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들려주는 ‘꽃 이야기’ 정직하게 전할게요"

[문화CEO]노민영 디자인 휴먼 대표
경찰공무원서 플로리스트로 전환 20여년 ‘꽃 길’
식물 특징 살려 ‘이치’에 맞는 디자인 작업 이어
"실내 ‘그린인테리어’ 확대…꽃박람회 부활해야"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8년 10월 04일(목) 15:44
그에게 자연의 모든 것은 재료가 된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난 들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밑동이 잘려 나간 고목까지….
화훼장식가, 그러니까 흔히 아는 말로 ‘플로리스트’에게 자연은 몸 기대고 사는 삶의 터전이자, 가장 좋은 캔버스다.
그의 손끝에서는 기억 속에만 머물던 함평 고향집 뒤뜰이 그대로 재현되기도 하고, 한국형 정원이 실내 공간 한편에 떡하니 펼쳐지기도 한다.
살아있는 꽃나무를 예술적 원료 삼아 작품을 만들어 내는 플로리스트 노민영씨(디자인 휴먼 대표) 이야기다.
그를 처음 인터뷰한 것은 지난 함평나비축제 때였다. 20주년을 맞은 함평나비축제에서 그는 ‘성년’(聖年)이 된 나비축제의 변천사를 꽃 예술로 표현해냈다. 꽃과 나무를 스토리텔링 해내는 데 탁월한 그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 예술 공간이었다.
지금껏 그는 대한민국화훼장식기능대회·생활플라워경연대회 등 국내는 물론 중국 상하이·태국 방콕·일본 고베 등 해외 대회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광주 꽃 예술의 저력을 알려온 주인공이다.
누구보다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그는 "자연은 아름답고도 재미난 이야기 재료"라고 밝힌다.
"플로리스트란, 화훼재료를 가지고 조형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이에요. 풀어 설명하자면 뿌리·줄기·잎·꽃 네 가지의 화훼재료를 활용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죠. 여기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수만 가지의 예술 원료들이 더해집니다. 여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분위기·색감·테마는 수 없이 많아지겠죠."
재료는 수 만 가지지만, 그가 표현해내고자 하는 작품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바로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 그는 화훼의 장식적·기술적 표현들을 지양한다. 보기에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함 보다는, 담백하고 묵직한 맛을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제 작업 원칙 중 하나가 재료의 특성을 위장하지 않는 것이에요. 사용하고자 하는 재료가 그들 집단에서 어떤 성질인지를, 디자인을 통해 잘 나타내 줘야 합니다. 자연에서 크게 자라는 아이라면 넉넉한 공간에 배치하고, 물을 좋아하고 빛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그 상태 그대로 재현해줘야 합니다. 이를 ‘식물의 사회학’이라 정의하는데, 식물들이 살아가는 그 방식을 존중해주면서 작업하는 게 제 철학이죠."
살아있는 식물재료를 쓰기 때문에 자연에 반(反)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그의 예술적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은 지난 3월 중국 상하이 국제 플라워 쇼에서 정원 부문 대상을 차지한 ‘밤가시 초가’이다.
‘밤가시 초가’는 경기지방의 전통 가옥을 모티브로 한 한국정원이다. 중국 현지에 한국정원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는데 그는 궁궐정원이 아니라, 서민정원을 꾸몄다.
"정원이란 것 자체가 어떤 계층을 위한 문화이기 보다는 모두에게 스며드는 것이죠. 초가집을 그대로 살리고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썼어요. 내 고향 함평에서 봤던 풍경들을 그대로 새겨보자,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한국 서민정원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죠."
‘밤가시 초가’에는 냉이 풀·개불알꽃 등 전라도에서 자라는 꽃들이 심어졌다. 이 같은 들풀들은 ‘판매용’이 아니라서, 노씨는 상하이 식물원 주변을 뒤졌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식물원에 그가 찾는 냉이풀·개불알꽃이 널려 있었다. 그는 축제 어시스턴트들과 함께 삽을 들고 풀들을 퍼 날라, 심었다.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던 썩은 고목에도 욕심이 났다. 들고 옮기려니 그 안에 살고 있던 크나큰 애벌레가 튀어나왔다. 애벌레까지 함께 그대로 옮겨와 ‘밤가시 초가’에 두었다. 그것마저도 그가 생각하는 자연의 일부이므로.
"제가 완벽주의 성격이 강하거든요? 정원을 바라보는데 여기에 나비가 한 마리 들어와야겠다 싶은 겁니다. 그래서 나비가 좋아하는 식물인 유채를 심어놓고, 창을 열어뒀더니 정말로 나비가 날아 왔어요. 심사위원들에게도 이 같은 자연스러움이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한국의 민가, 그러니까 노씨의 함평 고향집과 같은 풍경이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그는 실제 전라도 풀이 가진 경쟁력을 굳게 믿는다.
"화훼시장에서 최근 강아지풀 인기가 높아지고 있어요. 크고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을 뽐내는 꽃들도 너무나 아름답지만, 언제나 길가에 피어있었던 냉이풀·개불알 꽃 등 들꽃들 또한 담백한 매력이 있죠. 퇴직 하게 되면 전라도 땅이 지닌 화훼 자원들을 활용해 산업으로 활성화 시켜보고 싶은 꿈도 있어요."
꽃 전문가로 20여년 활동해 온 그이지만, 그는 원래 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군에 있었다. 바로 경찰공무원이다. 그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경찰 기능직 공무원으로 취업해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취미로 꽃을 만지게 된 것이 일찌감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레슨 받은 지 딱 반년 됐을 때, 전국대회를 나가게 됐어요. 배움이 짧았던 터라 실수가 많았는데, 입상을 했죠. 부족하지만 상을 쥐게 되니, ‘아 내가 이것으로 끝을 봐야 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 때 다짐 그대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노씨 인생 앞에 떨어진 ‘꽃’과의 연은 그의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언니 지영씨는 함평에서, 동생 민정씨는 광주 신창동에서 플로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운명처럼 시작된 꽃과의 동행이 세 자매 플로리스트를 만든 셈이다.
문득 플로리스트인 그가 바라본 광주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노씨는 "광주 정원은 척박하기 이를데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우선 11년째 이어져 왔던 봄꽃박람회가 없어졌죠. 광주가 봄꽃박람회 자체를 수 많은 축제 중 하나로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봄꽃박람회는 화훼 생산자 뿐 아니라, 저와 같은 플로리스트들 그리고 이를 향유하고픈 시민들의 터전이에요. 봄날이 오면, 꽃을 보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 아닐까요? 시민들의 발걸음이 잦은 광주천변쪽으로, 자연스럽게 꽃 예술을 선보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제안하는 것이, ‘그린인테리어’이다. 광주가 건물 밀도가 높은 도시인 만큼, 실내를 ‘정원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실내에서 대부분의 하루를 보내죠. 사무공간이 그렇듯 공기가 탁하고, 환경 또한 척박합니다. 이 같은 건물 안에 정원을 만드는 겁니다. 로비가 될 수도 있고, 사무실 자투리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겠죠. 미세먼지 걱정이 많은 요즘인데, 공기청정식물과 아름다운 꽃들을 심으면, 그곳이 바로 ‘힐링 오피스’가 될 것입니다. 공공기관이나 다중이용시설을 시작으로 점차 확대해 나가면 좋겠어요."
그는 최근 자신이 가르치는 청년 플로리스트들과 함께 ‘힐링오피스’ 만들기를 위한 첫 발을 뗐다. 디자인휴먼이 자리한 김대중컨벤션센터 로비에 ‘청춘의 뜰’을 조성한 것. 그는 이곳을 그린인테리어의 가능성을 소개하는 곳이자, 청년 플로리스트들의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활용할 복안이다.
노씨는 앞으로도 꽃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
"장미꽃 한단(10송이)에 꽃들 모두 표정이 달라요. 저마다 하고픈 이야기, 내뿜는 매력이 다 다른 것이죠. 가장 순수한 눈으로, 식물이 전하는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승화시켜내고 싶어요.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정직하게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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