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제70호=박세라 기자)40명의 호른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 섰다. ‘보헤미안랩소디’, ‘타이타닉’, ‘사운드 오브 뮤직’ 등 귀에 익은 영화음악부터 정통 클래식 선율까지. 마흔 대의 호른이 전하는 깊은 울림의 음색은 가히 압도적이다. 관현악에서는 그 역할이 제한돼 있어 전하지 못했던 호른의 매력을 마음껏 뽐낸다.
지역 호른 연주자 20명이 뭉쳐 탄생한 ‘광주호른사운드’(GHS) 이야기다. 2016년 창단한 광주호른사운드는 호른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예술단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들과의 협연 무대를 비롯해 지산유원지에서 펼친 특별 연주회, 1000원으로 즐기는 공연, 유·스퀘어 금호아트홀 무대 등 시민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정통 호른사운드의 매력을 전해 왔다.
광주호른사운드를 이끌고 있는 장현룡 단장은 "호른은 다양한 음색과 폭넓은 음역 등 금관 악기 중에서도 그 소리가 아름답기로 꼽히는 악기이지만, 오케스트라 무대에서는 이를 제대로 보여주기엔 한계는 없다"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따뜻하고, 온화한 음색의 호른 사운드를 선사하기 위해 지역의 호른 연주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호르니스트들이 모여 때에 맞춰 공부하고, 연습해 연주회를 정기적으로 올리는 예술단은 전국에서도 광주호른사운드가 유일하다.
창단 연주회에서 25명의 호른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 섰다. 오케스트라 무대에서는 최대 8대의 호른이 연주하지만, 이들의 무대엔 그 한계는 없다.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숨’들이 모여 앙상블을 이룰 때의 감동은 호른이라는 악기가 생소한 이들에게마저 감동을 안긴다.
"호른앙상블의 매력은 단일악기의 앙상블에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4옥타브에 달하는 넓은 음역대와 풍부한 소리는 마치 파이프 오르간과 같은 묵직한 울림을 전하죠. 특히 20~40명의 연주자가 함께 내는 호른의 소리는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웅장함으로 관객들에게 특별함을 선사합니다."
호른은 내쉬는 호흡의 속도, 입술의 모양, 뱃심에 따라 표현되는 음색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아름답고 정확한 소리를 내기가 그만큼 까다롭다는 이야기다.
숨을 훅 불어 넣으면 길이 6m에 달하는 기나긴 관을 지나, 신비로운 음색으로 뿜어져 나온다. 더없이 편안한 소리다. 모차르트의 호른협주곡이 태교음악으로 유명한 것도 호른이 주는 소리의 편안함 덕이다.
"호른은 오케스트라에서 전체 악기의 소리를 모으고 감싸는 역할을 합니다. 현악기와 관악기, 고음악기와 저음악기를 연결하는 가교가 돼 주죠. 금관악기 중에서 호른은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먼저 도입, 연주된 악기입니다. 클래식은 물론 재즈·대중가요 등에도 다양하게 연주되고 있죠. 무엇보다 호른 독주의 아름다움은 차이콥스키 5번 교향곡 2악장에서 잘 표현돼 있습니다."
호른은 오케스트라에서 꼭 ‘엄마’와 같은 역할을 한다. 무엇이든지 포용하고 받아주면서 부드러운 배경음악을 만들어준다. 악기와 악기는 물론, 관객과 무대의 사이를 채워 넣어주는 공기와 같다. 너무나 당연해서, 있을 때는 모르지만 빠졌을 때 확 티가 나는 게 바로 호른이다.
"호른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음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포지션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정확한 음감을 가지고 연주해야 하죠. 또 긴 관을 통해 소리가 돌아 나오므로, 연주 첫 시작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한 발 앞선 집중력과 연주의 몰입도가 요구됩니다."

단원들이 함께 연주회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

연주자들이 저마다 가지는 풍부한 음악적 표현력 또한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주요 포인트다. 어떤 악기든 마찬가지겠지만 다른 악기와 ‘한 호흡’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기 소리 뿐 아니라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주법이 까다로운 탓에 완벽한 하모니를 표현해 냈을 때 그 기쁨도, 보람도 더 클 수밖에 없다. 호른 연주자들이 꼽는 호른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호른은 생소한 악기처럼 느껴지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호른은 교향곡, 영화음악 등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악기 자체는 잘 모르더라도 소리를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이유다.
광주호른사운드는 깊고 풍부한 호른 소리에 잘 어울리는 성악곡 레슨도르마, 타임투세이굿바이, 넬라판타지아, 문리버 등을 비롯해 타이타닉·인어공주·캐리비안의 해적 OST, 시인과 농부 서곡, 천국과 지옥 서곡,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등 정통 클래식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 호른사운드의 무대를 접한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하세요. 호른이란 악기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데다, 그 호른만으로 40명의 연주자가 오른 적도 있으니까요. 어떤 멜로디가 흘러나올지 감이 안 오시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면 바로 표정이 달라집니다. ‘아~ 그 소리!’ 하고 금방 호른의 음색을 알아채시는 분들이 많아요. 악기 본래의 따뜻함과 편안함이 주는 매력 덕분이죠."
광주호른사운드가 친숙한 멜로디의 레퍼토리 개발에 힘을 쏟는 이유다. 이들은 지난 2월13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에서 제5회 정기연주회를 펼쳤다. 20여명의 호른연주자가 무대에 올랐고, 피아노, 오보에, 플루트, 바이올린의 선율이 더해져 관객들에게 귀 호강을 선물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호른 솔로곡과 피아노 연주가 어우러지는 무대로 꾸몄습니다. 총 14곡의 호른 작품을 한 무대에서 보여주었죠. 특히 전 단원이 함께 한 피날레 곡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관객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은 무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광주호른사운드의 꿈에 대해 물었다. 장 단장은 "별다를 것 없이 우리의 활동이 지금처럼 꾸준히 이어졌으면 한다"는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광주호른사운드의 영어 약자 ‘GHS’은 컴퓨터 자판에서 ‘혼’을 쳤을 때와 같아요. 혼을 다해 연주에 임한다는 단체의 지향점이 숨어있죠. 창단할 때 그 마음 그대로 단원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널리 널리 공유하고 싶은 게 저희의 진심이었고, 그 마음들이 모여 첫발을 뗄 수 있었던 것이죠. 호르니스트들만이 모여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단체가 유일무이한 만큼 앞으로 광주 음악사에 긍정적인 자취를 남기고 싶습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