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 준비 힘 쏟아…기회 균등 시스템·사회안전망 구축" 대변인 1년반…직설적이면서도 품격있는 메시지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18년 04월 27일(금) 1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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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의원은 국민의당을 대표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작성했다. 그 소추안에 그는 검찰이 기소한 국정농단 행위 외에도 세월호 침몰 당시 대통령의 국민보호의무 위반을 탄핵사유로 추가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너무 무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 판결하는 중요한 기반이 됐다. 그리고 최근 세월호 침몰 당시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의 일부가 드러나면서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는 "국민이 지켜온 민주주의 역사를 거스르고, 평범한 사람들을 답답하게 하고 무기력에 빠뜨리며 분노를 느끼게 했던 그 참사의 책임을 묻고 싶었다"고 말한다.
손 의원은 판사 출신이다. 판사 출신이라면 응당 수재이고, 어려서부터 공부를 꽤 잘 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공부에 별 관심이 없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노느라 정신이 없었고, 중학교 1학년 때 성적은 반에서 50등 정도였다고 털어놓는다. 환경도 열악했다. 아니 불우했다.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초교 5학년 때부터는 식구가 한 집에 살지 못하고 따로 떨어져 지냈다고 한다. 더구나 초교 4학년 때 닥친 5·18은 유년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다. 광주시 양동 삼익아파트에 살면서 중앙초교를 다니던 그의 눈에 비친 5·18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특히 무진아파트 앞 큰길을 탱크가 지나간 뒤 길바닥에 깨진 두개골과 선연한 핏자국은 그의 가슴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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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몰락한 살림에 5·18을 겪고 침울에 빠진 도회지에서 자라났지만 그는 늘 웃는 얼굴에 밝은 분위기다. 특히 나지막한 목소리에 겸연쩍어 하듯이 홍조를 띠며 미소 짓는 표정을 대하면 누구든지 저절로 무장해제 당한다. 그 모진 세월도 곧고 맑은 천성을 어쩌지 못했다고나 할까. 비록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늘 집 안에 머물기 보다 집 밖에 있었고, 세상으로 나가 더 많은 경험 쌓기를 원했다. 그는 "어려웠던 고비 고비를 잘 넘어왔다. 다행히 유혹을 이겨내고 크게 담을 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 그는 스스로 인생을 바꿀 계기를 마련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그의 성적이 조금 오른 것을 무척 반기는 것을 보고, ‘공부 해볼까’ 생각한 것이 단초였다. 매월 보던 시험에서 성적을 올리기 시작해 중간고사 때는 반에서 1등을 했다. 불과 2~3개월 만에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후 삶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서울대에 들어가서도 그는 공부보다 세상 경험을 쌓기 위해 이것저것에 기웃거렸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시위에도 참여하곤 했다. 그리고 그의 아내를 2학년 때 만난다. 7년 연애 끝에 사법고시 2차 시험을 보고 청혼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신림9동에 합격자 방이 붙기를 기다리던 그날, 하루가 삼 년 같았다. 그는 사법연수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판사 임용을 받는다.
8년여 판사 생활을 정리하고 그는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가 된다. 대형 로펌에 들어간 것은 전관예우가 아니라 ‘방송사업자의 지위’와 관련한 그의 석사 논문 덕택이었다. 물론 어려운 생계도 한몫했다. 결혼할 때 양가의 형편을 뻔히 아는 그는 양가의 도움 없이 살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그는 아이 셋을 낳으면서 출발 선상이 다른 삶에 대해 알게 됐다. 부모가 부자이거나 처가 덕에 재정적 도움을 받아 출발한 동료들과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갈수록 간극이 커졌다.
로펌 생활도 성공적이었다. 의뢰인 기업들이 늘 믿고 찾는 변호사였다. 손 의원은 그러나 로펌 생활을 하면서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사회는 시작할 때부터 동일한 여건을,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아예 중고교 때부터 삶이 정해져 바꿀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회의 사다리마저 차단되는 사회다. 때때로 고민에 빠졌고, 언젠가는 공공부문에서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그는 역사가 후퇴하고 있음을 느끼며 갑갑해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나’ 생각만 했지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고향 나주에 살던 아버지와 친척들로부터 지역발전을 이끌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정치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친척이 국민의당 발기인으로 그를 추천했고, 급기야 당의 공천을 받게 됐다.
나주·화순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장터에서 할머니들의 거친 손을 맞잡던 때를 그는 잊지 못한다.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장에 나와 나물을 팔지만, 장사가 안돼 빈손으로 귀가해야 하는 분들이 많다. 선거운동을 함께하던 아내가 "당신이 그분들을 위해 뭘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손 의원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난한 현실을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의 역할, 특히 국회의 역할은 "사회안전망을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데 있다"고 한다. 사회안전망은 모든 국민을 실업, 빈곤, 재해, 노령, 질병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이른다. 최근 그가 발의한 법률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채용 투명성’ 강화 위한 ‘구직자 채용평가 점수 확인법’ △경제적 약자에게 소송비용을 지원하는 민사소송법 개정안 △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학대 및 차별 가해자에게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입찰 자격을 제한하는 법안 △어린이 보호구역 내 과속단속 카메라 또는 안전용 CCTV 등을 설치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등….
한편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혁신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손 의원은 △4차산업혁명 관련 산업의 네거티브 규제 전환 촉진 △4차산업혁명 사회적 의견수렴을 위한 기구 설치 △스타트업에 대한 기술나눔 사업의 법적 근거 마련 △중소기업 첨단융복합기술 산학연계형 지원 근거 마련 △ICT(정보통신기술) 융복합 농업생산구조의 고도화를 위한 사업 기반 마련 등을 단계적으로 정부에 요구하고 그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그는 "4차산업혁명 촉진을 위해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가의 역할은 관련 진흥기관 설립이나 5개년 계획 수립 등이 아니다. 혁신을 이끌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2017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손 의원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5·18 당시 헬기 기총사격, 공군 전투기 대기명령 등에 대해 질의하며 정부 차원의 조사를 촉구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부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실을 규명할 것을 약속한다. 그는 보좌진들과 함께 국방부를 수차례 방문한다. 육군, 공군, 기무사 등에 보관된 5·18 관련 비밀 문건 들을 확인하고, △계엄군의 광주시민에 대한 발포명령 및 추가 지시사항의 근거 △헬기 기총사격 증거 △공군 전투기 대기명령 증거 △미군 특수부대의 개입 근거 등을 밝혀낸다. 손 의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 규명을 통해 대한민국이 5·18의 역사를 기억하고, 관련자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물어 다 함께 미래로 나아가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다양화됐고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지만, 정치 현실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한다. 손 의원은 "정치적 의견을 내는 여론 층이 다원화돼야 하고, 서로 다른 목소리에 대해 관대해야 한다"며 "다양한 색깔을 인정하고 각자의 개인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처음 몸담았던 국민의당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갈라지지 않았다면 지나치게 우경화 또는 좌경화 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진보, 보수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면 중간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 그런데 이도 저도 못하게 됐다. 국민의당 분당 이후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2년 국회의원 생활에 1년 반은 당 대변인을 했다. 대표는 늘 바뀌었다. 안철수, 박지원, 김동철, 박주선 네 분의 당 대표를 모신 것이다. 그는 "여러 국가적 현안에 관여하게 됐고, 지도부의 결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기자들과의 교류하며 정치적 사고도 커졌다"고 말한다. 대변인으로서 손 의원의 메시지는 기존과는 다른 색깔이다. 거친 표현에 단문으로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부드러우면서도 직설적인 화법들이 많다. 그는 "뜻을 명확하게 전달해 국민이 우리를 지지하도록 이끌면서도 품격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특히 진정성을 중시한다. "인터넷 세대들은 얼굴을 직접 대하지 않는 상황에서 진정성 없이도 관계를 유지하지만 정치까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의 장점은 늘 주변 사람에게서 배운다는 것이다. 우연히 고등학생 때 산에서 만난 사람이 그에게 해 준 "고개를 올라야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말을 새기고 있다. 고비를 넘어서야 새로운 인생을 맛볼 수 있다는 얘기다. 친구들, 판사부임 당시 초임 부장, 로펌에서 그를 이끈 매니징 파트너, 연수원에서 만난 선배, 당 대표들 등등…, 그들에게서 배웠고 그래서 잘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운이 지독히 좋은 것일까.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일까. 늘 감사하는 삶이다.
손 의원은 책임감이 강하다. 5·18 때 하굣길에 동생을 챙겨오라는 어머니 당부를 지키지 못해 아찔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순천지원에서 판결을 내리던 당시 화물노조로부터 받은 편지를 지금껏 가지고 있다가 이따금 내어 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번 6·13지방선거에 ‘손금주와 함께하는 무소속연대’를 펼친다. 20명에 달하면 광역·기초 의원들이 지방정치에 새바람을 일으키자고 ‘도원결의’를 했다. 기성 정치구도에서 보기 힘든 신선한 도전이다. 하나같이 "선거 후에는 손 의원과 함께 입당할 것"이라고 한다.
젊고 유능한 정치 신인에게 정치 현실은 가혹하다. 정당에 들어가야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다. 늘 줄을 세우고, 그 줄을 잡아야 하며, 소신보다는 당의 입장에 따라야 한다. 오라는 데는 많아도 그를 중히 쓸 곳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손 의원이 이번에도 난관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앞으로가 무척 궁금하다.

2026.10.23 (금) 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