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 백 년 ‘톱’ 인생 "톱은 내 삶의 에너지" [화제의 인물] 광주 수제톱 장인 조충제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 2019년 03월 10일(일) 1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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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톱을 만드는 사람이다. 길다란 강철과 촘촘히 날이 선 톱니를 떠올렸을 때, 그 위험한 것을 사람이 직접 만드는 것이라니 영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러므로 ‘수제 톱’이란 말도 영 낯설기만 하다.
양동 닭전머리 입구 광주천변을 천천히 지나다가 ‘대동톱’이란 입간판을 먼저 본다. 가게 안으로는 톱, 펜치부터 망치, 자물쇠, 칼 등 여느 공구상에서 볼 법한 도구들이 즐비하다. 내부를 핑 둘러보는데 조씨가 가게 안 공간으로 안내한다. 안으로 들어서자 선반에는 ‘대동’이란 명패를 단 톱들이 수북하다. 톱날을 보호하는 종이 케이스를 벗겨내자 퍼런 빛 반짝이는 톱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외관만 보면 평범한 상사같지만, 이곳은 톱 공장입니다. 옛날에는 하루에 1000개씩 팔려 나갔어요. 기계화·현대화 되면서 수제 톱을 찾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있지만 제 톱을 써본 분들은 여전히 제 것만 고집해요. 기계 톱 보다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랜 노하우로 익혀진 손맛은 역시 수제 톱을 따라갈 수가 없죠."
조씨는 50여년 이곳에서 톱을 만들어 팔았다. 20대 청년일 때 광주 양동 톱 제조 공장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강철판을 알맞게 자르고 톱니를 찍어내고 날을 세운다. 고되고 어려운 과정을 그는 반 년 만에 습득했다. 처음 하는 일이었는데도 그렇게 재미가 있었다 한다. 그는 "톱 만드는 게 천직"이라 믿었다.
호황이던 시절에는 양동에만 해도 톱 판매상이 대여섯 군데 있었다. 허나 하나 둘 문을 닫아 현재는 그만이 유일하다.
"수공으로 톱을 만드는 곳은 호남에서는 저 밖에 안 남았어요. 전국 곳곳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것도 수제 톱 만드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멀리서 찾아오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게 문을 열어두고 있어요."
가게를 시작한 후 그는 "돈 버는 건 1등 못해도, 문 여는 건 1등 한다"는 결심을 했다. 눈만 뜨면 가게로 나오고 싶어서 자차가 없을 때는 택시비 할증이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이곤 했다. 지금은 차가 있어 언제든지 어느 때고 마음만 먹으면 출근할 수 있다며 웃는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삼남매를 훌륭히 키워냈다. 그의 인생에서 톱이 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동톱상사에는 대톱, 중톱, 소톱, 양날톱, 원형톱 등 100여 종류의 톱이 있다. 톱은 톱날의 두께·크기 등에 따라 각기 쓰이는 용도가 달라진다. 대나무용 톱으로는 대나무만 잘 잘라진다고. 대나무 외 다른 나무를 자르려고 톱질을 하면 힘이 두세 배는 더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조씨는 "사람도, 톱도 제 목적과 쓰임이 있는 것"이라 부연해 준다.
특히 ‘흥부와 놀부’에서 박을 타는 데 쓰이는 ‘탕개톱’은 그의 자랑이다. 전국에서 탕개톱을 직접 만드는 곳은 손에 꼽는다. 또 얼음을 자르는 데 쓰는 얼음톱의 인기도 좋다. 인터뷰 도중 얼음 톱 주문이 들어왔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돈을 벌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새 톱을 만들 일이 생겨 더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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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이 들어오면 미루지 않고 만들어버려요. 한 개고, 열 개고, 톱을 갈고 있으면 근심 걱정이 싹 사라집니다. 다른 일은 한 두 시간 하면 몸에 바로 무리가 오는데, 톱 만드는 일은 예외에요. 뾰족 뾰족 톱니를 가는 일이 저에겐 치유의 시간이죠. 아직도 정말 재미있어요."
인생의 즐거움이 성공한 삶의 척도라면, 그는 엄청나게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여길 수 있었고, 그 업에 평생 종사할 수 있었으므로. IMF때 어려움도 있었지만 잘 지켜냈다. 한 길을 꾸준하게 걸어온 덕에 작게나마 자기 가게로 톱 판매를 이어갈 수 있었다. 세를 내는 자리였다면 요즘의 매출로는 꿈꿀 수 없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톱을 사 가셨던 분들이 수선하러 많이 오십니다. 무뎌진 톱날을 세우고 휘어진 철판을 바로 잡아드리죠. 오늘 오전에도 톱 10개를 가지고 오셨더군요. 톱 수선하는 곳이 없어서 버릴까 싶었는데 여기를 찾아오신 거죠. 다른 곳에서는 못 고치니 버리라 했다고 해요. 제작하는 곳이 아니라면, 수선도 당연히 안 되겠죠. 톱은 수선해서 쓰면 다시 새것처럼 되죠. 오래 쓰는 물건
이라서 정성을 다해 만들 수밖에 없어요."
이전에는 포장지 가운데로 ‘조충재 作’이란 글귀가 새겨져 나가기도 했다.
꼭 그의 이름이 박혀 있지 않아도 그는 제가 만든 톱은 꼭 알아봤다. 그렇게 수선하면서 톱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다고 한다.
"좋은 톱을 만들어서 내보낼 때는 꼭 잘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 같아요.
전국 곳곳으로 나가서 제 ‘쓸모’에 맞게 쓰일 생각을 하면 허투루 만들 수가 없었죠. 주문이 쏟아질 때는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종일 톱을 만들었는데 딱 200개가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바쁠 때도 직접 하나 하나 제 손으로 보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어요. 참 열심히 했죠."
진짜 잘 만들어진 톱은 날에서 푸른빛이 돈다. 원래 강철판은 은빛이지만 정확하게 날을 썰어내면 파란색이 나온다는 것이다. 바닷물은 무색이지만 심해는 푸르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셀 수 없이 많은 톱을 만들었지만 그도 한두 번 경험했을 뿐이다. 기계로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기술’인 것이다.
지금껏 좋아서 잇고 있는 일이지만 수제 톱 만드는 일은 맥이 끊길 위기다.
소위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니 배우겠다는 사람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다. 그마저 문을 닫는다면 수제 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여기다 가게가 자리한 누문동까지 재개발의 영역에 닿으면서 자리를 비워야할지 몰라 근심이다.
이만 하면 오래 했다 싶다가도, 앞으로 10년은 끄떡 없이 톱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다.
"광주시 명장·명인 신청을 해보려고 해요. 제 노력이 깃든 50여 년이 인정받아 수제 톱 명인으로 이름을 올린다면, 본격적으로 제자도 양성하고, 톱 만드는 방법을 전수하고 싶고요. 무엇보다 아무 걱정없이 톱을 만들고픈 마음이에요. 제게 있어 톱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제작해 판매하는 것 그 이상입니다. 톱은 제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이자, 또 앞으로 살아갈 원동력입니다."

2026.10.23 (금) 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