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을 찍고 잘 돌아가는 것 역시 삶의 여정이리라

[문득 여행] 전북 진안 마이산
금당사·탑영제·탑사·은수사·324 계단·천왕문 등 답사
탑사 머물며 돌탑·섬진강 발원지 용궁 둘러보며 불공
천왕문 올라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의 영묘한 기운 느껴

전라도인 admin@jldin.co.kr
2020년 06월 04일(목) 03:53
(2020년 6월 제85호=고선주 기자) 날씨가 흐릿하다. 전날 비가 내려 떠나지 못했던 여정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고속도로 통행이 비교적 여유롭다. 오늘 고속도로를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이유는 문득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도 있지만 톨게이트에 랜드마크가 기대되는 폴리 작품이 설치됐기 때문이다. 5월8일 오후 시연회를 열고 본격 가동에 들어간 광주폴리Ⅳ(관문형 폴리)인 ‘무등의 빛’ 작품이 궁금했다. 따로 시간을 내서 가보지 못해 아쉽던 차에 짧지만 무등산을 형상화한 작품을 접할 수 있어 행선지를 향해 가는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했다. 순천 남원 방향으로 핸들을 꺾어야 했는데 휴게소에 쉬엄 쉬엄 쉬어가기로 하고 ,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했다. 정읍과 김제 전주 삼례를 지나 장수 임실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광주방향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진안으로 가는 여정은 추천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돌아가는 코스여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순천과 남원 방향으로 가면 1시간 30분 전후면 가능한 코스다. 그러나 전주를 끼고 돌아가는 코스는 대략 30분 이상이 더 소요되는 듯했다.
하지만 여행이 꼭 실용적일 필요없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왜냐하면 길을 잘못 들어 진주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여행이어서다. 무심코 포기했던 곳이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 여행이지 않을까 묻는다.
장수 방향으로 접어들면서 평야 지대보다는 산악 지대가 쉼없이 펼쳐진다. ‘무진장’ 힘들다는 표현을 일상 생활 속에서 간간이 쓴다. 이 무진장이 무주와 진안, 장수의 첫 글자를 차용해 만들어진 단어다. 호남 속 강원도 같은 곳이다. 그만큼 험한 지역이다. 그래서 이 지역을 묶어 ‘무진장’으로 부르고, 힘듦을 대체하는 단어로 즐겨 사용된다. 이번 문득 여행지는 전북 진안 마이산(馬耳山)이다. 진안마이산 휴게소에 잠시 들러 주변 풍경을 보니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손에 잡힐 듯 거대한 자태(?)로 다가왔다. 날씨가 흐릿해 아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 위용을 뽐내는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암석으로 치솟은 산의 형태는 독특하고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워 마치 중국의 장가계나 원가계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또는 한국 풍경이 아닌, 중국 풍경을 접하는 듯하다, 전북도립공원인 마이산은 두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이고, 서쪽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암마이봉은 해발 687.4m이며, 숫마이봉은 681.1m에 달한다. 안무가 낀 날 멀리서 보면 마치 무엽지 속에서나 접할 수 있는 곳 같다.
방문객들은 대개 북부주차장과 남부주차장으로 접근하는 것이 관례다. 탑영제 쪽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은 남부주차장을 이용하고, 사양제 쪽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은 북부주차장을 이용한다. 남부주차장과 북부주차장의 중간 쯤에 탑사가 자리하고 있다. 탑사는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다. 마이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돌탑의 영묘함이 서린 탑사 답사를 필수 코스로 잡는다.
이번 여정에서 필자는 남부주차장 방향에서 등산을 하기로 했다. 남부주차장에서의 맹점은 아주 선명한 말의 귀 모양을 조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멀리서 보이는 웅장한 자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북부 방향이나 인접 거리보다는 멀리서 조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여정에서 제일 아쉬운 것이 등산을 끝내고 내려왔을 때 어두워져 북부 방향 등으로 이동을 하지 못해 말의 귀 형상을 부족함없이 조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신 그 어떤 때보다 샅샅이 훑었다는 점은 만족할 만하다. 남부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의 가로수길(벚꽃길)은 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자연이 방문객들에게 내어주는 아늑함이 더없이 좋았다.

주차장에서 상가거리를 지나 금당사를 거쳐 탑영제를 끼고 돌아 오르막 산길을 한참 오르면 탑사가 자태를 드러낸다. 탑사는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쭈빗쭈빗 머리를 쳐든 돌탑과 겨울철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섬진강 발원지 용궁 등이지 않을까 싶다. 상식적으로 보면 인간의 힘으로 돌탑을 쌓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어떤 바람에도 100년 넘게 쓰러지지 않고 있다고 하니 신비롭다. 보이지 않는 영묘한 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남부 방향으로 등산을 하면 상가거리∼금당사∼탑영제∼탑사∼은수사∼324 계단∼천왕문 코스를 밟을 수 밖에 없다. 탑사는 수년전에 방문한 곳으로 당시의 기억이 워낙 강렬했기에 그 기억을 맞춰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았기에 쉽게 기억을 복원할 수도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탑사는 돌탑으로 유명하다. 이 돌탑은 이갑룡이라는 도인이 1884년부터 1914년까지 30여년 간 쌓았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대략 80여기 탑이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천지탑, 일광탑, 월광탑, 중앙탑, 용탑 등 각각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가파른 위쪽에 자리한 대웅전은 다른 사찰에 비해 협소하기는 하지만 불공을 드리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이왕 온 김에 삼배를 올리기로 하고,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건강하게 해달라, 나쁜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달라, 회사 생활 힘들지 않게 해달라 등등 마음 속으로 수없는 기도문을 작성했다.
대웅전을 끼고 올라가면 오뚝 솟은 두기의 돌탑과 조우할 수 있다. 뷰 포인트같은 곳으로 탐방객들은 셔터 누르는 소리가 분주하다.
마이산 탑사는 CNN 선정 ‘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한곳으로 뽑혔으며, 한국관광 100선에 3회 연속 선정됐다. 또 세계 최고 권위 여행 안내서인 프랑스 미슐랭 그린가이드 별 3개(☆☆☆) 만점을 획득했을 만큼 절경을 이루고 있다.
초장부터 가파른 계단의 힘듦을 느낀 방문객들은 탑사만 둘러보고 가는 우를 범한다. 하지만 오기가 발동했다. 일전에 왔을 때 가보지 못한 곳을 모두 둘러보기로 했다. 욕심이 동했다. 탑사를 끼고 왼쪽에 끼고 산길을 오르자 매표소가 나왔고, 매표소를 지나자 비구니 사찰인 은수사가 나왔다. 은수사 경내를 둘러본 뒤 324 계단을 타고 천왕문을 향해 올랐다. 은수사 대웅전 뒤로 솟구친 거대한 숫마이봉의 위세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압권이라 할 밖에 없었다. 은수사는 이성계의 숨결이 깃든 사찰로 천연기념물 제386호 청배실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이성계가 심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정신을 수습하고 324 계단 하나하나를 밟아 오른다. 간간이 운동을 해왔지만 한참 오르자 목이 찢어질 정도로 숨이 가빠졌다. 아마 중간에 두세번을 쉰 뒤 천왕문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천왕문은 남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능선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곳에서는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을 타고 어느 정도 오를 수 있다. 천왕문에서 숨을 돌린 뒤 가파른 돌계단을 150m 올라야 만날 수 있는 화엄굴을 올랐다. 324개의 계단을 타느라 이미 지친 몸은 더욱 파김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화엄굴을 둘러보고 천왕문으로 돌아와 숨을 돌린 뒤 암마이봉 등정을 했다. 암마이봉은 계단이 놓인 곳까지만 올랐다. 더이상 오르다가는 하산이 걱정이 되어서다. 더욱이 해도 이미 기울어 있었다.
발이 후들 후들 떨려왔다. 종아리는 심하게 당겼다. 몸을 다잡고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떠나오면 반드시 다시 왔던 길을 밟고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삶은 하산처럼 왔던 길, 다시 밟으며 되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정점을 찍고 잘 돌아가는 것 역시 삶의 여정이리라. 마이산 산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지금 잘 돌아가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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