이를 들으면 다들 놀라곤 하죠. 저희의 바람이 있다면 지역예술이 부흥하고 더 많은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수도권에 있는 청년들이 지역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게 되지 않을까요.”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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