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전 문화강국 백제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문득 여행] 백제 세계문화유산 기행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2020년 07월 26일(일) 1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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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저서 ‘여유당전서’에서 삼한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하고 문화가 발달했다고 밝힌 구절이다. 백제는 당시 한반도에 자리잡고 있던 고구려와 신라에 비해 일찍 해상 무역을 추진, 타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문화강국으로 이름을 떨쳤다.
‘백제’(百濟)는 ‘백가제해’(百家濟海)의 줄임말이다. 100가(家)가 바다를 건너왔는 의미로, 명칭에
서 강과 바다를 지배하던 해상왕국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백제는 서울을 거점으로 한성시기(기원전18~기원후475)와 충남 공주의 웅진시기(475~538), 충남 부여의 사비시기(538~660)로 구분한다. 이번에 돌아본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웅진과 사비 시기의 흔적들이다.
기원전 18년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700여 년간 한반도에서 고대문화를 만들어온 국가 ‘백제’는 현재 익산·부여·공주에서 옛 도읍지 터와 유물들이 발굴, 조사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5년 국내 12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웅진 사비기의 백제 도성 유적 8개소, 익산과 공주, 부여로 통하는 백제역사유적지구다.
유적지구의 체계적인 통합관리·활용·확장등재를 위해 민·관이 협력하고 있는 (재)백제세계유산센터가 운영 및 관리를 도맡고 있다.
이같은 백제문화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백제세계문화유산센터가 지난 7월9~10일 진행한 ‘백제세계문화유산기행’에 참여해 백제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공주 공산성과 무령왕릉, 익산 미륵사지, 국립익산박물관, 정림사지, 관북리 유적 등 순서로 답사가 이어졌다.
광주송정역에서 KTX를 타고 공주역에서 내려 맨 처음 간 곳은 공주시 금성동의 공산성이었다. 도착했을 때 입구에서는 방문자센터 건립 공사가 한창이었다.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이자 웅진 백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은 능선을 따라 약 2.6㎞ 길이의 성곽으로 해발 110m에 위치해 있다. 475년 백제가 고구려에게 한성이 함락된 뒤 도읍지로 삼았던 곳으로,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지어져 지형을 활용해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성 위 가장자리에 지어진 공산정에 올라서면 강바람을 타고 부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공주와 금강교 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조망할 수 있다.
이어 송산리고분군 유적지를 찾았다. 웅진 시기 백제왕과 왕족들이 묻혀있는 무덤들로, 그중 무령왕릉이 대표적이다. 백제 제25대 임금 무령왕의 무덤인 무령왕릉은 백제 무덤 중 유일하게 주인이 확인된 왕릉이자 도굴되지 않고 고스란히 발굴된 유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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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고분은 웅진시기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들어온 벽돌무덤 양식을 띈다는 특징이 있다. 과거에는 일반인에게도 관람이 허용됐지만 훼손이 우려돼 현재는 모형으로 고분군 전시장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모형 전시관에 들어가 연화문 벽돌을 아치형태로 쌓은 벽돌무덤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송산리고분에서 출토된 금관과 장신구, 도자기 등 4600점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을 관람한 뒤 익산으로 이동, 동아시아 최대의 사찰터 중 하나인 미륵사지와 올해 초 문을 연 익산박물관을 관람했다.
신라의 황룡사와 쌍벽을 이뤘을 미륵사는 현재 터만 남아있으며, 넓은 벌판에 동탑과 서탑만 남아있다. 미륵사지는 백제 고유의 일탑 일금당 형식에서 확장돼 삼탑 삼금당 형태의 독특한 배치가 인상적이다.
특히 서탑은 국보 제11호로 등재, 벼락 등에 의해 파괴됐다가 일제강점기 당시 붕괴를 우려한 일본인들이 콘크리트로 보수한 것을 2001년 문화재청이 보수를 시작해 지난해에서야 작업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봉영기를 통해 639년에 석탑이 건립됐음을 밝혀냈다.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의 복원 모형은 박물관에 전시됐다. 사리장엄에는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에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에 사리를 봉인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절대연대를 기록한 금제사리봉영기를 비롯해 금동제 사리외호와 금제사리내호를 비롯한 각종 구슬 및 공양품을 담은 청동합 6점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날 마지막 일정은 왕궁리 유적이었다. 백제 무왕기에 조성된 왕궁으로 이곳의 특이한 점은 7세기 이후 사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왕궁과 관련된 다양한 시설들이 확인됐으며, 왕궁의 북쪽에는 현존하는 백제 유일의 후원 터가 남아있다.
이튿날 백제의 마지막 사비시기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부여 정림사지를 방문했다. 사비도성의 중앙에 있던 절터로 백제 고유의 사찰을 볼 수 있으며, 이 가운데 들어서 있는 5층 석탑이 원형에 가까운 상태였다.
또 관북리유적의 목곽창고와 석곽창고, 연지 등 여러 유적들이 계획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임을 입증했다. 관북리 유적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부소산성은 왕궁의 후원이자 비상시 방어성으로 사용돼 지금도 그 당시의 성벽이 남아있다. 삼천궁녀가 뛰어내렸다는 낙화암과 고란사 등 백제의 마지막이 깃들어 있는 전설과 관련된 역사적 흔적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나라의 부흥과 멸망의 역사를 따라가며 이같은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는 한편, 널리 알려져 미래세대에 온전히 그 가치가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리적으로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고구려와 신라 등에 비해 비교적 조명이 덜된 백제의 문화유산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