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변치 않고 그대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있었다 [문득여행] 함평 돌머리해수욕장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2020년 07월 05일(일) 1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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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이고 성인이 된 지금 서해안 해수욕장 풍경은 똑같다. 해수욕만 하
는 것이 아니다. 먹고 마시는 일쯤이야 전국 어디를 가나 공통된 문화여서 이를 논외로 치고 접근해보면 서해안 해수욕장은 심심치 않다. 어디를 가나 뭔가를 줍고, 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갯벌로 생겨난 문화도 많다. 머드축제 역시 갯벌로 기인된 것이다. 충남 보령 같은 곳은 아예 머드 축제를 내세워 국내외에 이미 입소문이 나 있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갯벌은 서해안에 안겨준 보물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영광 가마미와 무안 톱머리, 이 두곳에 이곳을 끼워넣으면 서해안의 이름있는 해수욕장은 다 나열한 셈이다. 그런데 이 두곳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 곳으로, 광주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다. 40여㎞에 불과하다. 그곳은 전남 함평읍 석성리에 소재한 돌머리해수욕장이다. 돌머리해수욕장은 오래된 곳 중 하나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도 들어봤던 해수욕장이기 때문이다.
가는 도중 오래된 내비게이션이 ‘사고 아닌 사고’를 쳤다. 업그레이드가 안되다 보니 농로로 안내하는 바람에 농촌의 가공되지 않은 속살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행운이었다. 지그재그로 진행하다 다시 2차선 아스팔트 도로와 만났다. 그대로 달려 돌머리에 도착했다.
해수욕장 명칭은 마을 이름과 깊은 연관이 있다. 돌머리 해수욕장이 자리한 마을은 석두(石頭)다. 육지의 끝이 바위로 돼 있어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물이 빠지면 광활한 평야 같다. 드넓은 모래사장을 거닐 수 있는 여유를 구가할 수 있다. 완만하게 진행되다 보니 가족나들이객들에 안성맞춤이다. 썰물 때는 아이들과 함께 조개 등 바다 생물들을 잡아보며 유익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해수욕장 규모는 백사장 길이가 1Km, 너비가 70m로, 석두마을 서쪽 끝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서해안치고는 비교적 바닷물이 맑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수심이 얕아 광활한 평야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다 해변 뒤편에 울창한 곰솔숲까지 자리하고 있다. 곰솔숲을 지나쳐 언덕 계단을 올라가면 주차장이 나오고 오토 캠핑카들이 바다를 향해 줄지어 있다.
다른 해수욕장에서 보기 힘든 인공 해수풀장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이는 이곳이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썰물 때를 대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원두막은 해수욕장 크기에 비해 잘 갖춰져 있다. 일정 비용만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다. 숲 속을 따라 펼쳐져 있어 동남아 풍경을 살짝 느껴볼 수 있다. 워터파크로 보기는 민망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미니풀장(인공수영장) 역시 갖춰져 있다. 시설이 조금 보완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미니풀장을 지나면 정자와 조명이 얹혀진 돌탑, 함평만생태보존비를 만날 수 있다. 역광으로 사진을 찍으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기도 하다. 사진 몇 장을 찍고, 해수욕장 끝자락에 자리한 전망대에 오를 수 있었다. 소라나 고둥 등 바다생물을 형상화한 듯한 이 전망대는 독특한 모양 때문에 눈길이 갔다. 해안이 돌아나가는 경계에 자리한 전망대 계단을 타고 위로 오르면 두루 조망할 수 있다. 썰물 때보다는 밀물 때 더 운치가 있어 보일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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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수욕장의 랜드마크는 따로 있다. 모래사장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바다를 향해 갯벌 위를 미끄러져 들어가는 듯한 갯벌탐방로는 그냥 낮은 데크와는 달리 사람 키보다 훨씬 높게 놓여 있어 답답하지 않다. 길이는 405m에 달한다. 아쉬운 거리지만 걸을만하다.
갯벌탐방로를 거닐며 시원한 바다 바람을 쐬면서 걸을 수 있어 잠시나마 여유를 구가할 수 있다. 갯벌탐방로 중간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뷰 포인트가 있다. 갯벌탐방로 끝자락에는 원형광장처럼 돼 있고, 조금 앉아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가 비치돼 있다. 밀물 때든, 썰물 때든 대개 운치가 있어 보인다. 바다를 향한 갯벌탐방로가 없었다면 해수욕장이 다소 심심할 뻔했다. LED 조명까지 갖추고 있어 저녁에 운치를 더한다는 후문이다.
이와함께 시기를 잘 맞춰서 가면 돌머리해수욕장과 주포한옥마을 민박촌에 갖춰진 핑크뮬리까지 구경할 수 있다.
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보낸 뒤 그냥 돌아간다면 후회할 수 있다. 반드시 해안 누리길의 하나인 돌머리해안길을 돌아봐야 한다.
함평의 해수찜 마을로부터 돌머리해안까지 누비며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돌머리해안길이 잘 닦여져 있다. 둘레길이든, 올레길이든 바다 바람을 맞으며 걷기에도 더할나위없이 좋은 곳이다. 돌머리해안길은 안내 이정표의 문구 한줄이 모두 압축해놓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해수찜과 호남가로 주유천하 하는 길’이 그것이다
이곳이 해수찜으로 유명한 곳인데다 ‘함평 천지 늙은 몸이…’로 시작하는 판소리 단가 ‘호남가’(湖南歌)의 고장인 까닭이다. 여기서 주유천하(周遊天下)는 천하 각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말한다. 주유천하 하기에 적격이라는 의미다.
해수찜마을로부터 돌머리해수욕장까지 구간을 걸으며 모처럼 여유를 찾아보는 것도 힐링여행이 될성 싶다. 이 구간은 함평만이 자리한 곳으로 해수찜마을에서 출발해 주포, 주포 한옥마을, 민박촌길, 갯벌체험장을 거쳐 돌머리해안길에 이른다. 7.6㎞에 달하는 구간으로 성인 기준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카메라에 풍경을 담기 위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해안길의 정취를 느껴볼 수는 있었다. 다만 취재의 성격이 강하다보니 직접 바다체험을 못해봤다는 점과 노을로 유명한 이곳 노을을 눈에 담아보지 못한 채 떠나와야 했던 점은 두고두고 아쉬울 듯하다. 광주에서 머지 않는 곳에 자리한 만큼 가까운 시일 안에 하루를 이곳에서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머리해수욕장은 유년의 기억을 펼칠 수 있는 기회였다. 유년 시절 봤던 돌머리는 그저 바다 밖에 없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나 둘러본 돌머리해수욕장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는 6월 중순, 시원한 바다 바람이 불어 후덥지근하지 않아 좋았다.
돌머리해수욕장에서 코로나19와 각박한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표정을 봤다. 그리고 내 표정은 어떨까를 생각했다. 늘 무표정한 듯한, 화난 듯한 표정 말이다. 그러나 돌머리해수욕장은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사람들을 맞아 줬다. 폭우를 뿌린 것도 아니고, 후덥지근한 날씨를 안긴 것도 아니었다. 끈적끈적하지 않도록 시원한 바람을 얹어줬다. 그날 하루 ‘맑음’ 그 자체였다.
바다는 변치 않고 그대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