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제77호=정채경 기자)전국적으로 폐산업시설이나 유휴공간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방치됐던 공간들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새 옷을 입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예술가들이 힘을 보태 공간을 만든다거나 개인 혹은 향토기업이 뜻을 품고 열기도 하는 등 운영주체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공간들은 역사성과 장소성을 기반으로 저마다 독자적인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가 8월28일부터 30일까지 실시한 현장연수에서 견학했던 문화거점 공간을 소개한다.

책마을해리는 폐교를 개조해 도서관을 특화한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킨 경우다. 폐교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의 전신은 1939년 개교한 나성초등학교로, 2012년 문을 연 뒤 7년째 책마을해리를 일구고 있는 이대건 촌장의 증조부가 세웠다고 한다. 저출산과 탈농촌화로 인해 2001년 폐교하자 이 촌장이 2006년 이곳을 사들여 운영했다. 이 촌장은 10여 년 동안 출판업에 종사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이곳에서 아낌없이 풀어내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 를 선보이며, ‘읽고, 하고, 쓰고, 펴내는’ 복합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기증 받은 17만여 권 중 3만여 권의 책으로 교실을 채운 ‘책숲시간의 숲’을 비롯해 특정 공간에 갇혀 책을 읽을 수 있는 ‘책감옥’, 책과 기념품을 판매하고 교류할 수 있는 ‘마을책방 해리에서’ 등으로 구성됐다. 또 인쇄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프레스기가 전시되고, 판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
방문했을 당시 뒷 마당에서는 5·18 이야기를 쓴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씩스틴’ 원화전이, 따로 마련된 전시 공간 에서는 정병규 출판 디자이너의 한글포스터와 북디자인 전이 각각 열리고 있었다.
책마을해리는 출판사도 운영한다. ‘책마을해리’와 ‘도서 출판기역’, ‘나무늘보’ 등이 그것으로, 동네 할머니부터 어린이와 교사, 주부 등의 이야기를 발굴해 책을 펴낸다. 현재까지 여기서 출판된 책은 90여 권에 달한다. 다양한 대상과 이들의 서로 다른 생각이 책에 투영되다 보니 소재가 마를 날이 없다는 전언이다. 7년째 운영되고 있는 만큼 캠 프 운영과 책 출판을 통해 수익금을 마련하는 등 자생력을 찾고 있다.

팔복예술공장은 방치된 폐공장을 활용해 현대미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다. ‘전주’하면 떠오르는 ‘전통문 화의 도시’라는 이미지와 함께 ‘현대미술’을 아우른 역할을 하고 있다.
‘썬전자’(현 쏘렉스)라는 카세트테이프 공장이 1979년 설립됐다가 시대 변화와 맞물려 1989년 폐업, 25년 동안 방치되다 지난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 산업시설 문화재생 지원사업’에 선정돼 조성됐다. 현재 전 주문화재단을 주축으로 운영 중이다.
우뚝 솟은 굴뚝이 예전에 공장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세 개 동으로 구성된 팔복예술공장은 과거 공장 건물을 그대로 활용해 2018년 3월 가장 먼저 문을 연 A동과 교육센터 인 B동, 다목적 공간 C동으로 구성됐다. A동과 B동 사이 에는 붉은 컨테이너가 마련돼 관람객이 쉴 수 있는 책방이 마련됐다. B·C동은 공사 중이었다. 2층으로 구성된 A동은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레지던시 공간을 비롯해 교육장·전시장·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
외벽과 지붕, 바닥, 철문 등에서 기존 건물의 자재를 그대로 활용해 과거의 기억과 현대미술의 아우라를 조화롭게 품어냈다.
이곳은 당초 팔복동 주민들과 함께 1년 여 동안 매주 모 여 공간의 콘셉트를 고민했다. 현재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바리스타와 전시장지킴이 등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A동 1층에서는 이다희 작가의 ‘음악을 번안하는 방법’ 이라는 기획전이 진행 중이었다. 올해 신설된 프로젝트 레지던시에 참여 중인 이 작가의 2006년 작부터 신작까지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음악과 회화의 연관성을 판화 기법과 영상 상영, 바느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해 넒은 스펙트럼을 지닌 작업관과 방식을 보여줬다. 이어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당시 공장에 근무했던 노 동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진숙 작가의 ‘하루’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400여 명에 달했던 여공들이 사용했던 네 칸짜리 화장실을 그대로 활용, 테이프로 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가수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노랫말을 적는 등 과거의 기억을 풀어냈다. 이어 자연물과 구조물 등이 어우러진 전시가 옥상으로 이어졌다.

중학교 체육관으로 쓰였던 공간이 책으로 가득 채워진 도서관으로 변모했다.
2016년 구암중과 구암여중이 통합되면서 면적 2666㎡ (806평)의 2층 규모 건물이던 구암중 체육관이 도서관으로 리모델링돼 지난해 4월 개관했다.
밖에서 본 외관은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물결 형태의 책장이 지혜의바다라는 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 너머로 원화전 등이 열리는 전시서가 가 운영되고, 동화방과 레고방, 웹툰방 등 독서와 체험이 연계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다. 예전 주차장 경사를 살려 꾸민 시청각실 등 다목적 공간도 두루 갖추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서울 별마당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탁 트인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복층으로 구성된 이곳은 온 벽이 기증 도서 4만여 권을 포함한 10만 여권의 도서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만화카페에 온 듯한 벌집 모양 독서공 간과 열람 테이블 등이 비치돼 있고, 한 쪽에는 카페테리아가 마련돼 음료를 마시면서 앉거나 누워서 독서를 할 수 있다.
‘도서관’이라는 기능에 충실한 복합문화시설로 음악회 와 연계 체험 등을 아울러 개관 1년 만에 지역민들에게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두번째 지혜의 바다가 올 연말 김 해지역에 개관을 앞두고 있으며, 중부권인 마산, 동부권인 김해에 이어 세 번째 지혜의바다는 서부권에 들어설 전망 이다.

원도심 골목 상권 속 빈 점포에 지역의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면서 창동예술촌이 형성됐다.
1960~1980년대 마산 창동 원도심의 전성기가 지난 뒤, 1990년대 후반부터 마산수출자유지역이 쇠퇴하면서 상권 기능을 상실한 골목에 창원시가 도시재생사업을 추진, 2012년 부터 운영 중이다.
창동예술촌은 현재 60여 개의 점포로 구성됐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입주한 55개소와 공 용공간 5개소가 있다. 사진과 회화, 공예 등 미술 분야 예 술인들이 입주해있다. 7년 동안 입주한 작가들이 계속 작업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제 막 입주한 작가까지 다양하다. 예술가들이 힘을 모아 운영을 도맡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서인지 떠나간 젊은이들이 돌아와 상점이 문을 여는 등 활력을 되찾았다는 후문이다.
인근에는 오동동 문화광장과 3·15 의거 발원지를 비롯해 ‘250년 된 골목’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창동예술촌 골목은 창동 아트센터를 중심으로 문신예 술과 마산예술 흔적, 에꼴 드 창동 등 세 테마로 이뤄져 있다.
상상길 입구를 따라 걸으면 가장 먼저 에꼴 드 창동골목 이 발견된다. 에꼴 드 창동은 입주작가들의 작업공간과 공 방, 상점들이 즐비해 있다. 예술가의 창작 공간과 상가를 융합된 공간들을 창문 너머로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마산 예술 흔적 골목에 도착한다. 마산의 옛 거리를 재현한 이곳의 벽화와 오래된 점포를 보고 있노라면, 1960~1970년대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마산의 추억과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골목 여행의 진수는 문신예술 골목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추상 회화 및 조 각가 문신(1923~1995)을 조명한 곳이다.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독일과 스위스 등에서 작품활동을 하다 귀국해 마산에 문신미술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지역이 그에게 주목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자화상이 자리한 벽화를 지나 문신예술 골목을 등지고 걸어 나오면 1955년 개업해 60여 년 동안 운영돼온 학문당이 맞아준다. 골목을 지나오면 다 시 ‘250년 된 골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는 부산의 향토기업 고려제강이 남다른 의미가 깃든 공장 부지를 지역민들을 위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공장을 의미하는 ‘Factory’와 1963이라는 창립연도를 더한 이름에서 공간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9900㎡면적에 1963년 세워져 45년간 가동한 첫 공장 이 멈추자 건축가 조병수씨의 손길을 더해 옛 공장의 흔적을 고스란히 살린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부지는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공장 용지의 형태와 골조, 바닥 등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F1963이라 쓰인 철로 된 대문을 지나면 도심 속 힐링공간이 펼쳐진다. 길쭉 길쭉 높이 솟은 맹종죽 숲을 걸으면 메인 전시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광장 형태로 구성된 이곳은 식음료 코너, 예스24와 같은 상업공간과 전시관 및 공연장 등 문화공간을 겸한다. 그 옆으로는 고려제강 본사가 자리한 가운데 고려제강 기념관에서는 와이어의 역사와 쓰임새, 주요 생산품목 등 이 안내돼 있고, 유리온실과 달빛마당을 지나면 미술과 건축, 사진, 음악 분야 도서들이 감각적으로 배치된 도서관 이 나온다.
이어 천장의 목재와 공장 특유의 질감을 지닌 벽을 고스 란히 살린 석촌홀에서는 부산문화재단의 기획전과 F1963 의 기획전이 각각 6개월씩 열리고, 옆으로는 국제갤러리 가 있어 국내외 미술인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와이어를 제조하는 기업이어서 구조물을 연결하거나, 건물을 지탱하는 것을 와이어로 꾸며 인상깊었다. 마지막 동선에는 테라로사 카페가 자리해 있다. 기존 공 장의 오래된 철판으로 만든 테이블과 빈티지한 소품들로 인해 공장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양한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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