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골목 골목 과거·현재 살아 ‘꿈틀'

[문득여행] 대구관광협회와 함께 하는 新실크로드
(上)대구 원도심‘골목 이야기’

‘진골목’ 등 개성 강한 1000여 골목 실핏줄로 연결
중구 ‘근대路의 여행’ 5코스 전국 명소로 자리매김
수제화 골목·이상화 고택·청라언덕 등 방문객 인기

박사라 기자
2018년 01월 02일(화) 14:55
대구는 ‘골목’의 도시이다. 원도심을 중심으로 약전골목, 진골목, 늑대골목, 수제화 골목, 근대문화골목 등 제각각 개성이 넘치는 골목들이 1000개가 넘는다.

신기한 것은 이 길들이 실핏줄처럼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 이들 중 대구를 넘어 대한민국 명소로 자리 잡고 있는 근대문화골목을 걸어보기로 했다. 근현대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진 곳으로 여행객들 사이에서 ‘걷고 싶은 길’로 입소문 나 있기 때문이다.

대구 관광협회의 도움으로 문화관광해설사 한 분을 소개받았다. 지난 7일 오후 2시 대구 근대문학관 앞에 도착, 조영수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로 유서 깊은 골목 투어에 나섰다.

근대문화골목은 대구 중구의 골목문화 탐방로인 ‘근대路의 여행’ 5코스 중 2코스에 해당한다. 2코스 투어는 청라언덕을 시작으로 3·1만세 운동길을 거쳐 계산성당, 이상화·서상돈 고택, 뽕나무 골목, 약전골목, 진골목에 이르는 1.64㎞의 길을 말한다.

본격적인 투어에 앞서 한국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구 출신 문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문을 연 ‘향토문화관’과 ‘대구문학관’에 들렸다.

대구는 익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이상화, ‘운수 좋은 날’의 현진건, 감각 시의 지평을 연 이장희까지 샛별처럼 빛나는 문인들을 배출한 문학도시로 알려져있다.

조 해설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대구는 전쟁 때문에 문학과 예술이 풍요로워졌다"고 말했다.
대구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안전한 피난처였다. 당시 인구는 27만명. 피난민은 그 두 배인 47만명이었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문인, 예술가, 영화감독들이 있었을 터. 이들이 당시 ‘살롱’ 역할을 한 향촌동 일대 다방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친 게 대구가 ‘문인의 도시’가 된 연유이다.

그러나 더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대구에 몇 년 전까지 ‘문학관’이 단 한 곳도 없었다는 것이다. 조 해설사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재밌는 설명이 이어진다. 훌륭한 문인이 한둘이 아니어서 어느 특정 인물에게만 문학관을 지어 줄 수 없었다는 것. 그래서 내린 결론은 모든 문인·예술가들을 한데 모아 기념할 수 있는 문학관을 짓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지난 2014년 옛 한국상업은행 대구지점을 개보수한 건물에 1·2층에는 1960년대까지 지역 최고의 상업 지구였던 향촌동의 모습을 재연한 향촌문화관을 조성하고, 3·4층에는 대구 문인들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대구문학관이 설립되게 됐다.

대구문학관이 위치한 향촌동 거리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반긴다. 그런데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국제 카바레’ 등의 간판 불빛 사이로 중절모를 쓴 멋진 중견 신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것이다. 1970년대 이 일대를 주름잡았던 지금의 60~70대들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의 주인공이라는 것. 향촌동의 매력이다.

심지어 이 거리에는 65세 이상만 입장할 수 있는 ‘그레이스 실버 영화관’이 있으며, 주머니가 가벼운 시니어를 위해 거리의 식당들 가격도 참 착하다. 보통 국수, 국밥 등이 2000~3000원 정도이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노인들은 노인대로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화 민주주의’가 아닐까 싶다.

이어 조 해설사와 향촌문화관에서부터 경상감영공원 배면의 끄트머리 네거리까지를 탐사했다. 이 골목은 너비는 5m 남짓, 길이는 300여m로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들어선 이곳이 전국에서 유일한 신발 거리인 ‘수제화 골목’이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분홍신’, ‘종로제화’ 등 길을 걷다 만난 가게들은 최하 경력이 30년이 넘은 제화 장인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기성화보다는 가격대가 다소 높지만 단골손님과 소통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조 해설사는 "다음 ‘길’은 1970년대 대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며 기대하라"고 귀뜸한다. 도착지에 다다를 때쯤 나에게 ‘짠’하며 양손을 펼친 곳은 경상도 말로 ‘긴 골목’이라는 뜻의 ‘진골목’이다. 이 골목의 명물은 ‘미도다방’인데 시대극에서나 봤을 법한 옛날 찻집이다. 입구로 들어가는 데 ‘과거의 문’으로 들어서는 것 같은 기분이다.

미도다방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마담’이 30년 이상 이곳을 지켜 오고 있다. 손님들의 평균연령도 80세에 이르고 있다. 또 재미있는 건 이 다방의 인테리어는 손님들 담당이라는 것이다. 단골손님 중 한때 꽤나 그림 잘 그리고, 도자기를 빚었던 이들이 소싯적 자신의 작품들을 가져와 전시한다는 얘기다.이런 포근한 문화공간이 또 있을까 싶다. 지금은 널리 알려져 주말이면 옛 추억을 더듬기 위해 찾아오는 단골손님과 골목 투어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줄을 잇는다고 한다.

골목 여행은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건너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결국 같은 ‘한 길’인데 제각각 하는 역할은 뚜렷하다.
한약재 상이 모여 있는 ‘약방골목’이 대표적이다. 이 거리로 들어서면 진한 한약재 냄새가 난다. 절로 건강해지는 듯한 기분이다. 조선조 효종 연간에 한약재와 약초를 파는 시장으로 역사가 무려 350년이 됐다는 이 골목은 현재 150여개의 가게가 줄지어 있다. 그러나 이 골목에서 50~60m 떨어진 중앙로 맞은편에 있는 광주의 충장로 격인 ‘동성로’가 중심부가 되면서 약방 골목의 땅값이 많이 올라 30년 된 터줏대감들이 하나둘씩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계산성당




다음으로 근대 골목문화 투어에서 유명한 명소로 손꼽히는 ‘계산성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 구절이 한 구절씩 새겨져 있는 보도블럭이 그것. 발에 밟히는 시 구절들을 읊으며 시인의 구슬픈 마음에 깊이 공감해본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이러한 소소한 콘텐츠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도시로 나가고자 하는 대구의 욕심이 느껴지는 점이다.

계산성당은 1902년 적색과 흑색 벽돌로 건축,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 성당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계산성당 앞 횡단 보도를 건너면 층층이 쌓인 계단에 수십 개의 태극기가 펄럭인다. 대구 학생들이 3·1만세운동에 참여하러 가던 ‘3·1 운동 길’이다. 1919년 대구 3·8독립운동 당시 비밀 통로로 사용됐던 곳으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집결지로 향해야 했던 대구 시민들의 은밀한 통로가 되었다고 한다. 90계단을 올라서면 ‘청라언덕’이다.



광주 남구 양림동의 선교 유적지와 같은 이 언덕은 100년 전 대구 동산동 일대에 정착한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근대문화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은 곳이다. 언덕에는 스윗즈 주택,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 등이 보존되고 있다. 해설사들은 이 언덕을 설명하면서 꼭 양림동을 예로 든다고 한다.

청라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대구 원도심 풍경은 마치 1970년대 시간을 기록한 화첩을 만나는 듯하다. 그 화첩을 펼치자 콘크리트 도심 속 배경이지만 살아 꿈틀대는 역사와 문화가 펼쳐졌다. 공간에 얽힌 스토리와 눈앞에 보이는 역사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새로움과 낡은 것의 묘한 감동이 서린 대구의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왔지만 머리 속은 내내 그 골목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박사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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