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된 임금과 방랑 시인 발자취 서리다

[문득 여행] 강원도 영월
단종 임금·난고 김삿갓·동강 등 ‘눈 호강’
작은 읍내 콘텐츠 다양한 문화 공간 즐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8년 10월 09일(화) 16:27
대한민국을 누가 좁다 했는가.

오십줄에 접어들었으면서도 여전히 가보지 못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해외 여행을 미덕처럼 여긴 시절이 있었다. 국내 여행은 시시하다고 말이다. 더욱이 중국이나 동남아쯤은 쳐다 보지도 않던 시절이 없지는 않다. ‘젊어서는 멀리 둘러보고, 나이
들어가면서는 가까운 곳을 둘러보라’고 했지만 이 말을 이해하기 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해외를 많이 둘러보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문제였다. 나이가 들어도 주머니 사정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늘 해외출장이나 여행이 쉴틈 없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족구성원 4명이 유럽 한 번 다녀올라치면 1000만원 안팎의 비용지출을 피할 수가 없다. 작지 않은
액수다. 이처럼 비용을 따지다보니 매년 여름휴가는 국내여행을 선택하곤 했다.

지난해에 이어 다시 강원도를 택했다. 숙박은 그 옆 동네 정선 하이원에서 해결했다. 이미 정선을 한차례 방문해 여행기를 제법 그럴싸하게 정리한 바 있어 지난번 둘러보지 못해 아쉬움이 컸던 영월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때 시간에 쫓겨 영월을 차량으로 지나쳐 가야만 했다. 그래서 올해 영월을 둘러보기로 한 것. 영월 답사 재도전에 나서게 된 셈이다. 영월에 대한 정보가 워낙 없다보니 걱정이 앞섰다. 광주에서 영월은 400㎞가 넘는 먼 거리였다. 영월에 오고서야 ‘멀리 오기는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영월에 대한 정보는 비운의 왕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 정도였다. 그만큼 영월은 필자의 삶에서 교집합이 될 만한 것이 전무했다. 그만큼 낯선 곳이었다. 그러나 이 낯선 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삿갓면에서 영월읍, 그리고 청령포에 이르는 공간을 훑어보기까지 문화예술시설이 넘쳐나서다. 볼거리가 많아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 수 있지만 필자는 눈동자를 정말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이곳이 군단위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장르별로 다양한 공간이 구축돼 운영되고 있었던 때문이다. 광역도시에 사는 필자 입장에서조차 영월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읍내 일대에는 영월곤충박물관을 비롯해 국제현대미술관, 별마로 천문대 천문과학교육관, 라디오스타박물관, 동강사진박물관, 영월종교미술관, 단종역사관, 세계민속악기박물관 등이 즐비해 어디서부터 둘러봐야할 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읍내에는 문화유산과 공간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강과 동강이 교차해 흐르는 천혜의 자연 환경은 한없이 영월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동행 가족이 있어 김삿갓면으로 가야했다. 면의 명칭마저 예사롭지 않았다. 김삿갓면은 무릉도원면이나 한반도면과 함께 독특해 눈길이 갔다. 오히려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다. 짧은 일정 탓에 모두 둘러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김삿갓면으로 향하는 동안 산세를 보면서 들판을 끼고 있는 남도의 들판과는 전혀 생경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담한 남도의 산세와는 달리 웅장하면서 험준한 산세가 계속 이어졌다. 구불구불한 강원도 산촌길을 따라 계곡을 끼고 한참을 달리자 골짜기가 펼쳐졌다. 골짜기마다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 눈으로 접하는 이곳의 계곡은 오염원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험준한 준령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은 너무 맑아 투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나무들이 지친 인간들에게 내려 주는 선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골 길 끝 지점에 다다르자 조선 후기 시인인 김병연(1807~1863)의 삶과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난고김삿갓문학관’이 나왔다. 넓은 주차장이 필자의 차를 맞이했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후끈한 열기가 먼저 얼굴을 훑었다. 올해 기록적 폭염은 산촌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그동안 김삿갓 문학상을 받은 시인들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송수권 강은교 신달자 오세영 나태주 이재무 시인 등의 시비를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산골에 문학관이 있고, 시비가 있는 풍경이 오히려 낯설기까지 했다. 필자가 아는 것은 강원도에 김삿갓 문학관이 자리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건축물은 김삿갓을 멀리서 알아볼 수 있도록 삿갓을 상징화해 건립됐으며, 2003년 10월 개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삿갓의 생애와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문학관 내부에는 김삿갓 관련 연구자료와 유물, 그리고 대동기문 등 다양한 김삿갓 자료를 수집한 고 정암 박영국의 풍부한 자료가 전시 중이었다. 전시실을 나오면서 배너처럼 설치돼 있는 김삿갓의 작품들을 읽었다. ‘개새끼’라는 작품이 있는데 잘못 이해하면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어디까지나 김병연의 자유분방한 시 작품으로 읽으면 그만이다. 이번 여정에서 김삿갓을 만나는 일은 시대를 초탈한 그의 삶과 정신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로 충분했다. 정암 박영국은 김삿갓 연구에 평생을 바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여기다 여러 자료들과 탁본체험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삿갓과 도포를 걸친 채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관람객들에게 추억 한토막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야외 공간 곳곳에는 조각 김삿갓이 설치돼 있다. 9월에는 ‘김삿갓 문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구경하고 싶었으나 시기가 맞지 않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문학관을 둘러본 뒤 김삿갓계곡 캠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청기와식당을 지나 캠핑장을 가로질러 계곡으로 내려가자 물놀이하는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에 손을 담궈 본 뒤 20여분 앉아 물여울을 구경하다 머지않은 곳에 자리한 김삿갓 묘소로 이동했다. 김삿갓 시비동산을 지나자 묘소 입구에서 난고정을 만날 수 있었다. 하필 방문하던 날, 문이 닫혀 있어 먼 길을 간 보람이 조금 줄기는 했다. 묘지 비석에는 ‘시선 난고 김병연 지묘’라고 쓰여져 있었다. 대학 때 문학을 공부했던 필자로서는 눈앞에 김삿갓의 묘가 있다
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활자로 된 김병연만 만났을 뿐 실제 김병연의 삶과 발자취를 확인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묘소는 매우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다. 터는 넓지만 장식적인 것 없이 묘비만 세워져 있었다. 삶에 얽매이지 않고 민중의 한과 설움을 보듬으며 전국을 방랑했 =던 김삿갓의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김삿갓의 생가라고 불리는 주거지도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첩첩산중이라 한 여름이어도 해가 빨리 지는 듯 했다. 김삿갓 묘소를 나와 서둘러 고씨굴을 잠시 둘러본 뒤 지친 몸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강원도식 채묵과 칡칼국수, 감자전, 묵무침을 폭풍흡입한 뒤 숙소가 있는 정선으로 넘어갔다. 정선에서 이런 저런 체험을 한 뒤 이번 여정의 마무리를 위해 다시 영월을 찾았다. 광주까지 내려가야 하는 부담감이 있어 멀리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꼭 둘러봐야 할 곳을 지정하다보니 장릉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릉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5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많지 않은 시간이 옥죄어 왔다.

밤늦게 광주로 복귀하기로 하고 단종 역사관과 단종의 묘소인 장릉(莊陵·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을 둘러봤다. 단종 역사관은 슬픔과 한이 서린 단종 임금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를 구축해 방문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단종 임금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따로 꾸며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장릉을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청령포에 들렀다. 단종 유배지로 알려진 곳이었다. 배를 타고 아픈 역사의 현장을 둘러볼 수도 있다. 청령포는 수령 600년으로 국내 최고 오래된 관음송을 망라해 수백년된 거송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는 등 경관이 수려한 곳이지만 단종이 유배오던 무렵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고, 삼면이 호수로 둘러쌓여 있어 오도가도 못할 공간이었으리라. 홍수가 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홍수가 나지 않았다면 사약을 받은 관풍헌(觀風軒)으로 거처를 옮기지 않았어도 됐을테니까. 역사는 가설을 허용하지 않는다지만 가설을 고집해 본다. 그야말로 수양은 자연감옥이 될 것을 알고 단종을 이곳으로 유배보냈을 터다.

여행은 ‘채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늘 채움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다만 여행이라고 해서 늘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닐 듯 싶다. 채워지지 않으면 미련이 남게 마련이다. 생각했던 코스를 모두 소화하지 못하다보니 다소 헐거워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영월이 꼭 그런 곳이다. 분명한 점은 영월이 단종이나 김삿갓의 존재만으로도 필자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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