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가고자 하는 이의 몫 아닐까

문득여행(길 위에 머물다)
세상에는 온갖 길 있지만 기쁨과 슬픔·희망과 절망 공존
같은 길 처한 상황 따라 다른 의미…삶처럼 ‘근육’ 키워가
사방 막혔지만 가뿐한 마음으로 뚫으며 언젠가 끝에 도착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1년 09월 28일(화) 17:03
(2021년 10월호 제101호=글 고선주 기자)

세상에는 온갖 길이 있다. 우리네 삶처럼 기쁨의 길이 있고, 슬픔의 길이 있다. 같은 길이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길의 얼굴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부모가 지나간 길은 이별의 길이었을테고,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등진 형제자매가 지나간 길 역시 가장 큰 슬픔의 길이었을 것이다.
길은 황톳길과 흙길에서부터 시멘트길, 아스팔트길, 산길, 데크 길, 오솔길, 기찻길 등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길은 사람의 신체와도 같다. 넓은 길이 있는가 하면, 아주 얍실한 길이 있다. 끊어지지 않은 길이 있는가 하면, 골목 속으로 깊이 숨어버린 길과 더이상 갈 수 없는 길이 있다.
똑같은 길이지만 일하러 갈때는 발걸음이 무겁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는 한없이 가뿐한 길이 펼쳐져 있다. 같은 길이라고 해도 걷는 자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한다.
길은 사람의 삶과 늘 함께 한다. 길을 통해 이 세상에도, 저 세상에도 가야 해서다. 또 똑같은 길이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와 마지막 이별을 고하러 갈때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어쩌면 길은 소리없이 사람이 울면 속으로 따라 울고, 웃으면 속으로 따라서 웃는 것이 아닐까.
분주한 일상 속 가뿐한 발걸음을 뗄 수 있는 길은 광주천이다. 천변 둔치로 놓여 있는 길 말이다. 자전거도로라고 하지만 보행로 같은 곳으로 많은 시민들이 오간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지친 시민들이 잠시나마 건강을 챙기며 번잡한 일상을 잠시 달랠 수 있다.
꼭 광주천변 같은 길이 아니라면 아파트 단지 내 여러 갈래의 길들을 거니는 재미 또한 작지 않다. 일상의 무게가 스며있는 길은 달갑지는 않지만 반드시 오갈 수 밖에 없어 피할 수는 없다. 집이 답답할 때 나와 걸어보자. 배배 꼬여 있는 심사가 풀릴 것이다.
길은 평지에만 있지는 않다. 단조롭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계단을 타며 존재감을 뽐낸다. 한발 한발 밟고 올라서면 윗길, 아랫길로 제 갈길을 간다.
어떤 녀석은 아예 산을 타고 넘어가는 녀석도 있다. 힘이 좋은 것 아닐까 싶다. 구불 구불 가는 모습이 마치 뱀 같다. 강을 건너는 길도, 바다로 뻗은 길도 있다. 여행은 새로운 길을 만나는 일일 것이다. 그 새로운 길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수시로 떠난다. 그리고 늘 떠나는 것을 꿈꾼다.
언젠가 업그레이드 안된 내비게이션을 사용했다. 그때의 이야기다. 경험치고는 다시 안 하고픈 기억이다. 길이 없다면 내비게이션은 쓸모없을 것이다. 한번은 거제도에 갔었다. 거제도에서 창선도로 넘어갔다. 잠시 들른 것이다. 창선도 끝자락에 도착했는데 내비게이션이 계속 앞으로 가라고 안내했다. 비스듬한, 야트막한 언덕이라면 언덕인 곳이고 그 너머가 바다인데 앞으로 가라고 하니, 바다로 빠져 죽으라는 소리일까. 길은 끊어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물리적 길이 끊어져 없기도 하지만, 삶의 위기에서 헤쳐나갈 방도가 없을 때도 전혀 다른 길이 없다고 한다. 코너에 몰려버린 삶은 새로운 길을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 이런 점을 보면 길은 영락없이 우리네 삶과 판박이가 아닐 수 없다.
또 한번은 산길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헉헉 거리며 무등산 중봉 중머리재에 올랐을 무렵이다. 다녀와서 친구 녀석 더러 산에 갔다 왔다고 했더니 그는 다시 내려 올 거면서 왜 올라가는지 모르겠다며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었다. 산길은 봉우리까지 놓여져 있지만 봉우리에서 길이 끝나는 게 아니고 그 너머로 계속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등산은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오는 일이어서 힘듦만을 생각한 것이다.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가파른 산길을 수없이 올라야 한다. 삶 역시 정상에 오르려면 힘들게 길을 가야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온갖 사연을 품은 길들이 있다. 일상에는 셀 수 없는 길들이 동맥과 정맥처럼 뻗어 있다. 길은 막힌 세상을 뚫어주고, 이어준다.
길은 물리적 공간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꽉 막힌 삶의 방도를 의미한다. 세상 사람이 가고자하면 못 갈리 없는 게 길이다. 어떤 이는 막힌 길을 뚫고 목표지점에 기어이 도착하고, 또 어떤 이는 길 없다고 절망에 빠진다.
그래서 길은 희망이자 절망이다. 이 희망과 절망이 있기에 길 위에 서 보는 것이다. 가다가 희망을 만나고, 절망을 만난다. 때로는 희망이 되거나 절망이 되기도 한다.
삶의 향기를 내뿜는 사람은 길 하나 거뜬히 헤쳐 왔을 것이다. 길은 막힌 삶을 헤쳐나가려는 사람에 기꺼이 내어준다. 앞서 말했듯 길은 우리네 삶을 꽤 닮아 있다.
시인 박노해는 동그란 길을 노래했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절정의 시간은 짧다/최악의 시간도 짧다//천국의 기쁨도 짧다/지옥의 고통도 짧다//긴 호흡으로 보면/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그러니 담대하라/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시인은 ‘동그란 길로 가다’를 통해 삶의 길을 설파했다. 모두 모난 삶과 모난 길에 꽤나 익숙해 있다. 그러나 둥근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 자만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길은 꼭 삶의 희로애락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살아내느라 담대해진 길에도 근육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우쳤다. 길들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다. 고생 고생해서 뻗어 나가는 길의 근육은 대형 트럭이 짓밟고 지나가도 끄떡없다. 그렇게 버팅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은 무수히 많은, 이런 길들과 마주한다. 늘 길 앞에서 선택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났다.
가다 막히면 돌아서 가고, 발이 쑥쑥 빠지면 기어이 한발 한발 옮겨 나가야 한다. 사방 막혔지만 그것을 뚫으며 길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다. 가야 할 길을 아는 이는 행복하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보다는 하지만 모두 그 길을 알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가보는 것 아닐까.
가다보면 언젠가 끝에 도착할 거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가뿐한 마음으로 내일도 그 길 위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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