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 대신 그림의 본질에 가닿도록 파고들 것

[남도예술인] 서양화가 조근호
33년째 전업화가로 ‘도시의 창’ 깊이있게 천착하며 작업
"현재 화단 쉬운 그림 늘어 퀄리티 저하" 아쉬움 피력
단순화 몰입 시대의 생각 투영…5월 제24회 개인전도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02월 03일(월) 19:18
(2020년 2월호 제81호=고선주 기자)그의 작업실은 예술의거리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웬만한 화가들은 모두 알 고 지내지만 그들의 작업실까지는 잘 기억해낼 수 없다. 의외의 장소에 작가 작업실이 있다. 이번 조명에 나선 작가 역시 필자와는 20여 년의 인연을 맺어오고 있지만 그의 작업실이 예술의거리 인근 낯익은 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긴 시간동안 알고 지낸 것에 비해 그에 대한 심층취재는 단 한번도 시도해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올해 본보 신춘문예 삽화 및 경자년 축화를 청탁한 것을 계기로 그를 한번 조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1월3일 오전과 오후 두차례에 걸쳐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두차례 방문한데는 여러 스케줄 때문이었다. 작업실에 들러 신춘문예가 수록된 신년특집호 신문만 전달한 뒤 퇴실했다가 오후 늦게 다시 방문해 취재를 진행해야 했다.
그의 작업실은 화이트톤이 지배한다. 작업실의 색감이 흰색이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깔끔하고 차분해지는 듯했다. 더욱이 무등산이 손에 잡힐 듯 막힘없어 조망이 너무 좋았다. 작업실의 전반적 환경은 작가의 성격과 닮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전북 순창 출신 서양화가 조근호씨의 이야기다. 그의 작업실은 중앙로 삼호센터 9층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한지 20년을 넘어서고 있다. 그가 한창 작가로서의 일정 반열에 올라서는 데 함께 동고동락한 공간이다. 그는 이곳에서 하루 종일 작업과 씨름한다.
20년이 흐르는 동안 그도 사십대에서 육십대로 바뀌었다. 치열하게 작가로서 한길을 걸어오는 동안 그의 고뇌가 서린 곳이 현재의 작업실인 셈이다. 화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연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작가 또한 마찬가지다.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화가로 데뷔해 활동하기까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재학시절 담임 선생님이 꿈 이야기를 해보라고 해서 꿈이 화가라고 밝혔는데 꿈이 현실적이라며 칭찬을 듣게 된다. 그러면서 조금씩 화가의 꿈은 그의 내면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그림을 좋아해 자연스럽게 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당시 연필이나 종이가 태부족한 시대였다. 어린 그에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운동장이나 마 당 등 빈 공간에 낙서하는 식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림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다른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다 선생님께 혼난 적도 여러 차례였다. 더욱이 순창이 고향이 다보니 그림을 제대로 배우고 할만한 곳은 없었다. 중학교에 미술부가 있었으나 이름 뿐이었지 미술부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는 못했다.
처음에 부친은 미술을 반대했다. 그의 부친도 서울 소재 미술대학에 입학했으나 6·25전쟁 중이어서 서울이 위험한데다 장손이 그림을 그려서야 되겠냐는 반대 때문에 미술을 접어야 했다. 이후 광주의 한 대학 건축공학과로 편입해 공부했다. 미술에의 한이 있었지만 자신의 좌절 경험이 있었던 관계로 자식은 미술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반대한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그는 고등학교 때도 미술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는 고3이 되어서야 겨우 미술을 목표로 세우고, 광주로 와서 재수를 거친 뒤 미술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원을 거쳐 사회로 진출한 그는 안정적 생활을 보장하는 교직 등이 있었으나 화가로서 의 삶을 위해 전업작가의 길을 기꺼이 선택한다.
굳이 프로작가로서의 삶을 언급하자면 1987년 무렵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 그는 올해 33년째 전업화가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가 프로작가의 첫 출발지점으로 잡는 1987년 전후 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인간과 자연’에 천착한다. 이때는 혼합재료를 이용해 작업을 벌였다. 2000년대로 넘어와 2002년 광주신세계미술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면서 ‘도시풍경’이 본궤도에 오른다. 이때 도시풍경으로 수상을 해서다. 그러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 그룹활동을 통해 참여한다. 그뒤 개인활동을 위해 그룹을 해체하고 도시풍경에 더욱 몰입한다. 현재와 같은 ‘도시의 창’은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시작됐다. 처음에 일반 도시풍경을 추구했지만 창을 통해 풍경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한 것이다. 한때는 담양 창평 광덕리 폐교에 들어가 석분작업을 펼치던 때도 있었다. 물론 현재의 작업실로 들어오면서 석분작업이 쉽지 않아 유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유화 작업은 도시 풍경을 더 깊이있게 천착하게 만들었다. 유화 작업 한 가운데로 단순화의 기법이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면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곡선에서 직선으로 방향을 잡았고, 곡선마저 단순화를 시도한 곡선으로 변화를 가했어요. 앞으로 지향점은 더 단순화시키는데 주력할 겁니다. 단순화된 것이 결국 직선이니까 직선이 더 화폭에서 눈에 띄는 것이겠죠. 아마 단순화하면 거기에 힘이 실리고 예리하게 보일 거예요."
그는 오랫동안 전업화가로서 활동을 해오면서 요즘 들어 사회에서 필요한 예술가보다 필요이상으로 예술인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전업화가로서의 길을 결정한데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무렵인데다 그때 미술경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1997년 IMF가 터지면서 컬렉터들의 생각이 변했고, 미술품 투자와 관련해 순환이 되지 않은 것을 목도해야 했다. 컬렉터들이 미술품에 대해 현금화를 많이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미술계는 계속 하향곡선을 그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소신은 예술가가 돈에 의해 좌우돼서는 안된다는데 방점을 찍는다. 꿈이 먼저 인 까닭이다. 앞서 언급했듯 화가의 입문과 관련해 특별한 과정이 없다보니 화가의 배출 루트가 다양해진 대신 그 깊이는 더 앝아졌다는 생각이다. 문화센터를 거쳐 화단에 나오거나 교직과 다른 업종에 종사하다 퇴직 후 화가로 활동 하는 사례가 더더욱 많아졌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화가들의 작품 깊이를 접할 수 없어요. 지금 혼재돼 있는 것 같습니다. 일례로 많은 아트페어가 있는데 실력있는 좋은 작가들을 컨택해 출품돼야 하는데 작품만 팔리는 작가들이 컨택되고 있는데다 작가들 부스를 사고 파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어 문제죠. 제대로 된 작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평론가의 평론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판단하는 등 비전문가들이 전문가를 평가해버리는 형국이 벌어지고 있는 점도 문제예요. 여기다 꽃이나 애니메이션 등 쉬운 그림이 많아지는 건 퀄리티가 떨어지고 방향성이 모호 해지고 있다는 의미로 보면 돼요."
이어 그는 현재의 작업 ‘도시의 창’과 관련해 단순화의 사유에 대해 힘줘 말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이 도시잖아요. 사람들이 덩어리가 돼 살아가는 등 여러 사람이 모여살다 보니 생각과 모습, 직업이 다양하게 나타나죠. 저는 화면구성에서 이분법적 구성을 하고 있는데 도시건물을 비롯해 형태성을 달리하는 조형감각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핵심에는 단순화가 숨겨져 있어요. 창을 통해 현시대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을 담아내는 한편, 창 안팎에서 바라보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데 비중을 두고 있죠. 때로는 카메라 줌처럼 밀고 당겨서 조망도 하구요."
그의 창 안팎의 사유는 안을 보는 내용과 밖을 보는 내용의 격차가 나타나지만 궁극적으로 시대의 생각을 그리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희망과 꿈을 주는 작가를 지향하면서 향후 계획을 언급했다.
"제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진실되게 투영하는 화가로 대중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화가로 남고 싶습니다. 오는 5월에 광주 양림미술관에서 스물네번째 개인전이 예정돼 있는데 저는 계속 단순화시키는 작업을 표방할 거예요. 군더더기를 털어내면서 생각의 깊이를 더한 단순화에 주력할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로 이해하면 됩니다. 또 유행보다는 그림의 본질에 가닿도록 더 깊이있게 파고드는 작업을 펼칠 겁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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