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제86호=정채경 기자) 국립광주박물관은 호남의 문화재를 수집·보관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지난 1978년 12월6일 호남지역 첫 박물관으로 출발을 알렸다.
지난 세월 동안 발굴조사 100여회와 특별전 130여회 등을 진행, 이 지역의 역사 문화를 총체적으로 망라해왔다.
해방 이후 우리 손으로 처음 건립한 박물관인데다 호남문화의 뿌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어서 의미가 깊다.
이같은 국립광주박물관이 개관 42년 이래 첫 여성 관장을 맞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30일 광주박물관 신임 관장에 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을 임명한 것.
첫 여성 관장으로 이름을 올린 이 신임 관장은 회화사를 전공한 미술학자로, 1988년 서울대 고고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5년을 근무하며 교육과장과 미술부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어렵게 만난 이 관장은 코로나19 여파 정국에서 박물관 현황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았다.
먼저 그는 "광주는 민주화를 견인한 문화중심도시여서 역동적인 분위기로 읽힌다"며 "전통과 현대, 미래가 조화롭게 펼쳐지는 도시이자 예향이라는 자부심과 문화를 선도한다는 자긍심을 가진 곳"이라고 밝혔다.
그 깊은 문화와 전통을 몇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광주·전남 지역은 ‘문향’(文鄕)·‘의향’(義鄕)·‘예향’(藝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비옥한 곳이었기에 다양한 수탈이 이뤄졌고, 이에 맞서는 저항 및 개혁의식이 자라날 수 밖에 없는 토양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다산 정약용으로부터 뿌리내린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유학의 기풍과 임진왜란부터 근대기까지 신분을 초월해서 대의명분과 충절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수많은 의병을 예로 들었다.
또 아름다운 산천을 배경으로 소치 허련부터 의재 허백련까지 면면히 이어진 남종문인화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고,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청자를 만들어 냈던 강진 청자 가마터,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농경 마을 유적으로 알려져 있는 2000년 전 광주 신창동 유적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광주박물관은 광주와 전남 지역의 역사 문화를 집대성, 아시아도자문화교류의 거점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그간 지역의 역사문화적 자산을 정리 및 연구해왔고, 이를 상설전시실 개편에 반영해 박물관의 정체성을 한층 강화해나간다는 것이다.

회의를 하고 있는 이 관장

이어 이 관장은 박물관 역점 사업으로 꼽은 아시아도자문화실크로드 거점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 ‘신안선 출항 700년 기념사업’을 진행, 박물관이 명실상부 아시아 도자문화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국제적 위상을 갖추는데 집중할 복안이다.
광주에서 이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데에는 강진 청자가마터 외에 조선시대, 무등산 자락 등에서 생산된 충효동 분청사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도자기를 제작해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신안선, 즉 1323년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에서 확인된 최고급 무역도자 1만7000여점이 광주박물관에 소장돼 있어 지역의 도자문화를 세계 도자기 역사 속에서도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서다. 따라서 오는 12월까지 박물관 1층에 ‘아시아도자문화실’을 마련할 예정이다.
"중국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문화재가 침몰해 지금까지 보존됐는데 이 안에는 당시를 읽어낼 수 있는 문화코드가 있어요. 현재 박물관에는 유물을 전체적으로, 제대로 보여줄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아시아 도자문화센터 신안보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거죠."
이곳의 문화재를 국제적으로 전시, 연구하는 곳으로 만들어 아시아도자 네트워크를 구축, 지역의 문화자원을 넘어 세계적 관광자원으로 확장해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아시아도자문화실은 고려청자와 조선 분청사기, 백자 등 한국의 명품 도자기를 소개하고 신안해저유물을 비롯한 중국·일본·베트남 도자기를 함께 선보여 아시아의 도자 문화가 서로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는지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이와 함께 지자체와 공·사립박물관·미술관과 협력해 지역 문화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앞으로 문화기관 간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지역 문화기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함께 동반성장의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박물관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문화기반시설 등과의 연결성이 낮다는 지리적 한계를 타개하기 위해 도로 건너 중외공원과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미술관 등과 연계성을 높여나가기로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오는 2021년으로 미뤄진 광주비엔날레와 연계, ‘장례’와 ‘사후세계’, ‘무속’이라는 주제에 맞춰 유물과 현대미술 작품의 컬래버레이션 전시도 확정됐다.
또 광주박물관미술관협의회(16개관)와 광주문화기관협의회(15개관)를 통해 다양한 교류협력 사업을 고려하고 있다. 아는 광주와 전남의 문화정책 비전을 공유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함께 개발하는 공동사업이나 지원사업을 논의하기 위한 취지다.
이외에 현재는 코로나19 여파로 진행 중인 사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이지만 추후 상황을 지켜보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박물관에 적합한 새로운 콘텐츠를 모색하고, 학술대회와 박물관대학 및 어린이교육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할 각오다.
이 관장은 끝으로 앞으로의 포부를 드러냈다.
"국립광주박물관을 찾는 분들이 잔잔한 감동을 받는 곳이었으면 해요. ‘기억되는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죠.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처음 세운 박물관이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호남 문화의 중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전라도인 admin@jl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