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가람의 미학…건축 자연을 품다 마곡사, 해탈문 지나 만난 부처의 법계 아늑한 경지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18년 10월 04일(목) 1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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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국내는 대개 오랜 시간 동안 불교문화가 꽃피웠던 곳이었다. 따라서 그 지역에 천년고
찰이 있다면 그곳을 권한다. 대개 사찰들은 명산 명경(名山 名景)에 자리한다. 사찰의 역사를 한올한올 풀다보면 그 지역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사실 그로부터 여행이나 답사의 실마리가 된다는 이야기다. 충남 공주도 그렇다. 어떤 이는 공주를 백제의 도읍으로 인지하면서 가볼만 곳으로 공산성 무령왕릉 송산리고 분군 석장리구석기유적 등을 떠올릴 수 있다. 교과서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공주는 행복한 공간일지 모른다. 옛 백제의 자취를 좇는 여행루트를 짤 수도 있을테니까 말이다. 필자의 고민도 깊었다. 학생시절이었다면 당연하게 역사적 공간을 훑어보는 결행을 했을 것이다. 삶이 복잡해서 였을까. 이번 여정에서는 천년고찰을 택했다. 어느 순간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한 삶을 비워내고 싶은 희망이 작동해서였을 것이다. 절 초입의 진입로를 걸으면서 ‘나를 비우며 번뇌를 잊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먼저 발동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이마저 헛된 욕망이었을지 모르지만.
사찰의 이름들은 어렴풋 들어 알았으나 그 고찰들이 공주에 있었다는 것은 이번에 알게 됐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공주는 대표적 상징인 백제도읍이라는 키워드를 접더라도 사찰들만 잘 꿰도 알찬 여행이 가능한 지역이다. 사곡면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摩谷寺)를 비롯해 계룡면의 갑사(甲寺), 반포면의 동학사(東鶴寺)가 그곳이다. 이 세 사찰은 계룡면의 신원사(新元寺)와 함께 ‘계룡산 동서남북 4대 사찰’로 꼽힌다.
마곡사의 말사인 신원사는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다음 여정으로 넘겼다. 이 세 사찰 모두 초행이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곡사의 이름은 새롭게 각인됐으며, 갑사는 학창시절 교과서에 수록됐던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 때문에 오래전부터 기회가 되면 가봐야지했던 사찰이었다. ‘계룡팔경’(제5경)의 하나인 계곡이 아름다운 동학사는 대전이나 공주사람이면 다 알만한 사찰이 아닐까 싶었다.
마곡사는 한없이 아늑한 경지(境地)다. 자연의 자존감을 지켜내는 가람배치와 옛 사찰의 원형을 유지해가려는 모습이 읽혀졌다. 건축물은 나무 한 그루 쉽게 여기지 않은 듯 보였다. 빛바랜 탱화 역시 그대로였다. 고목은 고목대로, 신록이 우거진 나무는 나무대로 그 존재를 뽐낼 수 있는 공간이 마곡사였다. 643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하니 그 역사적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까 싶다. 마곡사는 일자형 진입로 형태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품은 채 오랜 역사 속을 헤쳐 나온 것 같았다. 흙길을 밟으며 사찰 내부로 들어가는 진입로부터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예감은 적중했다. 이 사찰에 대한 존경심과 탄성이 절로 나왔다. 37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도 그새 잊었다.
마곡사는 큰 스님들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마치 삼(麻)밭의 삼이 일어선 것처럼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고 해서 붙여졌다 한다. 사찰 자체가 보물 같은 곳으로 실제 보물들도 대웅보전, 대광보전, 영산전, 오층석탑, 사천왕문, 해탈문 등 여럿이다. 마곡사는 청양의 장곡사 및 예산의 안곡사와 함께 ‘삼곡사’로 불리는 사찰이다.
마곡사의 정문인 해탈문을 지나 천왕문을 넘어서니 절의 아늑한 자태가 드러났다. 해탈문의 안과 밖은 속세와 부처의 법계를 가르는 듯 보였다.
대웅보전에는 싸리나무 기둥이 네 개 있다. 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옛 시대 아들 선호 풍속의 단면으로 읽혀졌다. 그것보다는 싸리나무 기둥을 많이 돌수록 극락(極樂)에 가까워지고, 아예 돌지 읺았다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내용에 대한 해석이 설득력을 더한다.
원나라 간섭기였던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초에 조성된 오층석탑은 평면의 폭이 좁은 반면 탑신의 높이가 높아 세장한 모습을 보이는 등 고려시대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눌렀더니 탑의 웅장한 모습과 푸른 하늘, 그리고 대광보전 처마의 보일듯 말듯한 곡선이 찍혔다. 이것들이 어우러져 더없는 건축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 했다. 수백년 된 소나무가 울창한 ‘마곡사 솔바람길’을 잠시 걸어도 좋다. 잠시 번뇌와 시름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백범 김구가 1895년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뒤 도피해 은거 생활을 하며 거닐던 ‘백범 명상길’을 거닐어 보라는 이야기다. 마곡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내내 기대하지 않았던 마음의 풍경을
얻은 듯한 감흥에 빠져들었다.
광주에서 오후 3시 무렵 출발했던 지라 마곡사를 둘러보고 나왔을 때는 이미 시간이 5시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마곡사를 나와 갑사로 이동했다. 주차장에 이동했을 때까지만 해도 별반 다른 것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늦은 시간이라 모든 차들이 빠져 나가고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상가 앞 도로로 접어들자 건너편에 큰 건축물이 흉물처럼 방치돼 있어 기대감이 떨어졌다. 상가들을 지나 갑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어둠이 내리깔리는 진입로 숲길이 펼쳐졌다. 일명 ‘오리숲’으로 불린다 한다. 경내까지 느티나무, 팽나무, 참나무 등 활엽수가 가득 찬 숲길이 5리(2㎞)나 이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록이 우거질대로 우거진대다 완만한 경사는 숲을 오른다는 숨참보다는 늘 발가벗기며 살아온 삶이 아늑하게 감싸진다는 느낌이 앞섰다. 그런 연유 때문에 오랫동안 이곳을 떠나기 싫었다. 경내에 거의 도달하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꽃무릇 아닌, 상사화 한 그루를 만날 수 있었다. 어찌나 화사하던지 어둠 속 사찰을 방문한 속세 사람에게 ‘늘 꽃길만 가라’는 것이라고 나름 아름다운 포장을 해보았다. 오리숲길을 걷고 나면 남매탑의 전설을 담아낸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 위에 서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터다.
다음날 광주로 내려가는 길 동학사에 들렀다. 동학사는 보수공사를 많이 한 듯 보였다. 석축도 너무 반듯해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고, 상점들은 계곡까지 점유해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았다. 입구에서 차량 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복잡했다. 다만 남매탑은 반드시 둘러봐야 한다. 동학사에서 1.6㎞ 등산을 해야 만날 수 있는 남매탑은 석탑의 정수를 보여준다. 찜통 더위 속 방문을 꿈꾼다면 1㎞까지는 그럭저럭 오를 수 있으나 0.6㎞ 남겨두고 부터는 조금 독한 마음을 먹고 올라야 할 것을 미리 말해둔다.
공주의 천년사찰 순례는 동학사에 가서 요즘의 절 풍경을 접하고 남매탑(5층 석탑·7층 석탑)을 둘러본 뒤 전통사찰의 가람구조를 접할 수 있는 갑사와 마곡사를 둘러보면 그 감흥과 낭만이 뒤바뀌지 않은 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남일보 gwangnam@gwangnam.co.kr

2026.10.23 (금) 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