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 만연산 자락 한적한 곳을 찾았다. 그곳에 미술관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미술관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풍경은 마치 선물 같다. 골짜기의 공기 맛은 광주와는 천지 차이다. 공기 맛이 다르다. 또 탁 트인 고즈넉한 풍경은 복잡한 도심을 금방 잊게 만든다.
눈을 즐겁게 하는 풍경을 지나 미술관 앞에 도착했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에 개관한 화순군립석봉미술관이 그곳이다.
석봉미술관은 만연저수지와 그 옆에 펼쳐진 동구리호수공원 내 만연사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이상적인 공간에 미술관이 자리한데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볼거리를 더한다.
지난 10월22일 문을 연 석봉미술관은 올 1월 기공식을 가진 뒤 9개월 만에 완공됐다. 화순 일대에 처음 들어선 군립 미술관인 석봉미술관은 이 지역 출신으로 중견기업을 일군 남화토건㈜ 최상준 대표이사가 사재를 들여 건립 초기부터 ‘통 큰 기부’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미술관을 개관하는데 그치지 않고 미술 작품까지 기증했다. 이번 미술관에는 공사비 26억5000여 만원이 투입됐고, 기증 미술 작품만도 253점 4억2000만원 상당에 달한다.
이처럼 통 큰 기부를 통해 사회 환원을 실천한 최 대표는 1964년 남화토건에 입사해 대표이사에 이르기까지 55년여 동안 건설 산업의 외길을 걸어온 근대 건설 역사의 산증인이자 전문경영인이다. 남화토건을 업계 평균치보다 높은 수익구조로 만들어 호남 최초의 코스닥 상장사로 전환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최 대표는 화순읍 벽라리에서 나고 자랐으며, 현재 이곳에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남화토건 본사도 이곳에 둘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는 기부의 사회적 가치를 삶으로 실천해 온 인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지난 2017년 광주전남연구원을 비롯해 전남대 등에 한국화와 유화를 망라해 70여점의 미술품을 기증한 바 있다.
특히 건물을 지어 기부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처음 기부는 석봉도서관이다. 지난 2014년 4월 광주 북구 매곡동에 사재를 들여 도서관을 개관했기 때문이다. 현재 광주중앙도서관 분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개관 당시 도서관에 소장 미술품과 서적을 기증해 도서관 콘텐츠를 다양화하는데 기여했다.
석봉미술관은 애초 그가 고향의 문화예술 활성화에 보탬이 되기 위해 사재를 털어 미술관 건립 기부를 약속하면서 시작됐다. 여기에 화순군이 화답했다. 동구리호수공원 내 부지를 제공했다.
최 대표는 사재를 털어 건물과 미술품들을 기증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내 생애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인은 기업의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회문화 융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기부를 하게 됐습니다. 부의 재분배를 통해 실질적으로 지역사회 내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고 싶었어요."
더 많이 가지기 위해 골몰하는 사회 분위기와 달리 ‘어떻게 나누고 베풀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최 대표에게서 그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미술관 이름은 최 대표의 호인 ‘석봉’에서 따왔다는 설명이다.

구충곤 화순군수에게 도록을 전달하는 최상준 대표

석봉미술관 개관과 함께 그가 기증한 미술품은 일생동안 하나하나 수집, 보관한 것들이다. 그의 기증 미술품은 대체로 근현대 미술인들의 작품으로, 유화를 비롯해 한국화와 판화, 조각,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로 이뤄져 있다.
최 대표는 기증한 작품들의 크기나 가격, 예술가의 명성을 떠나 모두 자신에게 소중한 작품이었다고 전제한 뒤 장르별 소장 비율이 맞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관람자들의 이해를 구했다. 그의 기증 작품들은 석봉전시실에서 상설 전시된다.
미술관은 지상 2층, 연면적 1066㎡의 규모로 지역의 저명한 예술가를 발굴, 조명할 2곳의 기획전시실 을비롯해 최 대표가 기증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석봉전시실, 그리고 수장고와 교육창작실 및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
옥상에서는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했다. 만연산의 기운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향후 미술관 운영은 화순군이 맡는다. 현재 학예사와 도슨트가 배치돼 있고, 이후 차츰 건물관리자와 청원경찰 등 인력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미술관 한해 운영예산은 지난 2017년 4월 개관한 화순군립 천불천탑 사진문화관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에 근거해 2억5000만원에서 3억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는 게 화순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개관전은 ‘석봉 최상준 기증작품전’이라는 타이틀로 오는 12월20일까지 열린다. 이번 개관 전시는 문화예술 메세나의 삶을 실천한 최 대표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가 미술관에 기증한 미술품 253점 중 109점이 출품됐다. 제1전시실에서는 서양화 27점, 제2전시실에서는 한국화 23점, 석봉전시실에서는 서양화와 한국화 51점으로 총 101점이 선보인다.
개관 전시에서는 조선 말기 남종 문인화를 대표하는 화가 소치 허련(1890~1892)과 그의 손자 남농 허건(1908~1977), 방손인 의재 허백련(1891~1977)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남종화의 마지막 거장이었던 아산 조방원(1926~2014)의 한국화와 그에게 사사받은 목운 오견규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여기다 서예가 금봉 박행보, 학정 이돈흥을 비롯해 이들에게 사사받은 남계 이정래의 현대문인화도 더해졌다.
아울러 남도의 리얼리즘을 담아낸 수채화가 거장 강연균, 서양화가 오건탁과 조진호 등 3·5·7·10대 전 광주시립미술관장들의 작품까지 선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담양 담빛문화예술창고 관장이자 화가인 장현우, 광주 남구 한희원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는 서양화가 한희원 등도 포함됐다.
최상준 대표는 미술관에 대한 바람을 잊지 않았다. 앞으로 석봉미술관의 정체성과 관련한 행간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미술관이 내 고향 화순 관내 후학들의 창의와 꿈을 실현하는 장소가 됐으면 해요. 누군가에게는 창의로 꿈을 실현하는데 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창작 활동의 불씨가 되길 바랍니다. 화순군민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깨우고 문화 소양을 채우는 보고가 된다면 더 바랄게 없지요."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