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 장애 좌절 않고 43년째 목공예 외길”

[남도명인] 정종구 광주시 목공예 명장
부친 재능 계승…가족들 도움 명장 반열 올라
모든 기술 연마 한옥 개조한 전시장까지 마련
칠순에 삶 총망라 전시·후진양성 힘쏟고 싶어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18년 10월 09일(화) 17:49
작업장에 들어서자 나무 냄새가 코끝에 아렸다. 작업장 벽에는 절단된 나무들이 속살을 드러내 기대있고, 막 작업을 마친 것을 방증이라도 하듯 바닥은 톱밥이 수북했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크고 작은 각종 톱이었다. 나란히 줄 맞춰 걸려있는 톱과 나름의 규칙들은 그의 꼼꼼한 성격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 듯 했다.

광주시 동구 동명동을 오가며 봐온 ‘민예공방’의 풍경이다.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길가에 자리해 비교적 눈에 잘 띄는 민예공방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이름의 상호를 단 곳이 또 하나 있거니와 공방 앞 인도를 차지한 나무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이용해 무언가 하는 곳인 것 같은데 이름만 들어서는 짐작이 가지 않아 늘 궁금하던 차였다. 이번 인터뷰는 이런 필자의 호기심을 먼저 해결할 수 있는 기회여서 들뜬 마음으로 민예공방을 찾았다.

작업장에서 다섯 발자국 쯤 떨어진 곳에는 한옥을 개조한 전시장까지 마련돼 있다. 전시장에는 전통 짜 맞춤 선반과 머릿장을 비롯해 서각 현판과 명패, 바둑판, 휴대폰 거치대, 뿌리 탁자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정종구 광주시 목공예 명장을 만날 수 있었다. 정 명장은 특유의 부드러운 어조와 귀에 꽂히는 낭랑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작업장과 전시장을 보고 나니 투박한 손과 작은 체구로 어떻게 소품부터 대작까지 다양한 작품을 제작해왔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전시장을 지나 그가 작업할 자료를 모아놓은 방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1981년 가을 행·초서의 대가 故 운암 조용민 선생에게 서예원 방문 기념으로 받았다는 ‘백련강’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정 명장은 운암 선생에게 받은 글을 최근 전통 서각 기법으로 새겨놓았다. 마음에 새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공방의 제일 좋은 자리는 운암 선생 글이 차지했다.

“‘백련강’은 제 인생을 관통하는 말이죠. ‘백 번 수련해서 강하게 된다’는 이 말이 제 삶을 함축한 말이라서요. 나무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면 나무가 나고 자라면서 겪은 시련과 기다림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제 인생을 나무에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14년 광주시 목공예명장이 된 그는 담양 대전면에서태어나 걸음마를 시작하던 2살 때 소아마비를 겪어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광주로 이사를 와 학교를 다니다 지인의 소개로 동구 계림동 영신목각학원을 다니게 됐다 한다. 이곳에서 목공예 기초에 입문해 나무를 다듬는 기술을 습득했고, 1976년 금남로에 있던 대한공작소에서 본격적으로 목공예에 뛰어 든다.

“기술이라는 게 한두 군데에서만 배워서 되는 게 아니에요. 어느 집은 산수화 조각을, 어느 집은 추상 조각을, 어느 집은 사군자 조각을 잘하죠. 모든 기술을 연마해 작품에 장점만 녹여내려고 여러 곳에서 기술을 익혔습니다.”

가구 조각이 성황이던 1977년 정 명장은 기술을 더 연마하기 위해 서울 가구 공방 등지에서 가구 조각 기술을 익히다 이듬해 광주를 내려와 신라공예사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면서 생활 공예에 전념했다.

그는 다수의 공예대전에서 수상했지만 특히 5·18민중항쟁탑을 상징화한 ‘5월의 빛’으로 제1회 빛고을 공예대전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 후 무등미술대전에서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으며 각종 대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하고있다.

“70년대 초, 80년대에는 가구 전면 조각 티크가 성행하다 목근 공예를 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외국산 수입목재가 국내에 저렴하게 유입되면서 전통 짜 맞춤을 배우러 다녔어요. 하지만 특수 원목을 5~10년간 자연 건조해 톱질과 대패질, 끌질을 해야 해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가격이 높아 수요가 대체로 낮았죠. 고민하다 서각인 현판과 명패 등에 뛰어들었습니다.”

정 명장은 1981년 동구 서석동에 터를 잡고 8년 동안 그 곳에서 ‘민예원’을 운영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후 그 자리에 큰 도로가 나면서 현 조선대 치과대학 옆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 소방 도로가 나면서 건물이 헐리게 돼 현재 자리인 동구 동명동으로 2004년 12월에 이사해 14년째 운영 중이다.

공방 이름은 서민의 생활 속에서 생겨난 정서를 표현한 예술을 펼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민예원’으로 이름 짓고 가게를 운영하다 이후 상호를 변경해 ‘민예공방’이 됐다.

그는 37년 동안 묵묵히 짜 맞춤 가구부터 뿌리와 통나무 공예, 생활 공예, 전통 소목 등 목공예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햇수로는 자그마치 43년째 목공예 외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주로 서예가가 쓴 좋은 글귀와 그림을 나무에 조각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펼친다.

정 명장은 앞을 내다보는 시각으로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읽어내 유행을 선도하면서 목공예에 대한 다양한 기술 과 기법을 자기 것으로 승화했다. 문득 문득 그에게도 작업에 대한 위기는 찾아왔다. 불편한 몸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에 매진하는 동시에 시종일관 삶에 대한 진득한 태도로 극복해왔다. 명장의 반열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문같지만 명장이 된 소감을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후천적 장애로 인해 몸은 불편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양한 기술을 연마하면서 꾸준히 목공예라는 한 길만 걸어 왔습니다. 명장으로 인정받은 것이 인생 전체를 인정받은 것 같아 제게는 의미가 굉장히 크죠.”

명장이 된 데에는 제 노력도 있지만 아내(장유순)의 내조를 잊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또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가족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어요. 2014년 광주시 목공예 명장 신청을 할 때 며느리가 복잡한 서류와 사진을 정리해줬습니다. 이와함께 제 여식이 블로그를 운영해 작업 과정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올려주고 간간히 제 소식도 전하고 있지요. 가족의 힘으로 명장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어떻게 목공예를 하게 됐는지 묻자 석물을 다뤘던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가 돌을 깨 축대를 쌓고 석조형물을 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한다. 그러다보니 학창시절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되고, 나무에 매료되면서 목공예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정 명장의 솜씨는 순전히 돌을 다뤘던 부친의 감각을 물려받은 것으로 이해됐다.

“손재주는 아버지께 물려받은 것 같아요. 쓰임새와 장소에 따라 가변성을 지닌 목재의 성질에 끌려 목공예를 시작했습니다. 간결하고 소박하며 자연스러움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그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목공예를 알려주는 수업을 진행해왔다. 어느날 혼자만 기술을 알고 있다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갈고 닦은 기술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후진양성을 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

“저와 같이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재능기부로 목공예를 가르쳐 왔습니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하고 있어요.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서각에 관한 안내서의 필요성을 느껴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죠. 해를 거듭할수록 누구나 즐길 수 있어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여서 앞으로 목공예의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지요.”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살아온 인생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싶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상업적인 실용품 위주로 목공예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저만의 작품을 해보고 싶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고 있죠. 단체전은 많이 참여했지만 개인전은 아직 열지 못해 칠순전을 생각하고 있어요. 이때 제 공예인으로서의 삶을 투영하는 한편, 다년간 축적한 노하우를 발휘해 예술성을 살린 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제게 남은 과제죠.”

광남일보 gwangnam@gwangnam.co.kr
전라도인 admin@jldin.co.kr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회사소개회사연혁회원약관개인정보보호정책제휴문의고충처리인광고문의기사제보
광남일보 등록번호 : 광주 가-00052 등록일 : 2011. 05. 02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광주 아-00193 등록일 : 2015. 02. 02 |회장 : 양진석|발행인 : 차재진|편집인 : 이승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무등로 254 (중흥동 695-5)제보 및 문의 : 062)370-7000(代) 팩스 : 062)370-7005 문의메일 : design@gwangnam.co.kr

본사이트에 게재된 모든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 의 사전 허가없이는 기사와 사진을 무단전재 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