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 흔적 품은 곳… ‘예술 감성’ 깨우네 [대담] 지역 문화예술발전에 앞장 정헌기 ㈜아트주 대표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19년 01월 27일(일) 1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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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의 시간이 지나고, 지금 이곳은 기적 같은 변화가 일었다. 봄이면 수선화가 피고, 여름엔 꽃무릇과 상사화가 흐드러진다. 오월이 되면 백합과 빨간 장미가 아름다움을 뽐낸다. 변화는 이 뿐 만이 아니다. 옛 선교사들이 쓰던 오래된 건물 안에서는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품 활동을 펼치고, 뜻 맞는 이들이 모이면 알찬 전시도 속속 열린다.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이 그곳이다.
지난 12월10일 폐허공간을 복합문화공간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으로 재탄생시킨 정헌기 ㈜아트주(Artzoo) 대표를 만났다.
그와 인사를 나눈 뒤 아트폴리곤 내부로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이 훅 하고 쏟아진다. 통유리로 된 천장에서 쏟아지는 기분 좋은 자연광이다. 이렇게나 멋진 곳이 6·25때 사람이 여럿 죽어나갔다는 둥, 귀신이 나온다는 둥의 흉흉한 소문의 근원지였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여기서 쓰레기차가 스물두대가 나갔습니다. 2014년 봄에 호랑가시나무 창작소가 만들어졌고, 그해 12월에 게스트하우스가 만들어졌죠. 아트폴리곤은 2016년 문을 열었어요.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차근차근 준비한 일들이 가시적으로 속속 보여 지고 있어요. 양림동 주민들조차 외면했던 애물단지가, 이젠 날마다 마실 나오는 동네 명소가 됐으니까요."
이 공간은 호남신학대의 사유지다. 원래 100여년 전 이곳에 머물며 광주 근현대사를 함께 겪었던 선교사들의 사택이었다. 그들이 떠나고 오랜 시간 방치 됐던 이 부지가 정 대표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보기에 이곳엔 무궁무진한 보물들이 깃들어 있었다.
"호랑가시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것이에요. 수령이 400년으로 추정되나, 700살 먹은 호랑가시나무보다 크기가 훨씬 크죠. 게스트하우스 뒤편에 심어진 백일홍은 500년이 됐다고 합니다. 세월을 뚫고 현재에 다다른 것들뿐 아니라, 선교사들이 머물며 심어놓은 꽃나무들, 그들의 손때 묻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차라리 수풀로 우거져, 감춰져 있던 게 감사할 따름이죠. 훤히 드러나 있었다면 이곳도 훼손됐을 거예요. 옛 것을 ‘새 것’으로 대체
하기 좋아하는 게 요즘 세상이니까요."
그의 말처럼 이곳은 다행히 꼭꼭 숨어져 있던 터라, 살아남았다. 정 대표는 유수마 목사 사택을 예술가들의 창작소로, 원요한 목사 사택을 게스트하우스로 각각 꾸몄다.
마지막으로 문을 연 아트폴리곤은 차고로 쓰였던 조그마한 공간인데, 증축해서 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다.
아트폴리곤(Art polygon)은 말 그대로 예술 다면체란 뜻이다. 미술 작품을 내거는 전시 뿐 아니라 공연·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장르의 예술이 펼쳐지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뜻 맞는 기획자들, 작가들과 늘 새로운 시도를 펼쳐 보이고 싶어요. 아트폴리곤은 사실 어디에서 지원을 받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볼 수 있죠. 저는 이곳을 ‘제 소유다’라고 생각 하지 않아요. 아트폴리곤은 열려있는 공간입니다. 모두 함께 같이 채워갔으면 해요."
그는 광주의 젊은 기획자들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실제 아트폴리곤은 ‘2018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 전시공간으로 제안을 받았으나 젊은 기획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느라 거절했다. 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 대신 이곳에서는 광주 기획자 그룹 애니웨어(ANYWARE)의 기념전 ‘물이 되게나 친구여’가 관람객들을 맞았다.
"청년 기획자들, 큐레이터들이 많지만 실상 그들이 전시를 갖는 기회는 적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지원비를 줄 수는 없지만 공간을 내어줄 순 있어요. 비엔날레 기간에 국내외에 청년 기획자들의 시각을 국내외에 노출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 기획했습니다. 늘 더 넓은 시각으로 예술계를 바라보려고 노력해요. 아트폴리곤의 ‘뜻’에 맞는 좋은 기획들을 선보이기 위함이죠."
정 대표는 호랑가시나무 창작소 레지던시 운영에 공을 들였다. 우선 그는 전 세계적으로 천편일률적인 레지던시 운영에서 탈피하려고 애썼다. 창작 공간을 마련해주고, 오픈스튜디오나 결과발표전을 열게 하는 것이 작가에게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를 고민했다.
"왜 레지던시를 하는가, 자문했어요. 1년 남짓 머무는 이 공간이 어떠해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저 이곳이 작가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터치해주길 바랐어요. 그렇게 머문 후엔, 작가적 캐리어를 쌓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결과발표전 대신 개인전을 열도록 해주었습니다."
머물다 간 작가들은 이곳을 ‘기가 센 곳’이라 입을 모은다. 오롯이 작가 본인과 예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렬한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밤이 되면 찾아오는 적막감은 예술적 영감을 주는 제 1의 요소라 한다.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참 좋아하시죠. 사실 이곳의 묘미는 머물러야만 알 수 있습니다. 여기가 몇 년도에 어느 선교사의 사택이었네, 어떤 용도로 사용됐네, 하는 단편적 정보들을 설명으로 듣는다 한들 얼마나 기억에 남을 수 있겠어요. 적어도 하루 이틀 머물면서 그 흔적들을 온 몸으로 느껴보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정 대표는 오래된 것들을 사랑한다. 수풀이 우거진 이곳을 알아본 것도 바로 오래되고, 낡고, 그래서 조금 불편한 것에 마음이 끌리는 그의 취향 덕이다. 세월에 낡은 돌담 하나에도 그 시절의 기억과 흔적이 묻어있다고 믿는 그다.
그래서 아트폴리곤은 물론이고 호랑가시나무 창작소·게스트하우스 등 외형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백 년 전 선교사들이 숱하게 드나들었을 입구며, 외벽 모두 그 시절의 모습이다.
가장 최근에 완성된 공간 ‘글라스폴리곤’의 내부 또한 선교사들의 경비동으로 쓰였던 건물의 목재를 가져다 세워뒀다. 그 아래로는 긴 테이블이 떡하니 놓여졌다.
"누군가는 이곳에 머물고, 몇몇은 책을 꺼내 읽고, 또 이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서 가감 없이 생각을 나누는, 모두 함께 재미난 예술을 펼쳐나가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옛 살롱처럼요."
마지막으로 정 대표에게 이 공간이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이었으면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모두 함께 하는 곳, 잘 공유되는 곳이면 좋겠다" 말한다.
"5년의 시간 동안 하드웨어는 모두 갖추어 두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어떤 그림들이 그려질지는 이제 시작인 셈이죠. 어떻게,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공유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 있다고 봐요. 그 키는 원래 주인도, 운영자도 아닌 이곳을 드나든 이들 모두에게 쥐어져 있습니다. 폐허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애물단지에서 주민들이 사랑하는 명소로 변신에 성공했듯이 앞으로 또한 ‘예술’을 매개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써내려가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2026.10.25 (일) 01: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