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蓮그림에 천착… 상상력 투영된 작업 매진" 서양화가 양원철 고선주 기자 사진=최기남 기자 |
| 2017년 07월 26일(수) 1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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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애초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가고자 했다. 하지만 그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미술이었다. 미술을 하겠다고 할 때 부모는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좋게 보지도 않았다.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 뒤늦게 진학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10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만큼 본격적인 미술창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스스로 미술을 늦게 시작했다고 말한다. 대학을 진학하기 위한 공부가 평생 자신을 견인하는 단초가 됐다. 그는 정확히 20대 후반 미술에 입문했다. 1971년 황영성 화실에 적을 두고 미술공부를 한 끝에 미술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에게 본격적인 미술입문의 시기가 1971년인 이유다. 이렇게 해서 미술과 본격 인연을 맺은 그는 연 그림에 꽂혀 현재까지 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가 연을 그리게 된데는 카메라를 들고 혼자 돌아다디던 무렵 비행장 근처 연꽃밭이 있었는데 시궁창 물에 피어오른 연꽃이 어찌나 고상하고 우아하던지 연의 매력에 빠져들면서다. 더욱이 그안에 오리새끼들이 평화롭게 물을 지치고 있는 광경과 연 그림자 및 물 그림자가 어우러져 있는 풍경에 매료됐다. 그 연을 보면서 그가 오늘날 불리는 ‘연의 화가’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그는 연을 바라볼 때 사실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의인화시켜 관망했다. "추잡한 사회에서 꿋꿋하게 물들지 않고 선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 연 그림에 천착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이 연 그림을 제 미술작업 사상 처음으로 공모전 중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출품했는데 입선에 들었고, 그 이듬해 출품했더니 다시 입선해 2년 연속 입상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죠."
그는 모든 공모전에 연 그림만 출품했다. 물론 처음에는 풍경도 그의 단골 소재였다. 풍경이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연이 지저분한 수중환경에서 자라면서도 자기존재와 감성을 발현하는 것처럼 사람도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것이다. 사실만 그리다 보니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예술가는 상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특히 연을 그리면서 지난해부터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이는 변화의 내용들이다. 분명 그의 회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2년 전과 완전 다르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사고의 정립으로부터 시작됐다. 존재에 대한 근원적 희원에의 갈망이 달라진 점이 변화를 재촉한 이유로 보였다.
"존재에 있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어요. 진짜 저를 잘 보려면 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아야 합니다. 나를 제대로 보려면 미래도 봐야 하는 것처럼 연 그림에서 연의 미래, 보이지 않는 제3차원의 세계를 담아내야 하죠. 지워지지 않은 영감을 통해 생명력이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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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못지 않게 자신의 회화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대목은 ‘그리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가 변화 전에는 보이는 세계와 그리는 것에 천착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만들어지는 것의 본질적인 내용은 화면에 풍경을 그대로 옮기기 보다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삶의 이야기를 투영하며 재해석해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만들어지는 것은 그리는 것의 다음 단계이자 작업적 경륜이 쌓여야만 가능한 단계로 이해됐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보이는 세계를 사실적 기법으로 그리던 때와 현재의 작업은 전혀 다른 결을 이룬다. 그는 추상을 가미했다고 단출한 대답을 내놓았다.
"보이지 않는 제3차원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어떤 존재를 화폭에 구현한다는 의미는 단순하게 그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야 하는 문제죠.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자기생각이 투영돼야 합니다. 그림은 만들어지기 때문에 저는 영원한 완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면 또 고치고 싶어지고 그래요."
그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정의는 추상에 가닿는다. 33년 동안 쉬지 않고 연 그림만 그려온 시간들이 오늘 그만의 추상을 이루게 한 저변의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료화가들 중 연을 소재로 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들과 차별화를 어떻게 꾀하느냐고 물었다. 극명한 답이 돌아왔다. "제 그림을 보고 누구나 ‘저것은 양원철 화가 그림이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담보된 연의 세계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미래가 투영돼야 하구요. 상상력으로 미래를 만들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작품 작업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변형된 연을 그리고 있다는 그는 어떻게 하면 좀더 상상력이 가미된 연 그림을 할 수 있을까 고심 중이다. 그는 이렇게 할 때 연 그림이 좀더 항구한 생명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 역시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작업 꿈은 영원한 생명성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 오래 변치 않는 작품을 하는 것이다.
그는 1978년 전남 진도여중·고 교사로부터 시작해 함평 나산중학교 교사로 퇴임하기까지 38년 동안 교직에 종사했다.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작업을 하느라 분주한 일상을 보내야 했다. 2015년 2월 교단을 떠난 후 그는 작업에 한층 더 집중력있게 매진하며 보내고 있다. 오랜 교직 생활의 영향이었는지는 모르나 그는 이곳 작업실에 오전 8시 입실해 저녁 11시에 귀가할 정도로 계획적인 작업을 펼치고 있다.
작가는 올해 개인전 대신 올 가을께 한울회의 부산교류전 에 참여하고 청동회와 교원미전 등에 출품하는 한편, 오는 7월19일부터 23일까지 일본 가고시마 시립미술관에서 열릴 ‘광주·가고시마 교류전’에 출품, 직접 현지 오픈식에 다녀올 예정이다.
서양화가 양원철은
△전남 해남 출생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졸업 △개인전 10회 △단체전 200여회 △일본 동경 ‘96한국미술의 오늘’전 △스페인 ‘96한국미술, 오늘의 현장’전 △광주비엔날레 기념 한국중진작가 초대전 △부산 형맥회·광주 청동회 연립전 △세계 열린미술 최우수작가초대전 △대한민국 6대 광역시 사생회 교류전 △미국 텍사스주 히달고시 한국의 날 기념 청조회 임원전 △광주시미술대전·무등미술대전 초대작가 △광주시전·전남도전·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미협 회원 △청조회 광주지부장 △한울회원 △청동회원.

2026.10.23 (금) 2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