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명신 윤효손 공덕 기려

[문화재 다시보기]윤문효공신도비
거북·연꽃·구름문양 등 섬세한 표현 일품
예술·역사성 가치 신도비 중 유일한 보물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3년 10월 05일(목) 15:38
(2023 9월 124호=글 여균수 기자) 구례군 산동면 이평리에는 조선 초기 명신이였던 추계 윤효손(1431~1503)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와 방산서원이 위치해 있다.
윤문효공신도비(보물 제584호)는 방산서원 뒤편 윤효손의 묘소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문효는 시효(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 그 공덕을 찬양하여 붙인 이름)이다.
신도비는 죽은 사람의 묘소로 가는 길목이나 묘소 앞에 세워 고인의 행적이나 사적을 기리는 비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정2품 이상의 관직에 있는 사람 중 위업을 세웠거나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모범이 될 때에 신도비를 세워 기리도록 했다.
윤효손은 세종 13년 구례군 용방면에서 태어났다. 20살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23세에 문과에 올라 이후 단종 때에 형조판서, 경상도 관찰사를 시작으로 우참찬, 좌참찬을 역임했다. 성종 때에는 ‘경국대전’과 ‘오례의주’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연산군 9년에 세상을 떠났다.
비는 그가 죽은 지 16년이 지난 1519년(중종 14)에 세운 것으로, 높이 1.2m의 직사각형으로 된 지대석을 지면에서 상당히 높게 앉히고 각면에는 구름과 용 무늬를 장식했다.
지대석 위에는 다시 얇게 앙련(仰蓮·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 좌대석을 놓고, 그 위에 거북을 놓았다. 거북의 앞발은 앞쪽으로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나 앞발을 뒤로 구부려 붙여 발톱을 앙련 좌대석에 붙인 점이 특이하다.
비석은 대리석이며 거북의 등 상면 중앙에 다시 복련(覆蓮·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 좌대석을 조각해 그 위로 세웠다. 비문에는 윤효손의 평생업적과 자손들의 계보 및 그의 충효와 인품을 기리는 글들이 적혀 있다.
머릿돌에 새겨진 용의 조각은 사실성이 뛰어나며, 꼭대기에는 둥근 돌을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이처럼 윤문효공신도비는 규모가 크고 그 조각이 매우 섬세해 예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그 가치가 뛰어나 신도비로는 유일하게 국가문화재(보물)로 지정됐다.
윤효손을 배향하는 방산서원은 1702년(숙종 28년)에 전라도 사림의 공의에 따라 세운 서원이다.
이후 1716년에 대제학 및 영의정인 백헌 이경석과 한성좌윤 증이조판서 성만 최연을, 1740년에 고려조의 국자사업 및 서경유수 남원백 벽송 윤위를 주향으로, 1760년에는 사헌부 정언 삼계 최언수를 추가로 배향했다.
하지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것을 1985년 지역유림의 발의로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방산서원 건축물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 팔작지붕의 사우인 덕모사와 정면 4칸·측면 3칸 규모 팔작지붕의 재실인 추모재, 그리고 정면 5칸·측면 2칸 팔작지붕의 강당, 내삼문·외삼문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되고 소담한 풍경을 연출해 방문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서원이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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